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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 ·1운동 직전,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있었다

[김유경의 책씻이] 이윤옥 지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등록|2021.10.21 13:25 수정|2021.10.21 13:37
저자 이윤옥은 별나다. '평화의 소녀상' 수난 관련 국내외 뉴스들이 그치지 않는 세태에서는 그렇다. 일본을 편드는 역사 부정과 왜곡이 국내 극우 인사들의 바람몰이로 전파되는 판에서 자비 부담만 가중되는 여성독립운동가 알리기에 목매고 있으니까. 그것도 남성 위주 독립운동사에 가려진 '여성독립운동사'라는 낯선 지평을 열면서. 남성독립운동가에 비해 불평등하게 평가된 여성독립운동가의 역할과 지위(포상)를 곱씹게 하는 저자가 독보적 존재로 다가온다.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아래 여성독립운동사)를 읽으며 세 가지 사실에 놀란다. 첫째는, 재미와 거리 먼 문장들이 의외로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 암흑기에 눈뜬 여성들이 나이나 출신 상관없이 곳곳에 많다는 점이다. 셋째는, 듣도 보도 못한 <대한독립여자선언서>(1919.2) 같은 기록들을 마주한 점이다.

저자의 땀이 묻어나는 사항들이어서 처음에는 섣부를까 싶어 리뷰를 망설였다. 그러다가 저자에게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 내용을 간간이 큰따옴표로 옮겨 맥락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일본어 전공자인 내가 해야 할 일"
 

▲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겉표지 ⓒ 얼레빗


<여성독립운동사>는 시대별(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신분별(기생, 의사·간호사, 해녀, 교사·기자, 노동자, 의병), 해외별(중국지역, 러시아지역, 미주지역) 등 3장 구성에다 부록을 곁들였다.

일반 독자들이 여성독립운동가와 그 역사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첫 책이 아닐까 싶다. 특히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가운데 10대 소녀 명단' 59명의 이름을 밝힌 것은 관련 분야에서도 최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카드 6000여 장을 초주검이 되도록 일일이 다 뒤져" 얻은 결과물이다.

내가 직접 해보니 어지간히 품이 드는 일이다. 여성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모르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자료를 빼낼 수도 없다. 내가 검색란에 유관순 아닌 다른 여성독립운동가를 입력할 수 있음은 저자의 공로다.

저자는 일본어로 된 여성독립운동가 재판 기록들을 "번역 없이 바로 읽을 수 있"는 일본어 전공자다. "사회의 조명을 받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전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로 여겨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직에서 물러나 본격 집필에 돌입한 덕이다.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올해(2021)로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2돌이 되었지만 명확한 수형자카드가 있음에도 아직도 상당수가 미포상 상태다. 물론 이 표는 10대 소녀에 국한되며 여성에 한정된 조사다. 덧붙여 말한다면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6,264장 속의 상당수 남성과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여전히 독립운동가 포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두고 싶다. 이 가운데 1919년 3·1만세운동 이듬해인 1920년에 동참한 소녀들이 있다. 바로 배화여학교 학생들로 김성재 지사도 그 가운데 한 분이다. 검정 치마저고리에 길게 땋아 내린 머리,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의 김성재(金成才, 1905.10.14. ~ 모름) 지사는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될 때 나이가 만 열네 살이었다. 황해도 장연군 설산면 읍서리 17번지가 고향인 김성재 지사는 1920년 3월 1일 경성(서울) 배화여학교 재학 중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수감되었다."(31~32쪽)

저자는 할 말을 가급적 자제하며 독립운동가 포상 현황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그런 거리두기가 책읽기를 편하게 하면서도, 저자가 못한 말까지 가늠해 귀 기울이게 한다.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 쉬운 '여성들이 감옥에서 당한 성폭행 고문 증언'과 관련된 자료나 연구의 미비함도 그런 방식으로 지적하며 관심을 제언하고 있다.

"철저히 자료를 바탕으로 생몰월일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국가보훈처의 공훈전자사료관 공개 자료가 극히 적어 후손들의 증언을 듣고 쓰자는 기본 원칙"에 충실한 서술이다.

나이·출신 상관없는 걸크러시

<여성독립운동사>는 여성독립운동가들 면면을 소개한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걸크러시투성이다. 특히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지금, 오신도 지사(吳信道,1852.4.18.~1933.9.5, 2006년 애족장)는 감탄스럽다.

