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축구 인생 2막, 황선홍 감독에 거는 기대

[주장] U-23 대표팀 사령탑 맡은 황선홍, 한국 축구에 신선한 변화 가져올까

등록|2021.09.17 10:03 수정|2021.09.17 10:55

▲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 파리 올림픽에서 U-23(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을 이끌게 된 황선홍 감독이 1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U-23 대표팀 취임 비대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황새' 황선홍 감독이 U-23 대표팀 사령탑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대한축구협회는 황선홍 감독을 U-23 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낙점하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2024 파리올림픽까지 지휘봉을 맡기기로 했다. 황선홍 감독은 16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중책을 맡겨준 대한축구협회에 감사하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다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고, 큰 영광이다. 그만큼 책임감이 따른다"며 대표팀 취임 소감과 앞으로의 각오를 전했다.

황선홍 감독은 한국축구의 전설이다. 선수 시절 황선홍은 K리그 포항과 일본 세레소 오사카-가시와 레이솔 등에서 활약하며 아시아 무대를 주름잡은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국가대표로서는 월드컵 본선에 4회나 출전했고 A매치 103경기 50골로 차범근(58골) 감독에 이어 역대 득점 2위에 올랐다. 2002년에는 한일월드컵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에서 한국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결승골을 터뜨리는 등 4강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지도자로서도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2003년 3월 은퇴 이후 전남 코치를 거쳐 부산, 포항, FC 서울,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을 지냈다. 특히 친정팀 포항에서는 FA컵 2연패와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최전성기를 보냈다. 2013년에는 구단의 재정난 탓에 외국인 선수를 한 명도 쓰지 못하는 불리한 여건을 이겨내고 2관왕을 차지하며 명장으로 등극했다. 2016년에는 FC 서울의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최종전에서 리그 역전 우승을 달성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젊은 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고, 상대에 따라 전술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극심한 부침을 겪었다. 2018년 서울에서 성적부진과 선수-팬들과의 갈등 속에 중도 사임했다. 이후 중국 슈퍼리그 옌벤 푸더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구단이 재정난으로 해체되면서 시즌을 치러보기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2020년에는 K리그2 신생구단인 대전하나시티즌의 창단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시즌 중반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반년만에 또다시 사임했다. 포항 시절과 달리 스타플레이어-외국인 선수들과 여러 차례 불화설에 휩싸이며 선수장악력에 의문부호가 붙기도 했다.

황 감독은 지난 1년간은 야인으로 휴식을 취하며 다양한 방송활동으로 근황을 알렸다. 여자축구를 소재로 한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에서 개그맨팀인 'FC 개벤져스'의 감독을 맡아 카리스마를 내려놓고 친근한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U-23 대표팀 감독직은 지도자 황선홍의 축구인생이 2막에 돌입했음을 알리는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은퇴 이후 클럽팀에서만 경력을 쌓아왔던 황선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황 감독은 이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때부터 공공연하게 '국가대표팀 감독이 최종목표'라고 할만큼 열망을 드러낸바 있다. 비록 A대표팀은 아니지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U23 대표팀 감독직은 그 자체로 한국축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자리이면서, A팀 감독으로 가는 지름길로도 여겨진다.

허정무-핌 베어벡-홍명보-신태용 등 역대 A팀 감독 중에는 U-23 대표팀 감독을 거쳐가거나 겸직한 인물들이 다수다. 23세 이하 선수들은 연령대별 대표팀의 마지막 단계로 사실상 완성된 성인 선수들이 대부분이며 곧바로 A대표팀으로 차출되는 경우도 많다.

