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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왜'... 작가들은 피가 마른다

[윤찬영의 사색] 전직 방송작가 이은혜가 쓴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등록|2021.11.04 20:20 수정|2021.11.04 20:20
"나를 키운 건 8할이 라디오다"라고 말하는 이은혜 작가는 서른한 살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꿈에도 그리던 방송작가가 되었다. 자신이 쓴 글이 처음 방송을 타던 날을 그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진행자가 입을 열어 오프닝 멘트를 하던 그 순간을 "경이롭고 두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꿈에도 그리던 일의 대가는 '불안'과 '차별'이었다. 그는 "방송가에서 5년여를 일하며 매일같이 업계의 부조리를 목격했다"고 했다. 5년간 늘 그의 주변을 맴돌던 불안과 차별 그리고 부조리는 결국 그를 덮쳐왔다. 그는 한순간에 직을 잃었다.
 
쓰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일이 있다... 내게는 그게 방송가에서 보고 겪은 일들이었다. 얽힌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가 회한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물음표라도 던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8쪽)
 

▲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2021) ⓒ 꿈꾸는인생


2019년 10월부터 '방송가 불온서적'이라는 꽤나 불온한 제목으로 브런치에 풀어낸 그의 이야기는 어느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었고, 올해 7월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이다.

그가 끝내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왜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을까. 지난 10월 23일 이은혜 작가를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가 듣고 보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에겐 첫 방송일 만큼이나 잊히지 않는 날이 있다. 첫 급여가 입금된 날이다. 그날 통장에 찍한 숫자는 1,250,000였다.
 
숫자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작자는 제작자의 위치에서, 작가인 나는 작가의 위치에서 서로 각자의 일을 맡아 했다고 생각했는데 통장에 찍힌 숫자는 다른 얘길 했다. 금액만 놓고 보자면 나는 잉여인력이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매월 10일 즈음이면 칙칙한 얼굴로 방송국 2층을 유령처럼 배회했다. (52쪽)

그는 작가로 일하는 동안에는 누구에게도 자신이 받는 노동의 대가가 얼마인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창피해서였다. 방송을 만드는 일이 행복했고 글을 쓰는 일이 좋았지만 "노동이 평가 절하되는 일에는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일의 기쁨으로 가슴이 부풀다가도 급여의 슬픔으로 마음이 쪼그라드는 일'을 되풀이해서 겪어야 했다. 그것은 '불안'이자 '차별'이었다.

한 달만에 깨달은 그 불안과 차별은 그래도 견딜만은 했다. 한 달에 하루 이틀만 잘 넘기면 되는 일이었고, 또 앞으로 달라질 것이란 기대도 있었을 테니까.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언제라도 하루아침에 이 일을 더 못하게 될 수 있다는, 더 근본적인 불안과 차별이었다.
 
방송은 하나의 유기체 같아서, 좋은 원고나 DJ의 애드리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입 작가는 섭외에 열심이고, 경력 작가는 능란하게 원고를 써내고, PD는 찰떡같은 선곡을 하고, DJ는 공감력이 뛰어날 때 프로그램이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빛을 보지 못하면 언제나 특정인만 사라진다. (84쪽)

2019년 3월, 그는 함께 일하던 PD로부터 계약했던 1년을 채우면 나가 달라는 말을 들었다. 1년을 겨우 1주일 앞둔 때였다. 그는 "딱 죽을 맛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물음이 수도 없이 머리를 괴롭혔다"고도 했다. 하지만 짐을 챙겨 나오는 것 말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10년을 일하다가도 계약 기간조차 못 채우고 쫓겨나야 하는 방송 바닥에서 1년을 채우고 나온 건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관련 기사] 죽을 뻔한 사고 후에도... MBC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
 

▲ 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들이 MBC를 상대로 시위를 하는 모습 ⓒ 방송작가유니온


그는 인터뷰에서 "방송사 간부들은 프로그램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으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새 사람에 (정규직) PD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니까 PD에겐 새 아이디어를 요구하면서 작가는 그냥 바꾸면 그만이라고 본다는 것. 사측이 프리랜서 인력을 쉽게 쓰다 버릴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뜻이다. 또 그는 정규직 피디·기자(보도국에서는 기자가 PD 역할을 한다)와 작가 사이의 관계를 "굉장히 미묘한 관계"라고도 했다.

"대부분 옆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나 선배(피디·기자)가 작가를 채용하고 해고하기 때문에 굉장히 미묘한 관계일 수밖에 없어요. 책에서는 그런 불합리한 구조를 만드는 게 누구인지를 짚고 싶었어요. 왜 회사가 채용하고 해고하지 않고 피디에게 맡기고 뒤로 빠져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이죠."