"대한애국부인회에서 68세라는 고령에 총재로 추대되어 평안남도 일대에서 조직을 확대하고 군자금을 모으는 일에 앞장"서다 출옥 뒤 독립운동가 아들을 앞세우고 81세에 사망한다. 물론 2021년 10월 현재 유일한 생존자 오희옥 지사(1926.~ 생존, 1990년 애족장,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중)께도 경의를 표한다.

어리거나 젊은 나이에 고문후유증이나 과로로 순국해 안타까움을 안기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이 꽤 있다. 병고로 가출옥한 9일 뒤 열아홉 살에 순국한 이선경 지사(李善卿, 1902.5.25.~1921.4.21, 2012년 애국장), 출옥 두 달 만에 서른한 살로 숨진 최초의 고공 투쟁자 강주룡 지사(姜周龍, 1901~1932.6.13, 2007년 애족장), 스물여섯 살에 과로로 숨진 심훈 소설 <상록수>의 모델 최용신 지사(崔容信, 1909.8.12.~1935.1.23, 1995년 애족장) 등의 명복을 늦게나마 빈다.

부부독립운동가인 얼굴들도 많다. 호남 의병장인 남편 강무경(1962년 독립장)이 말렸으나 감옥 동지까지 된 양방매 지사(梁芳梅,1890.8.18.~1986.11.15, 2005년 건국포장), 지난 광복절 카자흐스탄에서 유해로 돌아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홍범도 장군(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의 부인 단양이씨(1874.~1908.3, 2021년 애국장), 미국에서 허드렛일 등을 하며 도산 안창호 선생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혜련 지사(李惠鍊, 1884.4.21.~1969.4.21, 2008년 애족장) 등의 강인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애국은 출신과 상관없음을 새삼 일깨우는 인물들도 많다. 열여섯 살에 만세운동을 이끈 황해도 해주 기생 문재민 지사(文載敏, 1903.7.14.~1925.12, 1998년 애족장), 일제 총독부와 맞선 간호사 노순경 지사(盧順敬, 1902.11.10.~1979.3.5, 1995년 대통령표창),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장 윤희순 지사(尹熙順, 1860.6.25.~1935.8.1, 1990년 애족장), 유관순 열사의 올케인 교사 조화벽 지사(趙和壁, 1895.10.17.~1975.9.3,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부춘화 지사(夫春花, 1908.4.6.~1995.2.24, 2003년 건국포장) 등의 다부짐이 강하게 다가온다.

페미니즘을 넘어선 '여성독립운동사'

나는 '대한독립여자선언서'(1919.2)가 존재하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학교에서 줄곧 '3·1독립선언서'만 배웠으니까. 저자가 '여성독립운동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배경과 상황이 새삼 이해된다.

지금보다 엄혹한 일제 강점기 가부장제하에서 '대한독립여자선언서'에 참여하는 행위는 목숨을 거는 동시에 가정 분란을 자초하는 일이다. 사회·정치적 제도적으로 약자인 여성들이 암암리에 여권신장을 천명하며 대의를 몸소 실천하였으니 페미니스트 수준을 넘어섰다.

페미니즘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성별에 의한 차별을 없애고 여성의 사회, 정치, 법률상의 지위와 역할의 신장을 주장하는 주의"다. 남녀동권 지향이다. '여성독립운동사'의 인물들은 독립쟁취를 위해 남성독립운동가들마냥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자발성은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던 차미리사 지사(車美理士, 1880.8.21.~1955.6.1, 2002년 애족장)의 독려와 맞물려 페미니즘 너머를 응시한다. 그들 중에서 변절자 오현주와 오현관 자매가 나왔으니 기막힌 일이다.

오현주의 밀고로 인해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원 9명이 기소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오현주 부부는 밀고의 대가로 원서동 196번지에 크고 넓은 집을 사서 편한 여생을 보냈다." 지난 1월 만화가 윤서인이 자신의 SNS에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 사진을 나란히 게재하고 쓴 글이 떠오른다.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 걸까. 사실 알고 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현재 국사는 법적 편제상 고등학교 1학년이 배우는 필수과목이지만 수능에서는 선택이다.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교육기관과 대중매체에서 꾸준히 조명하지 않는 한 윤서인처럼 생각하는 청소년이나 젊은이는 늘어날 수 있다.

그렇기에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애써 찾아가 묻히기 십상인 자료와 증언을 수집하느라 바쁘게 움직일 저자의 건투를 빈다. 아울러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10권 더 출간해 총 40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루고 싶다"는 저자의 10년 계획이 완수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https://brunch.co.kr/@newcritic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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