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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쓰레기, 이렇게 영화처럼 살았다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10만 관객 돌파하며 사랑 받은 독립영화 <바람>

등록|2021.10.20 11:06 수정|2021.10.20 11:06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공작>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은 지난 2005년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작품이었던 독립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다. 1990년대 후반 군대의 부조리와 실상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용서받지 못한 자>는 2000만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7000만 원의 수익을 남겼고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개 부문을 휩쓸며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2014년에도 독립영화 한 편이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훗날 <소공녀>를 만드는 우문기 감독이 연출하고 1년 후 <응답하라1988>의 김정봉으로 유명해지는 안재홍이 주연을 맡았던 <족구왕>이었다. 상영시간 내내 특유의 클리셰를 비틀고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을 통해 독특한 웃음을 선사한 <족구왕>은 적은 상영관에도 4만 5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독립영화로는 상당히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처럼 제작비가 적게 들어간 독립영화들 중에서도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영화들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는 지난 2009년에 개봉해 <용서 받지 못한 자>의 5배, <족구왕>의 2배가 넘는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매우 큰 사랑을 받았다. 실제 관객보다 체감 인기가 훨씬 높은 대표적인 영화로 배우 정우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직접 원안을 써서 화제가 됐던 이성한 감독의 <바람>이다.
 

▲ 정우의 실제 고교시절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든 <바람>은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전국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 (주)싸이더스


자신의 경험담으로 대종상 신인상 차지한 정우

지난 2013년에 방송된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 역으로 배우 정우를 처음 접한 대중들은 정우가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늦깎이 신인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81년생 정우는 <응답하라 1994> 출연 당시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제법 경력이 쌓인 배우였다. <응답하라 1994>에 출연할 당시엔 이미 2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필모그라피를 쌓아둔 상태였다.

부산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낸 정우는 많은 명배우들을 배출한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했지만 수 년간 조·단역을 전전하며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라이터를 켜라>의 차승원 부하, <품행제로>의 양아치,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동네짱, <그때 그사람들>의 경호원 등이 데뷔 초기 정우가 맡았던 배역들이다. 류승완 감독의 <짝패>에서 왕재(안길강 분)의 아역을 연기한 것이 그나마 정우가 맡았던 큰 역할이었다.

그렇게 긴 무명 생활을 보내던 정우는 2009년 자신의 고교생활 경험담을 토대로 만들어진 독립영화 <바람>에 출연했다. <바람>은 정우를 비롯한 여러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와 고등학교 일진이라는 소재가 화제를 모으면서 전국 10만 관객을 돌파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정우는 <바람>에서의 열연을 통해 2010년 대종상 영화제 남자신인상을 수상했지만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곧바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정우는 소집해제 후 아이유의 첫 주연작인 KBS 주말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에서 손태영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빵집 사장을 연기했다. 그리고 같은 해 가을 <응답하라 1994>에서 김재준 역을 맡으며 전국에 '쓰레기 열풍'(?)을 일으켰다. <응답하라 1994> 이후 영화계와 방송가의 캐스팅 1순위가 된 정우는 2015년 <쎄시봉>과 <히말라야>에 차례로 출연해 한 해 동안 940만 관객을 동원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지난 2016년 동료배우 김유미와 결혼식을 올려 슬하에 딸 한 명을 두고 있는 정우는 2016년 <재심>과 2018년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 이후 본의 아니게 공백기를 갖게 됐다. 촬영을 끝낸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뜨거운 피> <이웃사촌>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나란히 개봉이 밀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웃사촌>은 작년 11월, 촬영이 끝난 지 2년 9개월 만에 개봉했지만 전국 41만 관객으로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일진 미화물 아닌 소년의 성장과 가족이야기
 

▲ <바람>에서는 오늘날 씬스틸러로 성장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 (주)싸이더스


<응답하라 1994> 7회를 보면 쓰레기(정우 분)의 고향 선배들과 나정(고아라 분)의 친구들이 3:3 미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산갑부 3인방인 선배들은 "그라믄 안돼~ 처음 보는 여성에게 쉽사리 말을 놓고 그렇게 해서는 안돼~"라며 상대 여성들에 대한 예를 갖추지만 나정은 미팅이 끝난 후 친구들에게 '석고대죄'를 해야 했다. 이 때 등장한 마산선배 3인방이 바로 <바람>에서 선배 3인방으로 출연했던 지승현과 이유준, 양기원이었다.