달라지고 있지만 달라지지 않는

2017년 방송작가들의 노동조합인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이 결성됐고, 이 작가는 올해부터 집행부로 활동해오고 있다. 작가 일을 그만둔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모 방송국 보도국에서 일하던 작가가 부당해고에 맞서 방송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용기를 내 찾아갔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 방송작가유니온의 존재를 알았다.
 
무작정 1인 시위 현장으로 찾아갔다. 거대한 방송국 건물 앞에 조그만 여자가 섬처럼 서 있었다. 낯설어 눈을 동그랗게 뜨는 A 작가에게 "작가님, 힘내시라고 왔어요. 저도 그 마음 알아요"라는 말을 겨우 하고 눈물이 터졌다. 긴말 없이도 상황을 이해한 그녀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 손을 잡았다. (233쪽)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 방송작가들이 겪는 불안과 차별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MBC에서 10년간 일하다 하루아침에 잘린 두 방송작가들이 힘겨운 싸움 끝에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라는 결정을 받아낸 일도 있었다.

노동위원회에서 방송작가를 프리랜서가 아닌 회사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노동자로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MBC는 이번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 판결까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재판을 지켜보며 두 작가들은 또다시 피가 마를 수밖에 없다.
 

▲ 이은혜 작가가 방송작가유니온이 마련한 에세이 쓰기 모임을 진행하는 모습. 가운데가 이은혜 작가다. ⓒ 방송작가유니온


방송작가유니온은 지난 4월 서울지방노동청에 지상파 3사 등 주요 방송사를 대상으로 시사교양, 보도 분야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달라는 청원을 넣었고, 받아들여졌다. 고용노동부가 주요 방송사들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하는 건 제도가 도입된 뒤로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벌써 여섯 달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만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 작가는 작가들이 "(근로감독이) 무서울 거다"라면서, "60여 년 만에 처음 진행되는 방송 3사 근로감독인데 세상이 참 고요하지 않나. 거기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근로감독 초반에 일부 방송사에서 자료 폐기를 명령하거나 하는 식으로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다는 얘길 들었어요. 관련 기사도 나왔고요. 사측이 그러면 어떤 작가가 마음 놓고 근로감독에 응할 수 있겠어요. 당연히 두렵지 않을까요? 말 한마디에 명운이 갈리는 프리랜서들이잖아요. 아마도 올해 안에 근로감독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 결과를 방송사들이 성숙하게 수용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노조 조직률 3%

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은 300명이 조금 넘는다. 1만 명(추산)에 달하는 방송작가 가운데 약 3%가 가입한 셈이다. 왜 이렇게 적을까.

"작가들은 마치 점조직처럼 회사 안에서도 소수인 데다 뿔뿔이 흩어져 있어요. 노조가 생겼다거나 하는 소식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설사 소식을 들었다고 해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처지다 보니까 많이 위축돼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노조가 생긴 건 겨우 몇 년째지만 방송을 만드는 구조는 벌써 40~50년 동안 단단하게 형성돼 있으니까요. '바뀌겠어?'라는 회의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죠. 나는 방송을 하고 싶은데 불합리한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상처를 안 받으려면 둔감해질 수밖에 없어요. 해직당할 때마다 그게 별일이면 사람이 어떻게 살겠어요. 별일이 아니어야 살죠."


그는 방송작가들의 노동환경이 천차만별인 현실도 놓쳐선 안 된다고 했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어떤 작가는 정말 프리랜서란 이름에 걸맞게 출근도 하지 않고 원고만 쓴다. 자유롭게 시간을 쓰면서 여유롭게 사는 거다. 하지만 다른 작가는 정규직 직원들과 다를 것 없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야근도 하고 출장도 다녀야 한다. 그렇게 개별성이 너무 강하다 보니 '작가'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기가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소리 내 말하기 너무 어려운 환경인 건 분명해요. 그 위태로운 직마저도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당사자들이 어렵지만 목소리를 낼 때라고 믿어요. 작가들 노동환경이 이 정도나마 변하기까지에는 무섭지만 목소리를 낸 사람들, 당사자들이 있었죠.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도 있어요. 노조에 가입하는 것. 그래서 방송작가유니온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해요."

그는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가 끝내 쓰지 못했다던 '단 하나의 오프닝'을 다시 쓸 수 있을까. 언젠가 그 오프닝을 들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은혜 작가와 모든 방송작가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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