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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인삼 같은 이 뿌리, 정체가 뭐냐면

번식력이 왕성한 서양고추냉이, 직접 길러보니

등록|2021.11.04 16:07 수정|2021.11.04 16:14
이름도 이상한 홀스래디쉬(horseradish)는 서양 고추냉이다. 매운맛이 나는 무 같은 뿌리인데, 강판에 갈아서 소스로 사용된다. 일식집의 고추냉이나 겨자 같은 종류의 매운맛이 나서, 서양에서는 비싼 일식 고추냉이 대신 이 뿌리를 갈아서 녹색 색소를 넣어 대신에 사용한다고도 한다. 물론, 원래는 양식 요리에 어울리는 소스를 만드는 데에 사용된다.

가장 잘 어울리는 요리는 프라임립 스테이크라고 하는데 생굴에도 썩 잘 어울린다. 내가 처음으로 생 홀스래디쉬를 먹은 것은 남편의 생일 때였는데, 그의 자식들이 음식거리를 모두 장만해가지고 와서, 애피타이저부터 풀 코스로 마련했을 때였다.

생굴을 종류별로 준비해와서는 즉석에서 뚜껑을 따고, 그 자리에서 홀스래디쉬를 강판에 갈아서 서빙했는데, 나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 강판에 직접 갈아서 굴 옆에 장식한 하얀 홀스래디쉬. 굴 위에 조금씩 얹어서 먹으면 아주 맛있다. ⓒ 김정아


전에도 가끔 이 홀스래디쉬를 먹었지만, 그때는 늘 병에 들어서 판매되는 소스였는데, 이렇게 신선하게 방금 간 것을 먹으니 정말 풍미가 좋고 맛있었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는 그냥 흐지부지 잊혔는데, 가드닝을 시작하면서 올해 다시 홀스래디쉬를 만나게 되었다. 인심 좋은 지역 텃밭 모임 회장님이 무료 나눔 공지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 글을 보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오! 저건 득템 해야 해!" 그러면서, 그렇게 신선한 홀스래디쉬를 마당에서 길러서 언제든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하는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봄이 되면서 나는 그 댁에 두릅나무 모종을 구매하러 갔고, 거기서 홀스래디쉬를 얻어오기에 이르렀다.
 

▲ 풍성한 쑥과 돌나물 뒤로 보이는 자그마한 홀스래디쉬 모종 ⓒ 김정아


나는 신이 나서 남편에게 보여줬는데, 남편은 난색을 표했다. 이 홀스래디쉬가 번식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근처 땅을 다 점령하면서 엄청나게 퍼져나가서 나중에 제거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텃밭에 심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시무룩해졌다. 저 맛있는 홀스래디쉬를 키우고 싶단 말이다. 남편도 좋아한다면서 땅에는 안 된다니! 그러나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뿌리가 워낙 크게 자라니 꼭 땅에 심으라던 회장님의 당부를 뒤로 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들어갔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홀스래디쉬를 화분에서도 키우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화분에서 키우기를 장려하기도 하였다. 감당하기 어렵게 번지는 홀스래디쉬를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홀스래디쉬를 화분에 심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서 가장 큰 화분에 드디어 이 뿌리를 심었다. 이 정도만 자라준다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심은 후 지켜보기로 했다.
 

▲ 화분에 비해서 너무나 작아보이는 홀스래디쉬 ⓒ 김정아


홀스래디쉬는 정말 무럭무럭 잘 자랐다. 기름진 흙에 심어줬더니 잎도 윤기가 좔좔 흐르고 아주 탐스러웠다. 이 여린 잎은 잘게 썰어서 샐러드에 섞어도 풍미가 좋다던데, 저 당시에는 잘 몰라서 잎을 먹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어라? 한쪽에 조그맣게 감자 싹이 올라왔다. 어찌 된 일이지?
 

▲ 홀스래디쉬와 감자 싹 ⓒ 김정아


텃밭 회장님께 확인해봤는데, 댁에서는 감자를 심은 적이 없다고 하셨다. 어디서 날아온 씨감자란 말인가? 나는 새 거름흙을 털어 넣었으니 먹다 만 감자가 음식쓰레기로 들어갔을 리 없었다. 어찌할까 하다가 그냥 일단 두고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감자가 너무나 신나게 자라기 시작했다.
 

