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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까지 모두 '철'... 이 카페에 담긴 깊은 뜻

'2021 배다리 도시학교_숭의공구상가 리서치'전, 잊지 말아야 할 인천 역사를 기록하다

등록|2021.10.31 11:15 수정|2021.11.02 12:02

▲ 숭의로터리는 서울과 연결된 경인로의 종점이다. 6개의 대로가 교차하는 숭의로터리를 뱅그르르 돌다 보면 인천축구전용경기장 방향으로 '철'을 다루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숭의공구상가를 만날 수 있다. 가로, 세로 각각 250m 정도 되는 사다리꼴 모양의 구역에 상가 300여 곳이 밀집해있다. 사진은 숭의공구상가 게이트. ⓒ 박수희


인천 구 터미널에서 1km 남짓, 인천항과 2km가량 떨어진 곳에는 차들이 커다란 분수대를 중심으로 원을 돌아 나오는 숭의로터리가 있다.

숭의로터리는 서울과 연결된 경인로의 종점이다. 여전히 차량이 많은 곳이지만, 터미널이 가까이 있던 시절에는 물류와 사람을 실은 엄청난 차들이 숭의로터리를 뱅글뱅글 돌아 신포동, 동인천, 인천항, 연안부두, 버스터미널, 경인고속도로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인천 교통의 중심지였다.

6개의 대로가 교차하는 숭의로터리를 뱅그르르 돌다 보면 인천축구전용경기장 방향으로 '철'을 다루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숭의공구상가'를 만날 수 있다. 가로, 세로 각각 250m 정도 되는 사다리꼴 모양의 구역에 상가 300여 곳이 밀집해 있다.

수공구나 자재, 도소매를 하는 유통업체, 기계장비를 이용해서 소량의 가공품을 제작하는 가공·제작 업체, 재활용품을 취급하는 고물상, 자동차 관련 업체, 인쇄 관련 업체, 건설 관련 장비 대여 업체 등 산업과 기계 관련 업종의 가게들이 몰려 있다.

숭의공구상가는 1960년대 말부터 인천 구도심의 철공구상들이 이곳에 상가 건물을 지어 이전하면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인천 최초의 공구상가 단지다. 산업부흥기이자 도시개발의 중흥기였던 1980~1990년대가 숭의공구상가의 전성기였다.
 

▲ 제작가공에 사용되는 수공구들 ⓒ 박수희

 

▲ 신아정밀 내부 스케치 by 이웃 ⓒ 박수희


공장단지, 항구, 부두, 강화도를 비롯한 섬들, 인천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필요한 자재와 공구를 사고, 철물 제작과 부품 가공을 의뢰했다.

번창했던 숭의공구상가의 상인들은 조합을 결성해서 동구 송림동에 더 넓은 매장과 주차장을 갖춘 현대식 공구 상가단지를 지었다. 송림공구상가가 완성되자 숭의공구상가 상인들 절반 이상이 이전하면서 예전의 영화를 잃기 시작했다. IMF 경제 위기를 겪고, 인천에 있던 공장들이 지방이나 해외로 이전하면서 숭의공구상가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직원을 여럿 두고 운영하던 철 가공 공장들이 이전한 자리에 작은 규모의 선반, 밀링 가게들과 인쇄, 자동차 관련 업체들이 입점했다. 변화 속에서도 수십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구상가들과 새로 자리를 잡은 가게들은 여전히 활기차게 하루를 열고 부지런히 생업에 매진한다.

최근 축구 전용구장과 숭의역 주변으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숭의공구상가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단층이나 2층 규모의 오래된 공구상가 건물들이 헐린 자리에 10층이 넘는 주거용 건물들이 하나하나 들어서면서 공구상가 풍경을 빠른 속도로 바꾸어 놓고 있다.

"숭의공구상가는 어렸을 적부터 저의 생활반경 내에 있는 곳이어서 그 존재를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공업'지역이어서 개인적인 관심으로도 그렇고, '문화'의 관점에서도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배다리에서 오랫동안 지역의 문화예술을 고민하고 연구해온 문화공간 '스페이스 빔'의 민운기 대표는 지난봄부터 팀을 꾸려 숭의공구상가의 형성 과정과 변천을 도시·지리적 관점에서 접근·정리하고, 2021년 현재의 모습을 다양한 시선으로 살펴보고 기록하는 '2021 배다리 도시학교_숭의공구상가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최근 축구 전용구장과 숭의역 주변으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숭의공구상가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단층이나 2층 규모의 오래된 공구상가 건물들이 헐린 자리에 10층이 넘는 주거용 건물들이 하나하나 들어서면서 공구상가 풍경을 빠른 속도로 바꾸어 놓고 있다. 숭의공구상가 전경 ⓒ 박수희

