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 456억·키즈 카페... '오징어 게임' 감독이 밝힌 떡밥
[인터뷰]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 ⓒ 넷플릭스
2007년 영화 <마이 파더> 이후 황동혁 감독의 마음은 줄곧 영화계에 있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극화한 <도가니>, 코미디 휴먼 장르 <수상한 그녀>로 소위 흥행한 상업 감독 대열에 합류했지만 정작 작품 활동은 활발하지 못했다. 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복귀한 건 일종의 상징이다. 영화가 전부인 줄 알았던 창작자들에게 OTT 플랫폼은 또다른 출구로 기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러 인터뷰에 소개된 대로 <오징어 게임>은 2009년 영화용으로 완성된 시나리오에서 비롯됐다. 여러 제작사에서 거부한 당시 이야기가 10여 년이 지나 전 세계 시청자들이 열광할 드라마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28일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황동혁 감독을 만나 그 뒷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공개된 이후 출연 배우들의 SNS 팔로워 수는 급증했고, 한국 어린이들의 놀이를 세계 곳곳에서 패러디하는 일도 보인다. 총상금 456억 원을 걸고, 인생 막장에 몰린 사람들이 외딴 섬에서 일생일대의 게임을 벌인다는 이 간단한 설정의 인기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시나리오를 쓰던 당시 생활고를 겪었던 감독 개인사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2008년 무렵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생활비도 떨어져서 어머니 명의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던 때였다. 너무 힘들어서 종종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배틀로얄> <도박 묵시록 카이지> <라이어 게임> 같은 일본 만화를 즐겨봤다. 서바이벌 장르에 대한 관심이 컸고, 제 현실과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에 <오징어 게임>을 기획하게 됐다. 당시엔 제작사들이 좋아하시질 않아 묵혀두게 됐는데 어느덧 넷플릭스라는 게 생겼더라. 영화 대본을 보여줬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서 드라마화로 만들게 됐다.
▲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 넷플릭스
황 감독은 이미 나온 서바이벌 장르물을 꽤 섭렵했고, 기발한 게임 방식과 이야기 구조는 차고 넘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의 차별성은 단순함이었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복잡한 게임을 만들 능력도 부족하고, 반대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게임은 목숨을 걸거나 삶이 뒤바뀌는 게임이 아니잖나. 그런 순수한 게임이 가장 극단적인 경쟁이 되면 어떨까 상상했다. 그 아이러니를 가져오고 싶었다. 제가 쌍문동 출신이다. 어렸을 때 하던 개임들을 모두 종이에 적어 놓고 고민했다. 첫 번째 게임은 무조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여야 했고, 마지막 게임은 '오징어 게임'이어야 했다.
수백 명이 한 장소에 모여 동시에 가고 서는 걸 반복하는 비주얼로 큰 충격을 주고 싶었다. 탈락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설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은 어릴 때 하던 게임 중 가장 격렬한 놀이였다. 마지막 순간에 동네 친구였던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그걸 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마치 링에 오른 검투사처럼 말이다. 거기에서 오는 아이러니가 있다.
쌍용차 해고 사건과 <오징어 게임> 논란에 답하다
1974년 생인 기훈(이정재)과 그의 절친한 동생이던 상우(박해수)를 중심 인물로 세운 이유도 따로 있었다. 드라마에선 어렴풋 나오고 말지만, 기훈은 드래곤 모터스라는 회사 직원이었다가 해고 당했고 과거 회상 장면에선 투쟁 중 동료의 사망을 지켜보는 모습이 묘사된다.
우리 사회 비극 중 하나인 쌍용 자동차 대량 해고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데, 감독 또한 염두에 둔 설정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인 이창근씨는 SNS에 "기회가 되면 감독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며 감사의 소감을 올리기도 했다.
쌍용차 대량 해고 이후 사람들이 많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범한 한 사람의 노동자가 무너지면서 이들의 가정 또한 일순간에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해고당한 후 기훈은 치킨집도 했고, 대리기사도 전전하지만 결국 멘탈이 많이 망가진 사람으로 설정했다. 상우는 반대로 서울대에 합격하면서 승자의 위치로 올라갔다. 하지만 결국 게임에 참여했지. 누구나 잠시의 승자가 될 수 있지만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회 구조라는 걸 보이고 싶었다.
무거운 주제 의식과 끔찍한 게임 방식과 달리 게임 진행자인 프론트맨과 스태프들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가면과 옷을 입고 있다. 황동혁 감독은 "해당 게임이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중 구슬 게임 장면 ⓒ 넷플릭스
게임을 만든 게 일남(극중 1번 노인)이잖나. 어릴 때 순수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그도 참여한 것이니 가장 밝은 기억에 기초했을 것이다. 일남의 마음을 세트 구조와 색감으로 표현했다. 진행 요원들도 무섭지 않은 핑크색 옷을 입고 서 있으면 참가자들 마음을 좀 누그러뜨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게임 무대는 키즈 카페에서 영감을 얻었고, 계단형의 구조물과 숙소는 에셔라는 작가의 판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인기만큼 관련 해석과 논란 또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대로 캐릭터 설정에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게임 참가자들에게 준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가 실제 존재하는 번호여서 사용자가 예상치 않은 불편을 겪는 일도 있었다.
전화번호는 문제가 없다고 해서 사용했는데 사람들이 010을 넣어서 전화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다. 제작진에서 현재 해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리고 VIP들이 모인 공간 때문에 젠더 논란이 있었는데 특정 성별 비하 의도가 전혀 없었다. 바디 프린팅 된 모형이 테이블, 조명 등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잘 보시면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 남성도 있다. 개인을 도구화한다는 느낌을 주고자 설정한 것이다. 그들 사이에선 인간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일부 만화와 설정이 비슷하다는 의견엔 일부 맞다. 그런 설정에 저만의 차별성을 넣고 싶었다. 가장 중요한 차이가 게임 자체가 매우 단순하다는 것이다. 다른 게임들은 실사화했을 때 게임을 이해시키는 것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더라. <오징어 게임>은 단순하기에 참가자들의 심리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서바이벌물과 달리 여기엔 어떤 잘난 영웅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훈 조차 능력자가 아니잖나. 우연에 의한 승리도 많다. 상금 액수도 고민을 많이 했다. 현실적인 액수여야 했는데 로또 1등 당첨보다 좀 더 많았으면 했고, 사람들이 기억하기 쉬운 숫자였으면 했다. 그래서 123과 789의 중간인 456으로 한 것이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단연 화두는 시즌2의 제작 가능성이다. 황동혁 감독은 이미 몇 가지 설정을 구상 중이긴 했다. 다만 "너무 고생해서 당장은 좀 쉬고 싶다. 다른 영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여러 해석에 그는 "그런 의견을 다음 시즌에 반영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기발한 게 많다"며 "시즌2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다. 제작 과정에서 좀 더 일을 분업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더욱 적극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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