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말 연구는 우리의 뿌리 지키는 것"
한글학회 표창 이명재 시인 "행정·지역사회도 관심을"
▲ 한글학회로부터 ‘국어운동 공로표창'을 받은 이명재 시인. ⓒ 김수로
충남 예산지역 '들판의 말' 연구에 10년 넘게 몰두하고 있는 이명재 시인.
큰돈을 버는 것도, 전국적으로 널리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2009년 고향인 대술면지에 지역말을 연구한 글을 실은 것을 비롯해 '예산말사전(1~4권)' 등 다양한 지역말서적을 집필하며 묵묵히 한길을 걸어왔다. 2007~2018년에는 예산지역신문 <무한정보>(www.yesm.kr)에 '소중한 우리말'과 '충남예산말이야기'를 600회 가량 연재하기도 했다.
10월 18일 충청언어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글 한 편을 내밀었다. 한글날을 맞아 지은 시에 지역말연구에 힘써온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며 느낀 수상소감을 엮은 것이다.
"시월 초아흐레의 하늘이 가을빛이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이런 젼차로 나랏글을 만들 때 대국(大國)의 서슬도 푸른 가을빛이다(…) 아직도 떳떳한 줏대를 찾지 못한 이 땅에는 대양(大洋)의 먹구름 가득하고, 하늘의 가슴도 울대도 멍든 가을빛. 시월 초아흐레의 새로 스물여덟 자가 석양으로 흐르고 있다/ 나는 들풀이다. 들판 가득 어깨를 겯고 늘어선 들풀들에게 눈길을 주는 이 드물다. 홀로 뿌리내리고 돌아보는 이 없는 곳에서 엉겨붙은 뿌리들을 풀어 들판의 말을 엮는다(후략)."
이 시인이 예산말을 연구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예산말사전은 곧 우리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어요. 유대관계가 깨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의 자존감은 뚝 떨어지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내 뿌리가 있고 '촌사람'이라고 무시를 받아도 내가 당당하면 웃으며 받아칠 수 있게 돼요. 그게 인문학의 힘입니다."
▲ 예산말사전 ⓒ <무한정보> 김수로
홀로 연구를 하며 여러 고충을 겪으면서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그는 "참 힘들어요. 돈도 안 돼요. 그렇지만 언어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방언사전을 쓰려면 20년은 공부해야 하고, 대학에서 오래 연구한 사람도 10년은 걸려요. 금방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려는 사람이 없어요. 그렇다고 사투리만 잘 안다고 사전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나는 젊었을 때부터 글 쓰는 것에 목숨을 걸고 수십 년 동안 매일 써왔기에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겁니다"라고 담담히 전했다.
아쉬운 것은 행정과 지역사회의 관심이다.
"방언사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게 제주도가 특별팀을 꾸려 28억원을 지원해 만든 제주어사전이에요. 이후로 전국에서 방언사전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중 전북은 지역말 1만5000개, 경북은 2만개 정도가 올라있어요. 예산말사전은 4권까지 1만6000개를 다루고 있고, 앞으로 2만4000개까지 쓸 겁니다. 하지만 예산을 지원받기가 쉽지 않아요. 5권은 다 써놨는데도 출판비용이 없어 책을 내지 못했어요. 지역에서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언어는 시대가 변화하며 새로 생겨나고 사라져간다. 지역의 색깔과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우리말이 잊혀진다는 것은 오랜 시간 지켜온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꾸준한 열정과 노력으로 예산말을 발굴하고 기록해온 이 시인의 연구가 갖는 가치가 보다 널리 확산되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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