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게 쉽지 않네요" 어느 초등학생의 한마디
전북 순창군 금과초등학교 전교생의 벼 수확 체험
▲ 앞쪽 두 줄 왼쪽부터 학생이름(학년) 추승민(5) 박범수(6) 송윤슬(5) 이진욱(3) 오다봄(5) 박민혁(1) 강가영(6) 박세은(4) 나경원(2) 유지희(4) 주세인(6) 이도현(5) 김문석(3) 김송현(5) 박준영(6). 왼쪽에서 4번째 뒷줄 왼쪽부터 교사 박광민, 최수민, 백홍열, 나광주, 이은혜. 맨 오른쪽 오득빈 그 앞에 이희경. ⓒ 최육상
가을의 푸른 하늘과 누런 논은 분명한 대조를 이뤘다. 수확의 계절, 전북 순창군 금과초등학교 전교생이 논에 나와 낫을 잡았다. 전교생 열다섯 명은 지난봄에 직접 손으로 모를 낸 논에서 황금빛 물결치는 벼를 수확해 탈곡하고 빻아 각자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 갔다.
초등학생들은 '순창 씨앗 받는 농부' 회원들의 지도에 따라, 자신의 손보다 큰 낫 손잡이를 부여잡고 엉거주춤하게 논바닥을 기면서 벼 베기를 체험했다. 초등학생들은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입을 가려 동그란 눈만 보였다. 학생들의 눈동자는 '호기심 천국'을 여행하는 듯 똘망똘망 빛났다.
"아이들이 농사짓는 게 쉽지 않다고 해요"
금과초등학교(교장 이금옥) 오득빈 교사는 뿌듯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봤다.
"전교생 15명 하고 선생님 7명이 모두 나왔어요. '토종 논 학교'라는 모임을 학부모님이 제안하셔서 올해 처음 손 모내기부터 시작해 오늘 벼를 베고 탈곡 체험하며 마무리하는 날이에요.
사실은 농촌 아이들도 논을 지나다니며 보기만 했지, 벼를 어떻게 심고 가꾸고, 어떠한 노고가 들어가는지 모르죠. 아이들이 모내기부터 쭉 체험하면서 지금은 '농사짓는 게 쉽지 않다'고, '농부님들에게 고맙다'고 말해요. 하하하."
▲ “낫으로 벼 베기 쉽지 않네.” ⓒ 최육상
▲ “‘홀태’에 벼 이삭을 끼워서 훑으면 되는데, 어 힘드네.” ⓒ 최육상
▲ “‘탈곡기’에 이삭을 가져다대면 알곡이 톡톡 떨어져요” ⓒ 최육상
농부들의 도움을 받아 낫으로 벼를 벤 학생들은 '홀태'를 이용해 알곡을 빼내는 체험을 했다. 옆에서는 발로 밟아 돌아가는 탈곡기를 이용해 알곡을 빼냈다. 낟알이 툭툭 튕겨져 나가는 모습에 아이들은 신기한 듯 쳐다봤다.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볏단을 감아쥔 학생들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봄에 조그만 거 심었는데, (벼가) 이렇게 커서 신기해요."(이진욱·3학년)
"벼 베기는 오늘 처음 해 봤는데, 제가 심은 거 (수확)하니까 뿌듯해요."(주세인·6학년)
낫질, 홀태·탈곡기·키질 사용법 체험
▲ “‘키질’은 쭉정이는 날리고, 알곡만 남기는 거예요.” ⓒ 최육상
▲ “흑미가 왜 잘 안 찧어져요?” ⓒ 최육상
'순창 씨앗 받는 농부' 회원들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낫질과 홀태·탈곡기 사용법, 키질 방법 등을 가르쳐줬다.
"여기 떨어져 있는 이삭 사이로 잎사귀가 많이 보이죠. 잎사귀 하고 껍데기는 날려내고 알곡만 남겨야 해요. '키질'은 쉬운 건 아니니까 선생님들이 설명해 주면 나중에 체험하고요. 이삭 껍질을 벗겨야 먹을 수 있잖아요. 옛날에는 연자방아, 물레방아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죠? 알곡은 원래 말려야 하지만, 오늘은 플라스틱 절구에 흑미를 한 줌씩 넣어서 찧어볼 거예요."
벼 수확을 위해 논을 찾은 초등학생 일행을 본 한 주민은 농부 회원에게 무심한 듯 말했다.
"여그 화장실 열어놓았으니까 아이들하고 함께 쓰면 돼. 근디, 화장지가 없어. 화장지는 준비해야 혀."
"아이들이 적어서 많은 걸 할 수 있어요"
오득빈 교사는 "순창의 면 단위에 있는 금과초 같은 작은 학교가 코로나 시대에는 오히려 좋은 점이 많다"며 말을 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학생 수가 많은 도시 학교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진 않아요. 요즘은 특히 체험학습 같은 게 너무 어려워졌죠. 그래도 순창은, 금과초는 아이들이 적어서 많은 걸 할 수 있어요. 학교생활이라는 게 공부도 있지만, 다양하게 체험하면서 배우는 과정이 더 중요하잖아요."
초등학생 무리 중에서 분홍색 윗옷을 입은 학생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학생들에게 금과초 막내가 누군지 묻자, 공교롭게도 분홍색 옷 학생을 지목했다. 벼 베기 소감을 물었더니, 엉뚱한 대답이 돌아온다.
"저는 이 마을 살아요. (손가락으로 논 앞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 저~기가 우리 집이에요. 봄에 벼 심었어요. 이번에 (벼 베기, 탈곡) 처음 해 봤는데, 재밌어요."(박민혁·1학년)
▲ “잘 빻은 흑미 한 봉지씩 가져가서 밥 해 먹어요.” ⓒ 최육상
체험을 마친 초등학생들은 직접 수확한 알곡 한 봉지씩을 손에 들고 왁자지껄 소란을 떨었다. 초등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누런 벼들이 살랑살랑 손짓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한 농부회원의 뜬금없는 제안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농촌 학교 아이들 숫자가 자꾸 줄어드는데 이 참에, 전국 최초로 농부초등학교 만들면 어떨까요? 금과농부초등학교. 전국의 미래 농부들이 모두 모이지 않겠어요?"
▲ 벼 농사 체험 끝~~. 금과초등학교 전교생 15명과 교사 7명, ‘순창 씨앗 받는 농부 회원들. ⓒ 최육상
덧붙이는 글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10월 27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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