 

▲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는 숭의공구상가는 우리의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의 삶을 진단하며,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특별한 환경 지역이라고 밝혔다. ⓒ 박수희


민운기 대표는 "이곳은 공업 도시 인천의 정체성과 직접 연결된 곳이지만, 안타깝게도 한 때의 활력을 뒤로하고 이렇다 할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쇠락해가고 있다"며 "조금 열린 사고와 태도로 바라보면 숭의공구상가는 우리의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의 삶을 진단하며,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특별한 환경을 지닌 지역"이라고 밝혔다.

숭의공구상가의 역사와 기계 공구 제작, 유통에 관해 공부하고 조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관련 자료가 거의 없어서 숭의공구상가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작업이나 운영 형태 등을 살펴보며 전체적인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팀원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그대로 살펴보고 이를 글, 사진, 영상, 그림에 담았다.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에도 오피스텔 공사 현장은 바쁘게 돌아가고 새로운 오피스텔 건립을 위해 가게를 이전하고 철거하는 곳이 하나둘 늘었다. 남쪽 게이트에서 숭의공구상가 안쪽을 바라보면, 세월을 견뎌온 저층의 공구상가들과 상가를 허문 땅에 들어차고 있는 중층 규모의 오피스텔 건물들, 그 뒤로 우주선처럼 번쩍이는 축구 전용구장, 병풍처럼 서 있는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묘한 도시 풍경을 자아낸다.

조사를 맡은 팀원들은 각각의 관심사와 시선을 교차시키며 적절한 방식과 결과를 찾아 작업을 진행했다. 그동안의 작업 진행 상황을 소개하고, 중간 결과물 위에 더 많은 자료를 채우고 보완하기 위해 '숭의공구상가_오픈 캠프(Open Camp)' 전시회를 준비했다. 사진, 스케치, 영상, 지도, 연표 등을 통해 숭의공구상가를 들여다보고 상상할 수 있다.
 

▲ 인천 최초의 공구상가인 숭의공구상가를 기록하는 '숭의공구상가_오픈 캠프(Open Camp)'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스케치, 영상, 지도, 연표 등을 통해 숭의공구상가를 들여다보고 상상할 수 있다. ⓒ 박수희

 

▲ 인천 최초의 공구상가인 숭의공구상가를 기록하는 '숭의공구상가_오픈 캠프(Open Camp)'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스케치, 영상, 지도, 연표 등을 통해 숭의공구상가를 들여다보고 상상할 수 있다. ⓒ 박수희


전시회는 카페 '지니인어보틀' 안에 마련돼 있다. 숭의공구상가 한복판에 있는 카페 지니는 숭의공구상가 리서치팀의 베이스캠프다.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가 부리는 마법의 도움을 받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뜨겁던 지난여름 기록작업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카페 지니는 다분히 숭의공구상가스럽다. 인테리어 주재료가 '철'이다. 철재 각 파이프로 만든 테이블과 철을 오리고 붙여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금속작품들이 넓은 카페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양한 음료와 푸짐한 수제 샌드위치는 '가심비' 갑이다.

민 대표는 "우리 조사작업은 현재진행형으로 열어두고 보완하고 공유하려 하는데 우리 모두가 숭의공구상가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보듬어야 할 소중한 자산임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2주 동안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올 연말까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연장했다. 진행된 조사작업은 연말에 자료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등 산업구조의 재편 속에서도 이들 시설이나 장비 및 관련 생태계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분들의 남다른 기술력과 경험은 존중받고 이어가야 할 공공재입니다."

숭의공구상가는 이곳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점점 평평해지는 도심 속에 특별한 경험과 기억을 새기고 있다.
 

▲ 모터 수리 중인 숭의공구상가 사장님 ⓒ 박수희


■ 2021 배다리 도시학교_숭의공구상가 리서치 프로젝트 '오픈 캠프Open Camp' 展
○ 장소: 카페 지니인어보틀 (인천 미추홀구 샛골로 89번길)​
○ 관람 시간: 10:00~18:00 (매주 토, 일요일 휴관), 2021년 연말까지
○ 문의: 010 5302 8630 (스페이스 빔)

글· 사진 박수희 i-View 객원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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