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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만난 묵향이 나를 설레게 합니다

한길 문고에서 수묵 캘리를 배우다

등록|2021.09.28 15:06 수정|2021.09.28 15:06
가을이 물들어 가는 9월, 한길 문고에서 수묵 캘리 수업을 한다는 공지가 카톡방에 떴다. 신청하는 사람들은 거의 한길 문고에서 글을 쓰는 문우들이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신청을 하고 수묵 캘리 수업에 나간 지 몇 번째다. 좋아하는 걸 배우는 새로운 도전은 항상 설렌다.

나는 붓을 가지고 놀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지난 일 년 딸네와 가족과 살게 되면서 짐을 덜어내려고 집안 곳곳에 쌓인 살림을 줄여야 했다. 붓도 한 묶음 버리고, 물감, 그려 놓았던 그림도 모두 버리고 말았다. 가지고 있는 것이 모두 짐 같았다. 나이 들면서 일 년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은 버리고 사는 게 현명한 일이라 생각했다.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고 사는 물건들이 무거워 보였다.

참 사람 사는 일은 한 치 앞도 모르고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다시 붓을 잡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내 마음도 내가 모르고 살고 있으니 사람 사는 일은 알 수 없는 일이 많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언제라도 변할 수 있는 게 마음이다. 내 마음이 변하여 다시 붓을 잡는 걸 보고 나도 놀랐다.

한길 문고에서 수묵 캘리를 수업하는 백영란 선생님의 그림을 가끔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수묵 캘리 그림이 단아하고 멋있어 한동안 시선을 머물게 만들었다. 나도 꾸준히 붓하고 놀았으면 그림을 좀 그리지 않았을까... 잠시 잠깐 생각하면서 미련을 가져본다. 한길 문고와 백영란 선생님은 지역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거라고 한다. 감사한 일이다.
 

수선화수묵 캘리 ⓒ 이숙자


예전에 그림을 조금 그리다 그만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손자를 키우면서 차 공부를 하고 학교까지 다니려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상황에 한 가지는 포기해야 했다. 차 공부를 하면서 손주를 7년 키워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딸에게 보냈다. 지금에 와서 그림을 접었던 걸 후회는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취미생활도 한 가지를 꾸준히 하려면 그 일에 몰입을 해야 하고 10년 이상은 세월을 같이 해야 전문가가 되는 일이다. 하나를 버려야 하나를 얻는 게 진리다.

지금에 와서 다시 시작하는 일은 그림이 아니라 수묵 캘리로 시니어에서 그리는 꽃그림과도 연결이 된다. 더 늦으면 새로 배우기 어려울 것 같아 다시 도전을 해 본다. 예전에 붓으로 꽃그림은 그리지 않아 익숙하지 않다. 붓을 놓은 지 오래여서 초보자처럼 생소하다. 하지만 무언가 몰입하고 있을 때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수업은 토요일, 일주일에 한 번 하고 있다. 시간이 쫓기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내면 할 만하다. 한동안 붓을 놓아서 어렵다. 마음대로 안 되지만 수업에 열중하면서 즐긴다. 공부를 하면서 채본과 비슷하게 나오면 기뻐하며 사진을 찍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보기 좋다.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것은 신세계를 만나듯 항상 설렌다.

때때로 드는 생각은, '내가 전생에 무수리 출신이었나...'라는 것이다. 왜 가만히 있지을 못하고 항상 바쁘게 고단한 생활을 하는지 모르겠다. 공부하면서 하나하나 성취하는 일들이 기쁘고  즐겁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기회가 있을 때 도전해 보는 것이다. 아직도 내 안의 동굴 속에 채워야 할 보물들이 남아 있나 보다.

늙는다는 것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시간은 마음속의 탐구 정신과 꿈을 준다. 인생은 긴 삶의 여정이다. 내 삶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일이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배우며 살아가려 한다. 내 인생의 방향키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설령 경제적인 모자람이 있어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족하고 산다.

사람의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했다. 내가 하는 일들이 고통은 아니지만 한가롭게 쉴 틈이 없이 하루하루 바쁘게 지나 간다. 우리가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을 때 영혼이 주름지게 된다고 한다. 배울 수 있을 때 배워 내 안에 저장해 놓으면 어느 때 라도 사람들과 공유를 할 수 있다. 사람은 결국 혼자 살아가지는 못한다. 서로 나누고 돕고 살아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나누고 살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낙엽들산책길에 주어온 낙엽을 그렸다. ⓒ 이숙자


코로나가 우리 곁에서 떠나질 않는다. 답답하다고 종종 거릴 필요는 없다. 나는 좋아하는 놀이를 찾아 담담히 잘 견디며 살아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보물들을 꺼내여 수묵화 연습을 하고 산책길에서 낙엽 몇 장 주워 그리면서 놀고 있다. 사는 것은 결국 큰 것보다 작은 일상에서 행복을 줍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의 브런치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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