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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모르고 의지 없는 공무원, 떠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로컬에서 희망찾기 ③] 김륜희 LH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

등록|2021.10.04 14:30 수정|2021.10.04 14:36
내년 대통령 선거(3.9)와 지방선거(6.1)가 멀지 않았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벌써 몇 년째 세계 꼴찌다. 급기야 지난해엔 처음으로 인구가 줄었다. 최근 연구는 가파른 인구 감소(저출산)가 수도권으로의 지나친 인구 집중 탓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수도권으로 몰리는 발길을 돌려세우지 못하면 인구 감소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큰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도 로컬(수도권 밖 지역) 의제는 여전히 뒷전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다시 로컬로 향하게 할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로컬 연구자들을 만나 의견을 물었다. 4회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기자말]
사회가 커지고 복잡해지는 만큼 우리가 풀어야 할 사회 문제도 점점 복잡하게 꼬여간다. 모두가 정부에 기댈 수밖에 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정부가 때로는 기대만큼 문제 해결에 유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정부를 압도하기 시작한 시장(기업)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했지만 시장은 문제 해결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정부와 민간을 폭넓게 아우르면서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협력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 김륜희 LH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 ⓒ 김륜희


"자본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행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2014년 무렵에 눈에 띈 사람들이 있었(다)."

김륜희 LH(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이 가리키는 이들이 바로 이른바 '로컬 크리에이터'다. 그는 이때부터 이 새로운 집단을 눈여겨보았고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려 애써왔다. LH가 2018년부터 도시재생과 주거복지 분야 소셜벤처의 성장 지원에 나섰을 때도 김 수석연구원은 현장을 다니며 가능성 있는 팀들을 발굴했다. 그는 이론과 현장에 더해 공공(행정)과 민간을 두루 이해하고 있는 균형감을 갖춘 연구자다.

김 수석연구원은 "해외 사례들을 한국에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제도적 맥락이 달라서인데, 그렇다고 우리 안에서 만든 대안들은 한국 실정에 들어맞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면서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답도 그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대안이라고 해도 막상 현장에 적용하려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 모든 현장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더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닫힌 네트워크를 꼽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빠르게 끌어다 쓸 수 있는 외부 자원들"에 지나치게 기대는 현실은 아쉽다고 했다. 그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행정의 새로운 역할과 함께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과감한 시도를 당부했다.

김륜희 수석연구원은 2006년에 LH토지주택연구원에 들어가서 올해로 15년째 일하고 있다. 도시 및 지역계획을 전공하고, 도시재생 및 지역개발 관련 연구를 해오다 지금은 인구 감소·고령화와 팬데믹에 따른 공간의 변화와 대안을 연구하고 있다. 아래는 최근 김륜희 수석연구원과 대전 LH토지주택연구원에서 만나 나눈 대화다.

자본과 행정의 한계
 

▲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뒤 오래된 골목은 '소호거리'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 윤찬영


- 이른바 로컬 크리에이터와 소셜벤처들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던 걸로 아는데, 어떤 계기였나.
"지역 연구를 하다 보니 재생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물리적 개발이 한계가 있다는 게 드러났고, 결국 사람이 떠나 생긴 문제니 사람을 다시 오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무상으로 공간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도 지원이 끊기면 다시 떠나고 빈 공간만 남았다. 행정의 아이디어로는 어렵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민간에만 맡기면 자본의 논리에 휩쓸리곤 했다.

자본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행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2014년 무렵에 눈에 띈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나중에서야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부르게 됐다. 이런 그룹들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마침 시대의 흐름과도 맞아떨어지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정책화됐다."

- 일찍부터 LH에서 소셜벤처 지원사업도 해왔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LH가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해오다 2015년부터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창업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는 여기에 더해서 도시재생과 주거복지 분야 소셜벤처들의 성장을 지원해오고 있다. 지금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이때부터 소셜벤처 지원사업에 뽑혔다.

뽑힌 팀들끼리 네트워킹도 하도록 돕고, 전년도에 뽑힌 팀이 이듬해에 심사위원이나 멘토로 참여하도록 하면서 사업의 연결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해에 10팀 정도씩 뽑았는데 앞으로는 더 많이 지원할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다."