홀스래디쉬와 감자의 동거주인공 홀스래디쉬보다 커져가는 감자싹 ⓒ 김정아


급기야 주인공의 키를 넘어서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결국 감자를 뽑아내고 화분 아래쪽을 흙을 더 넉넉히 채운 후 다시 넣어서, 홀스래디쉬가 크게 자라도록 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이제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이 홀스래디쉬를 어찌할까 하다가, 뽑아서 먹기로 했다. 홀스래디쉬는 추위에 상당히 강한 편이고, 오히려 겨울을 나야 내년에 더 잘 자란다고 한다. 만일 땅에 심었다면 스스로 월동하게 두고, 뽑을 생각은 안 했을 것 같다.

하지만 화분에서 월동시키는 것은 좀 찜찜했고, 오히려 겨울이 춥지 않은 동네면 차라리 이렇게 뽑아서 잘 씻어서 말려 냉장했다가 봄이 채 오기 전에 다시 심으라는 권고가 있었다. 또한 작게 잘라서 심어도 잘 자란다고 하니 수확을 해서 먹고, 남은 것은 심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화초처럼 예뻐서 현관 앞에 데려다 놓았던 이 홀스래디쉬는 이제 잎이 누렇게 되면서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잎을 정리할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편안하게 정리하려고 뒷마당으로 데려왔는데, 얼마나 무겁던지, 남편이 도구를 이용하여 끌고 왔다.
 

▲ 가을이라 잎이 누렇게 바랜 홀스래디쉬를 뒷마당에 끌고 와서 해체하였다. ⓒ 김정아


그리하여 뽑아보려니 꼼짝을 안 했다. 결국 화분을 엎었다. 세상에! 잔뿌리가 잔뜩 엉켜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있었다. 이래서 사방으로 번진다는 소리를 하였구나 싶었다. 손으로 흙을 분리하려니 잘 되지 않아서 물을 뿌리면서 해체를 하였다.

그런데, 저 동그란 것은 무엇이지? 맞다. 싹을 다 뽑아냈던 감자가 한 덩어리 그 안에서 혼자 살아남아 나름 조금 자란 것이었다. 생명은 정말 신기하다! 땅에 놓고 물을 뿌리다가, 쪼그리고 앉아서 흙을 파내다가, 결국은 나무에 매달고 다시 물을 뿌려가며 흙을 제거했다. 감자도 분리해냈다.
 

▲ 결국은 공중에 매달아 놓고 흙을 털어냈다. ⓒ 김정아


드디어 뿌리의 윤곽이 드러났다. 두 개처럼 생겼던 이 홀스래디쉬의 뿌리는 엉킨 뿌리를 풀고 또 풀어도 결국 하나였다.  위의 머리는 두 개, 그러나 아래의 뿌리는 모두 한 식구였던 것이다. 갈래갈래 갈 길은 각자 다양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나는 당근의 확대판 같은 모양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었는데, 복잡한 인삼 뿌리도 아니고, 정말 기괴했다. 한국 같으면 이대로 큰 유리병에 담아서 소주를 부어 장식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깨끗하게 씻은 홀스래디쉬 뿌리 ⓒ 김정아


나는 뿌리가 더 굵을 것은 기대했는데, 판매되는 뿌리보다 가늘어서 좀 아쉽다. 하지만 잔뿌리를 하나 씹어보니 엄청나게 매운 것이 아주 제대로였다!

위의 녹색 부분을 마저 잘라내고 그대로 하루를 말렸다. 그러고 나서 비닐봉지에 엉성하게 담아서 냉장실로 보냈다. 이렇게 보관하면 6~8개월 정도 상하지 않고 보관하며 그때그때 꺼내서 갈아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물론, 봄이 되면,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심으면 된다 하니, 편한 마음으로 일단 냉장고로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갈아서 뭔가랑 먹고 싶지만,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홀스래디쉬야, 상하지 말고 잘 견뎌다오.
 

▲ 잎 줄기 부분을 잘라내고 그대로 살짝 말려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6개월이 거뜬하다. ⓒ 김정아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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