▲ 딸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다. ⓒ pixabay
"지수야, 너 오늘 학습지 숙제 또 다 안 했어?"
"한다고 했는데 너무 많아"
"수학은 매일매일 해야지. 그렇게 하루 전날 매달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얘기해" 오늘도 아내의 얼굴에는 갱년기 증상에나 있는 홍조가 한가득이다. 또 딸아이의 숙제 때문이다. 늘 월요일과 금요일만 되면 같은 말의 반복이다. 월요일은 영어 방문수업이 있는 날이고, 금요일은 수학 방문수업이 있는 날이다. 일정이 이렇다 보니 딸아이는 일요일 오후는 영어를 하느라 목요일 저녁에는 수학을 하느라 늘 바쁘다. 딸아이와 평일을 함께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평일 딸아이의 학습 시간을 정확히는 모른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 영어 과제를 하느라 자신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딸아이가 조금 딱하고, 같이 외출도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사실 아내나 난 아이들 교육에 대해선 철저하다. 학원을 보내달라고 얘기하면 보내주고, 다니지 않겠다면 과감히 보내지 않는다. 그런 규칙은 큰 아이, 작은 아이 모두 공평하게 적용했고, 얼마 전까지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교육 철학이 얼마 전부터 흔들리고 있다. 알아서 자신의 일을 하던 아들을 키우면서 우리의 교육철학이 맞다고 안심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어릴 때부터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은 해내는 아들을 보며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우린 어느 정도는 자신했다. 우리가 맞다고, 우리가 옳다고 말이다.
이런 일이 중학생이 되며 반복되자 아내는 얼마 전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물론 집에 오시는 딸아이 방문교사 선생님의 권유가 있었지만 진즉에 생각하던 일이라 아이와의 협상과 일의 진행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내가 아이와 대화 후 취한 조치는 일주일에 수학, 영어 한 번씩 받아오던 방문수업을 수학만 일주일에 세 번씩 교육센터에 방문하여 공부하는 과정으로 바꿨다. 그것도 한 번에 두 시간씩. 그렇게 결정한 이후부터 딸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잠깐 간식을 먹고 가방을 메고서 센터에 간다. 처음에는 그렇게 간식으로 잠깐의 허기를 채우고, 다시 공부하러 가는 뒷모습이 측은해도 보였고, 또 6시가 넘으면 늘 짱구를 봐야 한다며 거실 소파에 앉아 놀던 아이가 이젠 7시가 넘어서야 집에 오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요즘 난 잦은 야근 탓에 아이들과 식사를 함께 못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래서 늦게 집에 가더라도 아이들 얼굴을 보며 잠시라도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딸아이가 센터에 가기 시작하며 그런 일조차 쉽지 않아 졌다. 예전 같으면 늦게 가도 늘 거실을 지키던 게 딸아이였는데 요즘은 퇴근해서 아이를 보려면 딸아이방 노크를 하고 들여다봐야 비로소 얼굴을 맞댈 수 있다. 그것도 잠시뿐이지만. 자기 방 책상에 앉아 있는 딸아이의 뒷모습이 요즘 더 안쓰러워 보인다. 얼마 전엔 8시가 다 되어서야 딸아이는 집에 돌아왔다. 난 5시도 안되어서 센터에 간 녀석이 세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책상에서 책과 씨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아내에게 딸을 대변한다는 입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영희씨, 일주일에 세 번씩 하는 거 말고는 없어요. 이러다 지수 잡겠어요"
"지금까지 잘 놀았으니 이제부터라도 해야죠.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많은 양도 아니에요. 주말은 그냥 쉬잖아요"
"지수야 안 힘들어? 갑자기 안 하던 공부 하느라 고생이 많아"
"아빠 괜찮아. 엄마 말대로 뭐 지금까지 잘 놀았으니 이제부터는 조금씩 공부해야지"
그렇게 센터를 쫓아다니며 공부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딸아이는 센터를 다니며 조금씩 성취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작은 성취지만 딸아이에겐 평소에 잘 느껴보지 못한 이질적인 감정인 것 같았다. 조금은 흥분한 채로 때로는 더 큰 성취를 이룰 욕심 가득한 말들로 집에 오면 한바탕 수다다.
아직까지는 딸아이도, 아내도 별 탈 없이 잘 적응 중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앞으로도 딸아이가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지쳐 중도에 타협을 할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난 딸아이의 작은 결심을 존중하고, 아주 조금은 딸아이의 현명한 욕심에 기대가 간다. 어찌 되었든 우리 집 두 아이 모두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잘 커주길 바랄 뿐이다. 하루하루 아이들 성장과는 별개로 오늘도 아내와 딸아이는 티키타카, 아웅다웅한다.
"우리 아들 지원한 대학 좋은 결과 있길 빕니다. 따님, 오빠가 원서 접수 마쳤는데 생각날 때라도 오빠 대학 합격 기원 부탁해. 알았지?"
"네? 제, 제가요? 왜요?"
"우린 가족이잖아. 엄마처럼 매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생각날 때라도"
"하하, 별로 내키지 않는데요"
"지수야, 오빠가 제때에 대학 가야지 군대도 내후년에 가지" 내 말 한마디에 딸아이의 태도는 돌변했다. 딸아이 소원은 제 오빠와 얼른 떨어져 사는 게 확실한가 보다.
"그럼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기도해야겠네. 오빠 어느 대학 지원했다고 했죠"
"......"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기사 속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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