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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안 나오는 아이들에게 잔소리 대신 필요한 것

애착의 시기 만큼이나 중요한 사춘기 이후... 아이들과 건강하게 거리두기

등록|2021.11.06 19:37 수정|2021.11.06 19:56
'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회에는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편집자말]
요즘 큰아이가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드라마에 빠져 있다. 월요일이면 지난주 방영한 드라마를 틀어놓고 웃거나 감탄하거나 답답해 하는 등 드라마 속 주인공들에게 몰입을 하며 본다. 평소 '오그라드는' 연애 이야기는 못 보겠다고 말하던 녀석이었는데 이 드라마는 재미있나 보다.

이제 열여덟 살인데 '다 큰 어른들의 연애감정을 얼마나 알려나?' 싶은 마음에 같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남자 주인공의 대사에 감동하기도 하고, 여주인공의 행동에 응원 또는 비판을 아낌없이 날린다. 딸이 나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는데, "엄마, 나도 알거 다 알아~" 이다. 그 말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는데, 어쩌면 정말 알 거 다 아는 나이가 된 건 아닐까 싶기도.

잘 놓아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
 

▲ 아이가 자라서 나와 분리된 객체가 되고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잘 떠나보내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은 많지 않다. ⓒ elements.envato


2004년 어느 여름날, 간호사 선생님께서 갓 태어난 아기를 내 배 위에 올려놓자, 찡그린 얼굴로 나를 향해 움직이던 아이의 모습은 바로 어제처럼 선명하다. 걸음마를 막 시작할 무렵, 퇴근해서 지하철 역을 나오면 외할머니 손을 잡은 꼬꼬마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곤 했다.

가족이 모두 베트남에 와서 살게 되어 알파벳만 외운 상태로 이곳 유치원에 처음 갔을 때,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엄마, 나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너무 무서워'라고 말하던 아이의 표정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순간이다.

그 모든 일들이 내게는 선명한 사진처럼 남아 있는데, '언제 크지?'라고 투덜대며 육아를 고단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는데, 아이는 참 빨리도 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학교에서 여행을 가던 날 트렁크에 짐을 챙겨넣으며 마음이 너무나 이상했다. 그 전날 밤, 여행가는 길 버스 안에서 읽으라며 손에 쥐어줄 편지를 적으며 청승맞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엄마의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첫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해맑게 웃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친구들과 사라졌다. 그때 생각했다. 잘 놓아주고 잘 보내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아이가 처음 태어나면 엄마의 모성애와 애착을 강조하는 육아서와 멘토들의 조언은 온 세상에 넘친다. 아이에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아이를 안심시키고, 아낌없는 사랑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아이 곁에 바짝 붙어 아이가 경험하는 최초의 인간관계 역할을 긍정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접한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역할을 열심히 하려고 애써보기도 했고, 잘 안 되는 날이면 힘들어하고 죄책감을 갖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아이가 자라서 나와 분리된 객체가 되고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잘 떠나보내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은 많지 않다.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며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하고, 밥먹고 나면 방에 쏙 들어가 나오질 않고, 엄마에게 불만도 터뜨리는 나이가 되면서 생각을 했다. '아, 내가 아이에게 엄청나게 많은 기대와 집착을 하고 바라는 게 많은 엄마였다면, 지금 이 시기가 너무너무 서운했겠구나'라고.

늘 바쁜 엄마였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엄마여서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거나, 충분한 투자와 지원을 하지는 못했다. 그 대신 잔소리를 많이 하지 않았고 기대치를 낮추었다.

순간순간,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 정도의 방향만 제시하며 키웠던 것 같다. 그 덕분에 아이가 쑥쑥 자라 사춘기를 겪을 때에도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정도의 관계는 유지되었던 것 같다.

십대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은, "아이가 무슨 일을 겪었을 때 집에 와서, '엄마 나 사실은....'이라고 털어놓을 수 있는, 그 정도의 관계는 유지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잘 키우기 위해,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감시자나 판사의 역할을 하는 엄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엄마가 나를 키울 때 판단이나 간섭을 많이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사랑과 관심은 아낌없이 표현해주셨다. 내가 좌절하고 힘들 때, 내 표정만으로 '내 새끼, 힘들어서 어쩌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주려 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는 엄마가 있어. 나를 걱정해주고 아껴주는 엄마가. 그러니까 지금의 이 힘들고 지독한 일을 겪고 나서도, 엄마가 있는 우리집에 가면 쉴 수 있을 거야'라고.

친정엄마처럼 자애로움이 가득한 엄마는 아니었겠지만 내 나름으로는 아이와의 '적절한 긍정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딱 그 정도의 엄마의 역할을 하기로 하니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엄마의 역할에 정답은 없지만 아이의 삶을 내 삶의 가치로 삼지 않으려 생각하는 나에게는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내 품에서 건강하게 떠나보내기
 

▲ 이제는 쑥 커버린 2004년생 나의 소녀. ⓒ 이나영


아이가 어릴 적엔 엄마의 관심과 지원이 아이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에너지와 정보가 넘쳐나는 다른 엄마에 비해 내가 부족해서, 아이에게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일들을 선택하고 성취해나가는 경험이었다.

부모는 그 과정에서 좋은 선택을 할 때는 인정해주고,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통해 무엇이든 배우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해주는 역할 정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부모로서의 균형을 잃지 않는 일이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어느 정도 키워놓고 보니, 아이의 삶을 내가 아무리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획해놓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놓는다고 해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기가 왔음을 느낀다. 내가 요즈음 생각하는 건,  아이가 내 손을 놓고, 내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맞닥뜨릴 수많은 경험들과 선택지 앞에서 너무 불안해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텃밭을 잘 일구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그저 잘 기다리고 싶다. 나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거나,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어서 오거나, 모든 일이 끝나고 그저 쉬고 싶어질 때에도... 내가 나의 엄마에게 가졌던 그런 마음처럼, '나에게는 엄마가 있어. 엄마에게 이야기 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고 싶다.

열여덟 살이 된 아이는 목표하는 대학의 사진을 핸드폰 바탕화면에 깔아놓고 매일 기도를 한다. 얼른 원하는 대학에 가서, 친구들과 술집에도 가고 설레는 연애도 하고 싶겠지. 자유롭게 여행하고 멋진 일을 하고 싶겠지. 아이가 꿈꾸는 미래의 풍경에 엄마의 자리는 아주 미미할 것임을 나는 안다. 그렇지만 나는 서운해 하지 않으려 한다.

내 품에서 따뜻했기를, 내가 건넨 몇몇 말들이 네 마음 안에서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나는 너의 첫 번째 어른이었을 테고, 너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 사람이고, 네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만들어준 사람이었지.

언젠가... 그 위대한 역할을 경험하게 해준 너는 나의 소중한 별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완벽하게 좋은 엄마는 아니었겠지만, 이 불완전한 엄마의 딸로 살면서 이렇게나 잘 자라준 아이에게 고맙고, 건강하게 떠나보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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