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7세 혼신의 연기... '어린' 배우는 없었다
[공연 리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신시컴퍼니
7세 어린이부터 80세 원로 배우까지 58명의 배우가 한 무대 위에서 2시간 40분 동안 혼신의 연기를 펼쳐 보이는 공연을 보고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관객에게 기필코 감동을 안기는 휴먼 드라마다.
현재 공연 중인 2021 <빌리 엘리어트>는 2010년 국내 초연 후 2017년 재연에 이어 4년 만에 올려진 무대다. 오는 2022년 2월 2일까지 서울 대성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2000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공연은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들에서 올려지며 한결같은 사랑을 받은 뮤지컬이다.
어린 배우들의 대단한 인내 엿보여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신시컴퍼니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신시컴퍼니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1984~1985년 광부 대파업 시기의 영국 북부 지역을 배경으로, 복싱 수업 중 우연히 발레를 통해 꿈을 발견한 소년 빌리가 그 꿈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2021 <빌리 엘리어트>는 6번의 프리뷰 공연을 마무리하고 지난 9월 5일 일요일, 정식 공연의 막을 올렸는데, 지난 16일 관람한 공연은 막을 올린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의 공연인 만큼 무언가를 시작하는 이들이 품은 설렘이 전해져 오는 듯했다.
특히 주인공 빌리 엘리어트를 맡은 이우진 배우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설렘뿐 아니라 그보다 더 무거운 감정, 가령 한 작품의 중심에 선 배우에게서 느껴지는 책임감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큰 무대를, 세계적인 대작을 한가운데서 이끌고 가는 사람이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라는 사실은 이 작품이 주는 근본적인 감동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시즌 빌리 엘리어트 역을 맡은 4명의 소년들(김시훈, 이우진, 전강혁, 주현준)은 지난해 2월에 치른 1차 오디션부터 지금까지 무려 1년 6개월 동안 트레이닝을 거쳤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어린 배우들이 매일 얼마나 많은 넘어짐과 좌절을 거쳤을지 짐작이 가기에 무대를 보는 이들의 마음은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감동과 별개로 벅차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리지널 극의 연출가인 스테판 달드리는 '빌리는 마라톤을 뛰면서 햄릿을 연기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는데, 이날 이우진 배우의 열연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의 의미가 새삼 와 닿았다.
빌리 스쿨에서 18개월 동안 발레뿐 아니라 탭 댄스와 아크로바틱, 현대무용, 재즈댄스 등을 수련하고 엄청난 대본과 가사를 외우면서 어른 배우도 쉽게 소화하기 힘든 과정을 거친 빌리, 그리고 마이클을 비롯한 어린 배우들의 수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직접 무대를 봐야 실감할 수 있었다. 인터미션까지 포함해 3시간이란 긴 시간인데도 그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고 몰입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어린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어린 배우는 없었고, 모두가 프로페셔널한 실력파 배우들뿐이었다.
힘든 시기, 진정 소중한 용기를 말하는 작품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신시컴퍼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면 늘 <빌리 엘리어트>를 꼽곤 하던 나는 국내 뮤지컬로 재탄생한 이 작품을 보면서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작품을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 바가 달라지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예전에는 춤을 향한 빌리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 받았다. 춤을 출 때면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하다고, 하늘을 나는 새가 된 것처럼 자유롭다고 말하는 빌리의 왕립발레단 오디션장 대사에서 특히 큰 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본 뮤지컬에서는 어른들의 희생이 큰 의미로 다가와 내게 감동을 주었다. 특히 광부인 빌리 아빠가 빌리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한 사회에 속한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체면을 버리고 탄광 파업에 불참하는 모습에선 전에 느끼지 못한 전율이 일었다. 부모로서 그런 희생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지금은 잘 알기에, 아버지의 그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 역시도 이해돼 마음이 짠했다.
빌리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윌킨슨 선생님의 행동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윌킨슨 선생이 아니었다면 그런 험하고 어두운 환경에서 빌리라는 원석은 끝내 보석으로 거듭나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 어른들'의 이러한 자기 희생과 용기와 사랑이 얼마나 숭고한지 보여줌으로써 이 작품은 코로나로 힘든 이 시기에 진정 소중한 것들을 일깨워준다. 특히 '용기'의 가치를 되새겨보게 만들었다.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춤을 향한 꿈과 열정을 놓지 않은 빌리가 보여준 것 또한 용기였다.
빌리가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가 남긴 편지를 읽는 장면, 왕립발레학교로 떠나면서 빌리가 엄마에게 쓴 편지를 읽는 장면,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오디션을 보려 하는 빌리를 위해서 자신의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으는 장면 등 이 작품에는 휴머니즘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많았다. 이런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을 찾은 관객들은 마지막까지 공연에 몰입하며 장면이 끝나는 시점마다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야기 자체에 감동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 빌리를 연기한 어린 배우의 실제 인내와 노력에, 연령을 초월해 모인 모든 배우들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하여 보내는 감사의 박수인 듯했다.
2시간 40분의 대장정 후 공연의 마지막 인사를 위한 쇼커튼이 올라갔고 이우진 빌리를 비롯한 최정원 윌킨슨 등 배우들이 환히 웃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피와 땀과 눈물이 농축된 그 무대를 지켜본 관객들은 배우들의 인사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화답했다. 그 순간 공연장에 있던 사람들은 살아온 환경과 사연의 다름을 떠나 하나의 마음으로 숨 쉬는 듯했다.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신시컴퍼니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 신시컴퍼니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