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당, 여소야대 정국의 중심 축으로
[평화민주당 연구 25] 대선 3위라는 치욕적인 패배를 겪었지만 총선을 통해 화려하게 재기해
▲ 1987년 11월 18일 군산 월명운동장에서 유세하던 당시 김대중 평민당 후보 ⓒ 조종안
평민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제1야당이 되었고, 소속 71명의 국회의원은 선명한 투사형이 많았으며 재야에서 선발된 반독재 투쟁의 전위가 다수 포함되었다. 대선에서 3위라는 치욕적인 패배를 겪었지만 총선을 통해 화려하게 재기할 수 있었다.
평민당이 대선패배와 야권분열이라는 원죄를 뒤집어쓰고 제도언론의 불공정한 보도에서도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부상한 데는 재야인사들의 입당과 공천ㆍ당직 등에서 얻은 성과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지역구 및 전국구에 23명이 출마하여 15명이 당선되어, 의회에 진출함으로써 재야 운동세력의 합법적 정치활동의 기반을 열었다. 이는 평민당 당내 의원 71명 중 21.1%를 차지하는 상당한 것이었다. (주석 1)
평민당이 공천한 재야인사 중 지역구로는 강금식(성동갑), 임채정(노원을), 김학민(서대문 갑), 이상수(중량갑), 이해찬(관악을), 고광진(동대문을), 이철용(도봉을), 양성우(양천갑), 김용석(인천북구갑), 이찬구(성남을), 권운상(구리), 송진섭(안산), 장순식(평택), 장동찬(예산), 서경원(영광ㆍ함평), 박석무(무안), 김영진(강진ㆍ완도), 유인학(영암), 박상천(고흥), 정상용(광주서갑), 오탄(전주갑) 등 21명이 출마하여 강금식, 이상수, 이해찬, 이철용, 양성우, 이찬구, 서경원, 박석무, 김영진, 유인학, 박상천, 정상용, 오탄 등 13명이 당선되고, 전국구로는 박영숙(전국구 1번), 문동환(전국구 12번)이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평민당 초기에 평민연 출신 재야입당파는 상임고문(문동환), 부총재(박영숙), 중앙정치연수원장(임채정), 대외협력위원장(이길재), 기획조정실장(이명준), 인권위원회 부위원장(오대영), 사무차장(이경배), 부대변인(장영달), 중앙정치연수원 부원장(유시춘), 정책실 부실장(고광진), 당보부주간(김학민) 등 주요당직을 맡았으며, 각 실ㆍ국에 26명의 회원이 참여하였다. 특히 정치연수원을 맡은 평민연은 평민당 초기 2년동안 체계적인 당원교육프로그램인 '평민대학'을 만들어 총 10기에 걸쳐 1,200여 명을 교육시켰으며, 대외협력위원회를 줄곧 맡아 재야운동과의 연대의 폭을 넓히고 사회적 요구를 당의 정책에 반영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주석 2)
1988년 5월 7일 평민당은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김대중 전 총재를 다시 총재로 추대하고 박영숙 의원을 부총재로 선임하였다. 김대중은 총재직 수락연설에서 자신과 평민당의 위상과 진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비록 제1야당은 됐으나 의석은 총의원수의 4분의 1도 못된다. 사상 처음 있는 소수여당의 상황 아래서 우리가 짊어진 책임은 의석수 비중보다 훨씬 더 크고 무겁다.
소수지만 제1야당으로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정국을 주도해야 할 미묘한 현실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염려되는 바 있다. … 우리는 그들(노태우정권)과 진지한 대화를 통한 정치발전의 새로운 장을 펼쳐나갈 용의가 있다. (주석 3)
평민당은 13대 국회를 대화와 투쟁이라는 양날의 칼을 활용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4당 정립의 구조에서 다른 야당과 협력과 연대 없이는 아무런 일도 하기 어렵고, 이와 함께 김총재와 평민당이 추구해 온 가치와 선명성을 확보하고 지켜나가는 일도 중요했다.
무엇보다도 정국 대처방법은 '대화'로 표명됐지만 그 대상의 상당 부분은 자칫 대화가 배제되기 쉬운 민감한 권력관계 사안들이다. 김총재가 13대 국회의 과제로 제시한 △ 광주사태 진상조사 △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부정축재 조사 △ 경찰중립화 △ 국가보안법 등 개폐 △ 안기부ㆍ보안사의 정치개입 종식 등이 그것이다.
또한 이같은 사안들을 다뤄가면서 평민당 외곽의 '강경' 목소리를 어떻게 수용, 소화하느냐도 큰 숙제다. 요컨대 김총재와 평민당이 쏟아놓은 수많은 공약들을 '대화'라는 또 다른 공약으로 어떻게 실현해 내느냐가 과제인 셈이다. 정치력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석 4)
▲ 13대총선 결과 제1야당이 확정되자 평민당 당사에서 김대중이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 민청련동지회
김대중은 임시전당대회의 총재직 수락연설을 통해 평민당이 추구하는 열 가지의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모든 양심범의 전원 석방과 전면적인 사면ㆍ복권의 단행이다. 지금 감옥에는 500여명의 노동자를 포함한 학생과 민주인사 1,000여 명이 분노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민주화를 지향하는 이 마당에 그들을 방치한 것은 국민과 인류 양심에 대한 기만이요 배신이다.
둘째, 광주의거의 진상을 밝히는 조사위원회를 국회에 구성해야 한다. 이 위원회는 국정감사권을 행사해야 하며,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구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셋째, 국회는 전두환 일가의 부정축재에 대한 진상을 조사해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국내외 부정축재한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
넷째, 지난 대통령 선거와 이번 총선에서 자행된 부정이 철저히 파헤쳐져야 한다. 특히 지난 대선은 전면적인 부정이었다.
다섯째, 우리는 국가보안법ㆍ사회안전법ㆍ사회보호법ㆍ집시법ㆍ노동관계법 등 수많은 악법을 가지고 있다. 이를 전면 개정 내지 폐지해야 한다. 특히 5ㆍ17쿠데타 이후 '국보위'에서 멋대로 만든 악법은 전면 폐지해야 한다.
여섯째, 우리나라 정치를 4반세기 동안 독재의 굴레 밑에 신음하게 만든 안기부와 국군보안사령부의 정치개입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일곱째, 경찰의 중립화를 위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경찰의 중립화를 위한 공안위원회를 구성하여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야 한다.
여덟째, 반민족적이고 인간의 양심이 용납할 수 없는 지방색을 일소하는 데 앞장 설 것이다. 국회의 특위를 구성하여 본적지 제도 폐지, 행정구역개편, 도의 명칭변경, 인재등용과 지방개발의 공정한 추진, 범국민적인 화합운동을 전개한다.
아홉째, 전면적인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당운을 걸고 추진할 것이다. 지방자치 없이는 민주주의가 없고 지방행정이 주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될 수 없다. 단체장과 지방의회 선거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열 번째, 올림픽의 성공적이 개최와 북한의 참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문제는 국가차원의 정치문제가 아니라 서울시가 주최하는 스포츠 제전이라는 점을 유의하여 정부가 아량을 보이도록 하겠다. (주석 5)
주석
1> 정기영, 「재야의 정치세력과 민주화 투쟁」, 류상영 외『김대중과 한국야당사』, 227쪽,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3.
2> 평화민주통일연구회, 『새로운 지평을 열며 : 제3차 정기총회자료집』(1990), 739쪽.
3> 『동아일보』, 1988년 5월 7일.
4> 앞과 같음.
5> 『평화민주당 1989년』, 290~293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평화민주당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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