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를 대표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시대에 따라 원하는 인물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그 평가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감히 두 인물은 그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도 광화문 광장에서 이 두 인물의 동상이 변함없이 내려다 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나는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이고, 다른 분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다.

한반도 5천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 일컬어지는 세종대왕의 릉이 바로 이곳 여주에 있다. 조선왕릉은 경국대전의 규정에 의하면 '능역은 도성에서 10리(약 4km) 이상, 100리(40km) 이하의 구역에 만들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으나 여주는 이보다 멀리 떨어져 있다. 왜 세종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효종의 왕릉이 여주에 오게 된 것일까?

먼저 세종을 살펴보면 그가 살아생전에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 곁에 묻히고 싶어했고, 태종의 왕릉인 헌릉 옆에 묏자리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이 자리는 세종 제위기간에 최양선이라는 풍수가가 '이곳은 후손이 끊어지고 장남을 잃는 무서운 자리입니다'라고 살벌한 주장을 펼쳤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의 장남인 문종이 제위기간 2년을 넘기지 못했고, 손자 단종 조차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쫒겨나야만 했던 것이다. 무덤터가 불길하다고 생각한 그의 후손들은 지금의 자리로 이장해야만 했었다. 효종 역시 마찬가지였다. 효종의 왕릉은 동구릉 경내에 있었으나 석물이 파손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야만 했었다.

세종대왕의 능, 즉 영릉은 천하제일의 명당이라 여겨진다. 지금의 자리로 이장된 후 조선의 국운이 100년이나 연장되었다면서 '영릉가백년'이란 말이 생겨났다. 또한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영릉은 세종이 묻힌 곳인데, 용이 몸을 돌려 자룡으로 입수하고, 신방에서 물을 얻어 진방으로 빠지니 모든 능 중에서 으뜸이다' 칭할 정도니 과연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세종 영릉과 효종 영릉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종의 릉을 찾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사실 세종 영릉은 근래에 두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1970년 성역화 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동상과 기념관이 들어섰고, 재실 앞까지 주차장이 들어서서 조선왕릉 중 원형훼손이 가장 심각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주차장은 저 멀리 뒤편으로 밀려나고, 새로 지은 기념관이 그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재실은 새롭게 복원되었고, 구 재실은 책을 읽는 쉼터로 새롭게 거듭났다.

세종 영릉 입구에는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이 있다. 총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1실 민족의 성군 세종대왕에서는 세종의 생애와 업적을 영상과 흥미로운 자료들로 살펴 볼 수 있으며 2실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에서는 세종대왕 영릉의 능침공간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다. 3실은 북벌의 기상 효종대왕에 대해 다루는데 북벌, 하멜표류기, 나선정벌 등 효종 시절의 역사를 다루고 있었다(현재는 코로나로 닫혀 있다).
 
이제 오솔길을 따라 능역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보도록 하자. 길가에는 억세풀이 제법 자라고 신선한 공기가 코끝을 상쾌하게 자극한다. 어느덧 효종 영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세종대왕 동상을 중심으로 거대한 광장이 등장한다. 이 광장에는 세종 시절에 발명된 각종 과학기기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특히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이곳을 지나면 새롭게 복원된 재실이 눈앞에 나타난다. 한옥이라는 것은 시간이 오래될수록 그 품격이 높아지는 법인데 마치 한옥마을에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게 느껴진다. 그래도 다른 왕릉의 재실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활용법을 모색하고 있는 듯했다.

재실 마당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앵두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세종이 앵두를 좋아해서 문종이 세자 시절 궁궐에 앵두나무를 심어 열매를 세종께 올렸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각 건물 안에는 능제향 복식, 제기 등을 엿볼 수 있어 왕실의 제향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대략적인 맥락을 알 수 있게 해놓았다.

이제 구 재실을 지나 홍살문으로 들어오면 정자각, 비각을 비롯해 멀리 능침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정사각형의 연지는 물론 능역의 전체적인 관리를 꽤나 신경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단지 이곳이 왕릉이라는 생각보다는 공원같은 인상이 전체적으로 풍기는 듯했다.

능역을 뒤로 돌면 직접 세종대왕릉 능침 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세종대왕릉 가까이 석물을 영접해 볼 수 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인 영릉은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이 든다. 능침에서 밑을 바라보면 과연 천하명당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번엔 반대편 효종 영릉으로 넘어가보자. 비슷한 조선왕릉이라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언덕만 넘었을 뿐인데 분위기의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오히려 세종 영릉보다 훨씬 더 울창한 숲은 물론이고, 조선왕릉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재실이 효종 영릉에 있다.

재실에는 최소 몇백년 된 나무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이곳의 터줏대감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중 회양목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니 재실만 보러온다고 해도 효종 영릉을 가야 할 이유가 생긴다. 효종릉은 왕과 왕비릉이 언덕 위 아래로 조성된 동원상하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효종 영릉 앞에서 북벌정책을 명분으로 삼았던 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여주에는 효종과 관련된 인물인 송시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가 있다. 여주 시내 남한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그곳과 여주 시내 일대를 다음 화에 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