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조병옥 동상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후속 논의 없는 철거에 민족문제연구소 반발... 천안시 "공개적으로 할 필요성 못 느껴"
▲ 천안 아우내독립 만세 운동기념공원에 조성된 조병옥 박사의 동상이 8월 8일 전격 철거됐다. 하지만 천안시가 철거 사실을 알리지 않아 몰래 철거를 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 천안시 문화도서관본부 사적관리과
일제강점기 3.1 운동의 상징적 고장으로 알려진 충남 천안 아우내독립 만세 운동기념공원에 조성된 조병옥 박사의 동상이 철거됐다. 조병옥 박사가 아우내 장터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에 따른 것인데, '아무도 모르게' 철거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천안시는 지난 2009년 6월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에 여러 조형물과 함께 작품명 '그날의 함성'을 설치했다. 같은 해 9월 준공한 기념공원은 4430㎡(약 1340평) 면적으로, 모두 7점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조성 당시 천안시는 "만세운동 당시 헌병주재소 부지와 군중이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순국한 장소를 보존하고, 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원과 조형물을 조성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 중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저고리와 상투로 당시 복식과 어울린다. 반면 태극기를 든 한 청년은 양복 차림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있다. 당시 천안시가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극기의 장엄한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밝혀 유일하게 태극기를 든 인물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 조병옥 박사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된 조형물. 양복 차림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있다. 지난 8일 철거됐다. ⓒ 천안시 사진 갈무리
그런데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등은 이 인물이 조병옥 박사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얼굴과 외모, 복식이 조병옥 박사(1894~1960)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조병옥은 1919년 4.1 만세운동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으며 제주 4.3항쟁 당시 경무부장으로 제주도민 약 3만 명을 학살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는 지난 5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권력의 폭력으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빨갱이라는 이념의 잣대를 씌워 제주도를 피로 억압한 조병옥을 천안을 빛낸 인물로 홍보 책자 등에 홍보하고 독립만세 기념공원에 동상을 건립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천안시에 철거를 요구한 바 있다.
결국 천안시는 올 초 관련 전문가들과 자문회의를 거친 뒤, 조병옥 박사로 지목된 동상을 철거하고 다른 인물로 교체하기로 했다.
세울 때는 요란하게, 철거할 때는 쉬쉬?
최근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관계자들은 아우내독립 만세 운동기념공원을 방문했다가 다시 한번 놀랐다. 조병옥 박사로 지목된 인물 동상이 철거되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돼 있었기 때문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잘못된 역사 조형물을 철거하는 일 자체가 역사적인 일임에도 천안시가 철거와 교체작업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몰래 벌였다"며 "이는 지난 13일 정읍 황토현 전적지 내 전봉준 장군 동상과 부조 철거 행사와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철거된 조형물의 활용방안 등에 대해서도 지역사회와 아무런 후속 논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전봉준 장군 동상은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조각가 김경승(1915~1992년)이 제작해 역사적으로 모순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북 정읍시는 지난달 13일 철거 일정을 공개하고 유진섭 시장은 물론 지역 시민단체와 문화계 인사들이 이를 지켜보도록 했다.
▲ 지난 2009년 6월,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에 여러 조형물과 함께 작품명 '그날의 함성' 조형물 ⓒ 천안시
천안시 문화도서관본부 사적관리과 관계자는 "지난 8일 철거와 교체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등에서 철거 일정에 대한 문의가 있어 '9월 중 철거 예정'이라고 안내해 왔다"며 "10명의 동상 중 한 명에 대해서만 일부 교체하는 일이라 공개적으로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철거된 동상에 대해서는 "보관하지 않고 해체처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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