<바람>은 모범생이었던 형, 누나와 다르게 폼 나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었던 짱구(정우 분)가 불법서클 '몬스터'에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고교시절을 다룬 학원물이다. <바람>은 1990년대 후반 '서클'에 소속된 불량학생들의 이야기들이 다뤄지면서 개봉 당시 '일진 미화물'이라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바람>은 일진들의 싸움과 의리보다는 일진세계에 휘말린 짱구의 성장스토리에 더 주목한 영화다.

실제로 웃음에 초점을 맞춘 초·중반부가 지나면 <바람>은 짱구와 아버지(조영진 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짱구는 간경화로 쓰러진 아버지를 물심양면으로 간호하지만 강하게만 보였던 아버지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짱구는 장례식장에서 환영으로 나타난 아버지를 보며 "아빠 내는 잘 있다. 아빠 나 진짜 아빠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빠... 내... 아빠 사랑한다"고 오열한다. 배꼽 빠지게 웃던 관객들을 울게 만드는 장면이다.

주인공이 일당백의 싸움 실력을 뽐내는 여느 액션 영화들과 달리 <바람>에서는 액션 장면들도 상당히 현실적이다. 짱구의 절친 영주(손호준 분)가 복학생과 시비가 붙어 1:1 맞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영주와 복학생은 서로 싸우다 크게 다치더라도 치료비를 청구하거나 선생님과 부모님께 이르지 않기로 각서까지 쓴다. 하지만 정작 싸움이 시작되자 두 사람은 서로 뒤엉키며 흙바닥을 구르다가 선배들의 개입으로 허무하게 싸움을 끝낸다.

<바람>의 제작진에서 눈 여겨 볼 인물은 바로 음악을 맡은 정재일이다. 데뷔 초부터 '천재'로 불리던 가수 겸 프로듀서 정재일은 군입대 직전 <바람>의 OST를 맡았다. 2017년 <옥자>의 음악 감독으로 봉준호 감독과 인연을 맺은 정재일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정재일은 2019년 <기생충>에 이어 올해는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음악 감독을 맡으며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믿보배' 황정음의 어색한 사투리 연기
 

▲ <바람>의 황정음은 영화 속에서 홀로 어색한 부산사투리로 관객들에게 이질감을 선사했다. ⓒ (주) 싸이더스


<바람>은 주연을 맡은 정우뿐 아니라 훗날 영화와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다. 손호준은 정우와 함께 <응답하라 1994>에 출연해 해태 역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 지승현은 <태양의 후예>와 <월계수 양복점 신사동> 등에 출연했다. <바람>에서 짱구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유재명은 <응답하라 1988>의 학생주임에 이어 <비밀의 숲>의 이창준 검사, <이태원 클라쓰>의 장대희 회장을 연기하며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바람>은 곽경택 감독의 <친구>,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처럼 부산과 경남이 고향이거나 부산의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을 위주로 캐스팅했다. 따라서 부산을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들 중에서도 단연 사투리 고증이 잘 된 영화로 꼽히는데 <바람>에서도 유난히 사투리 연기가 어색한 배우가 있다. 바로 오늘날 여러 작품을 히트시키며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한 황정음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10대 시절부터 걸그룹 슈가로 활동했고 배우 전향 후에도 드라마 위주로 활동하던 황정음에게 <바람>은 실질적인 영화 데뷔작이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인생 캐릭터'를 만나기 전까지는 발연기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던 신예배우 황정음에게 걸쭉한 사투리 연기는 소화하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바람>은 멜로 요소가 매우 적기 때문에 다행히(?) 여주인공 황정음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바람>에서 짱구의 아버지를 연기한 조영진은 불과 2년 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전도연의 아들을 유괴해 살해하는 천하의 나쁜 놈을 연기한 바 있다(힘들게 살인자를 용서하기 위해 면회를 간 전도연에게 "저는 기도를 통해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밀양>의 유괴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관객들은 짱구 아버지의 인자한 웃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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