젊은 선수들이 A팀에서 주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이들과 일찌감치 호흡을 맞추며 조련해 왔던 23세 이하 감독들이 '선수파악과 전술적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자연히 차기 A팀 감독 후보로 떠오르는 것은 한국축구 환경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황선홍 감독은 커리어만 놓고보면 A팀을 맡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황 감독이 차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자연히 차기 A대표팀 감독후보로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대표팀 감독 경험이 처음이라는 것과 최근 몇 년간 소속팀에서 성과가 좋지 못했다는 것은 황 감독이 안고 있는 숙제다. 아시안게임 우승-올림픽 8강을 이끌었던 김학범 전 감독이나 심지어 역대 최고의 대표팀 감독으로 꼽히는 히딩크- 허정무 감독 등도 부임 당시에는 커리어가 하락세로 평가받던 감독들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모두 성과로서 증명해낸 바 있다. 지도자에게 실패의 경험이란 부정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더 큰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축구인생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과 '역할 체인지' 구도가 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동기인 황선홍과 홍명보 감독은 현역 시절 'H-H라인'으로 불리우며 한국축구의 최전방과 최후방을 각각 책임지며 월드컵 4강신화를 함께 이끈 레전드급 콤비였다. 공교롭게도 지도자로서도 비슷한 시기에 활약하며 전성기가 겹쳤다.

다만 활동무대는 달라서 지도자로 함께 경쟁할 기회는 없었다. 홍명보 감독이 주로 대표팀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로 역대 U-23 대표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면, 황선홍 감독은 K리그에서 우승컵을 쓸어 담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두 감독은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동안 나란히 슬럼프의 시기를 겪었다는 것도 흡사하다.

홍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의 조별리그 탈락과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뤼청의 강등으로 연이은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한동안 축구협회 전무로서 행정가의 길을 걸어오던 홍 감독은 올해 K리그 울산 현대의 지휘봉을 잡으며 최초로 클럽팀 감독을 맡아 지도자로 복귀했다. 홍 감독의 울산은 올해 1위를 달리며 2005년 이후 16년 만의 K리그 정상탈환을 노리고 있다면, 황 감독은 U23 대표팀을 맡아 홍 감독도 이루지 못한 아시안게임 3연패와 올림픽 동메달 이상의 성적을 노리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재임 시절 '원팀'을 강조했다면 황선홍 감독은 '한국형 축구'라는 방향성을 제시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황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지도자를 처음 시작하면서 한국 축구가 어떻게 하면 경쟁력이 있을까를 고민해왔다. 우리나라에 맞는 적극적이고 스피드한 모습이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방법론의 차이일 뿐 방향성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축구는 몇 년간 외국인 감독 체제에서 유럽식 '빌드업 축구'를 추구해왔다. 높은 점유율에 기반한 패스축구는 세계적인 추세로 꼽히지만 한국 선수들만의 장점이나 상대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경직된 빌드업은 오히려 한국축구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받았다. 한국축구의 전통적인 강점은 투박하더라도 강력한 압박과 역습, 체력, 스피드을 앞세워 직선적으로 상대를 두들겨 부수는 선굵은 축구에 가까웠다. 그런 면에서 황 감독이 A팀의 스타일과는 상반될 수 있는 한국형 축구를 선언한 것이 예사롭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김판곤 국가대표전력 강화위원장은 황 감독에 대하여 "포항에 있을 때에도 젊은 선수들을 잘 육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U-23 대표팀은 감독의 합리적인 운영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황선홍 감독이 선수들과 스태프들과의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서 잘 운영할수 있는 적임자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축구협회가 황선홍 축구에 기대하는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 감독은 현역 시절에도 한때 월드컵 불운사와 잦은 부상 등으로 누구보다 많은 굴곡의 시간을 보냈지만 2002 월드컵의 활약으로 모든 아픔을 만회했고, 지도자로서는 두 번의 리그 우승을 모두 최종전에서 극장골로 만들어내는 등 항상 극적인 한 방과 반전이 있는 축구인생을 걸어왔다.

U23 대표팀은 황 감독이 선수와 지도자로서 약 30여년 간 쌓아 온 노하우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긍심을 갖고 당당히 해내겠다"는 황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한국축구에 가져올 신선한 변화가 기대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