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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때 타올과 녹슨 면도기

등록|2021.09.29 09:34 수정|2021.09.29 09:34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토요일까지 수업을 했다. 유일하게 아침부터 이불을 박차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날은 일요일 단 하루뿐. 하지만 일요일마다 꼭 나를 데리고 목욕하러 갔던 아버지 때문에 휴일 아침 늦잠은 항상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일주일 내내 고깃집을 운영했다. 많이 피곤했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깨끗하게 씻겨보겠다고 새벽부터 서두르셨다.

사람들은 저마다 목욕하는 순서가 있다. 보통은 간단하게 몸에 비누칠하고 물로 씻어낸 후 탕으로 들어가지만, 아버지의 목욕 방식은 조금 달랐다. 작은 바가지에 온탕의 물을 담아 몸에 몇 번 끼얹어서 물 온도에 적응한 후 바로 탕 속으로 직행했다. 따뜻한 물에서 충분하게 몸에 있는 때를 불린 다음 밖으로 나와 시원하게 때를 밀었다. 나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했다.

아버지는 나를 때 미는 테이블 위에 누우라 하고, 목욕탕 한쪽 구석으로 가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겨오셨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시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한두 번 쓰고 버린 때 타올 중에서 쓸만한 것을 찾아 깨끗이 씻은 후 그것으로 때를 밀어주셨다. 당시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항상 그렇게 하셨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아버지와 함께 목욕할 시간이 맞지 않을 때, 나는 종종 혼자 목욕탕에 갔다. 충분히 몇 번 더 쓸 수 있는 때 타올들이 많았다. 나도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했다.

최근에 아버지 집에 방문했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세면대 위 받침대에 면도기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녹이 많이 슬어있었다. 일회용 면도기를 계속 씻어서 쓰신 것 같았다.

"아버지, 녹슨 면도기로 면도하시다가, 상처 나면 파상풍 걸리세요. 제가 일회용 면도기 사다 드릴게요."

이 말을 하면서 갑자기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의 그 타올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왜 이리 궁상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만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절약하는 아버지가 더 자랑스러웠다.

당신에게 쓰는 것은 그렇게도 절약하면서도 자녀나 손자 그리고 형제, 자매들에게는 아낌없이 쓰시는 아버지. 큰 손자 주영이에게는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 들면 안 된다며 매번 용돈을 줬고, 형편이 어려운 동생들에게는 명절마다 과일이나 음식을 보냈다.

이제 내게는 챙겨야 할 가족들이 생겼다. 두 아이의 아빠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아버지처럼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아 가족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 훗날 나도 내 물건이나 행동을 통해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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