 

▲ LH소셜벤처 지원사업 현황 ⓒ LH



- 해외 사례들도 많이 연구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떤가.
"참여정부 때 국가균형발전에 관심을 가지면서 브라질 쿠리치바(Curitiba) 같은 도시들의 재생을 관심 있게 들여다봤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성장하는 나라여서 도시의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그런 곳들과는 처지가 많이 달랐다.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달랐다.

우리나라도 조선소 같은 대공장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없진 않았지만 그런 유휴공간을 창조적으로 되살린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게 돈이 되니까. 독일에 가서 산업유산들을 문화와 커뮤니티 공간으로 되살린 사례들도 본 적이 있다. 우릴 안내하던 담당 공무원에게 여기에 아파트 지을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물었더니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더라. 그도 그럴 게 지가 변동이 거의 없으니 수익성보다는 공공성을 앞세울 수 있었던 거다.

또 우리는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다 보니까 작은 공장들은 대부분 컨테이너 건물이거나 가건물이었다. 건물 그 자체만 놓고 봐도 보존가치가 높지 않다. 구로공단의 역사가 그렇게 긴 데도 하루아침에 디지털밸리로 갈아엎지 않았나. 공장은 거의 안 남았다. 그렇다고 보존할 가치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차이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해답은 현장에서
 

▲ 공주 제민천을 따라 하숙마을을 테마로 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었다. ⓒ 윤찬영



- 도시재생특별법이 만들어진 지도 10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 우리만의 모델이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보나. 
"해외 사례들을 한국에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제도적 맥락이 달라서인데, 그렇다고 우리 안에서 만든 대안들은 한국 실정에 들어맞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도 지역개발이나 도시재생 보고서를 쓸 때마다 늘 담당 공무원의 잦은 이직이 사업의 지속성을 떨어뜨린다는 문제를 지적했는데, 막상 지자체랑 일을 해보니까 순환보직제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사업 내용도 모르고 의지도 없는 공무원이 담당자로 앉아 있으면 정말 일이 하나도 안 된다. 담당자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답도 그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모든 지역에 다 들어맞는 보편적 해법이란 건 없다. 그런데 우리가 제도를 만들 때는 모든 곳에 똑같이 적용하도록 한다. 담당 공무원이 자꾸 바뀌는 게 문제라고 하니 정부 부처가 나서서 사업이 진행되는 4년 동안은 담당자가 바뀌지 않도록 권장한다. 하지만 '모든 공무원은 4년씩 근무하라'는 지침을 전국에 똑같이 내리는 게 답은 아니다. 지역 안에서 벌어진 문제는 지역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 전국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없었나.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대체로 의식주 소비 분야에서 창업을 한다. 기후 변화나 에너지 문제를 로컬에서 해결하는 창업가나, 크로스오버 그러니까 다양한 분야끼리 협력해가면서 로컬리티(지역성)를 확장해가는 크리에이터를 찾아보기 힘든 점이 조금 아쉽다."
 

▲ 우리나라 수리조선1번지로 꼽히는 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에 조성된 거리박물관 ⓒ 윤찬영



-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더 성장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보나.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더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닫힌 네트워크다. 흔히 텃세라고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지역의 자원들을 끌어다 쓰기에는 제약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러다보니 빠르게 끌어다 쓸 수 있는 외부 자원들을 활용하게 된다. 그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지역에서 오래 버티는 데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개인들에게 그런 인내심을 요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역할을 지자체가 해주면 좋겠지만, 자칫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 그것도 간단치 않다. 지방의회나 지역의 기존 그룹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는 할 사람도 많지 않은데 그렇다고 잘 하는 사람한테 힘을 실어주기도 어려운 모순에 빠지는 거다.

요즘 다양한 지역에서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나오고 있고 이들을 지원해주는 공공과 민간 엑셀러레이터들도 재미난 실험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역 안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팀들은 많지 않다. 규모는 작더라도 지역 안에서 덕후라 불리는 서포터즈도 만들어내고, 펀딩도 이끌어내고, 또 기금도 조성하는 데까지 가야 뿌리를 내리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지역에서도 인정하는 사례가 나와야 한다. 어렵지만 지역의 닫힌 네트워크를 열려는 시도들과 그 속에서 상생할 수 있는 노력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글을 쓴 윤찬영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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