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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임금 '왕'은 무슨 죄란 말인가

손바닥에 그린 한자에 기대려는 발상, 유치하고 못났다

등록|2021.10.05 16:11 수정|2021.10.05 16:20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손바닥에 쓴 임금 '왕(王)'이 화제다. 무당의 춤은 왼손, 왼발부터 시작되고, 아기의 건강을 비는 금줄의 새끼줄은 평소와 다른 왼새끼를 꼬는 법이다.

또 그 부인도 'member Yuji(멤버 유지)'로 유명한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주술적인 운세 콘텐츠를 다룬 바 있어 정치권이 주술 논란에 시끄럽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주술이라니 정치의 품격을 제정일치시대로 되돌려 놓은 듯하다. 행위 자체도 문제지만, 많은 한자 중에 손바닥에 적은 한자의 수준과 의미도 저급하다. 정치인으로서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섬기겠다는 좋은 의미의 한자도 많을 터인데, 무소불위의 권력과 만인 위에 군림하는 인상이 강한 임금 왕(王)이라니 국민을 자신의 신하로 여기는 오만함의 냄새가 난다.

하긴 주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손아귀에 임금 왕을 움켜잡으려는 한 정치인의 비뚤어진 욕망이 문제지 3천 년 넘게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의 의미로 쓰여 온 임금 왕이란 한자는 죄가 없다.
   

임금 '왕(王)'의 자형 변화장영진 편저, <한자자원사전)에 소개된 임금 왕의 자형이다. ⓒ 심산출판사


임금 왕(王)자에 대해 갑골문을 보지 못한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공자와 동중서의 말을 인용하여 "세 개의 가로획(三)은 천지인(天地人)의 도를 상징하며 이를 하나로 꿰뚫는(丨) 사람이 왕이다"라고 풀이했다. 또 천하가 귀부(歸附, 스스로 와서 복종)하는 대상을 왕으로 보았다.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무기로 쓰이던 도끼를 형상화한 것으로 무기로 천하를 정복한 자가 왕이라는 주장, 땅 위에 불길이 타오르는 모양으로 보아 불길처럼 덕(德)이 왕성하게 빛나는 존재가 왕이라는 주장, 왕이 쓰던 높은 면류관의 상형이라는 주장, 수컷 생식기의 상형이라는 주장, 흙 토(土)의 변형으로 만물을 생장하는 토지를 점유하고 관할하는 사람이라는 주장 등이 있다.

임금 왕의 세 가로획은 원래 그 간격이 각각 달랐다. 왕은 하늘에 가까운 자여야 하기에 가운데 획이 위의 획에 가깝게 디자인되었다. 세 획의 간격이 일정한 것은 원래 구슬 옥(玉)이었으나 점차 두 자의 형체 구별이 힘들어지자 구슬 옥에는 점(丶)을 더해 두 글자를 구별한 것이다.

왼 손바닥에 세 개의 가로획과 한 개의 세로획이 그어지는 순간 그 정치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왕처럼 자신감 있게 토론에 임할 용기를 얻었을까?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하기에 주술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었을까?

손바닥에 그린 한자는 죄가 없지만, 그것에 기대려는 한 인간의 유치한 발상은 참 못나다. 천지인을 꿰뚫지 못하는 그의 도는 하늘처럼 높지 못하고 바닥에 가까워 가운데 획을 아래 획에 가깝게 그어야 할 듯싶다.

불꽃처럼 빛나는 큰 덕이 있다면, 땅처럼 만물을 성장하게 한다면 사람들은 저절로 그를 믿고 따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따르는데 주술이 끼어들 틈이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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