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시계는 3시 20분. 눈꺼풀은 무거운데 자꾸 잠이 깬다.'
피곤했던 몸 상태와는 다르게 밤새 잠을 설쳤다. 오랜만에 집이 아닌 곳에서의 잠자리가 낯설어서였을 테다. 잠이 깨었다 다시 들길 여러 차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든 것 같다. 평소 같으면 설친 잠자리 탓에 이른 모닝콜이 한참 울려야 간신히 일어났겠지만 여행자의 설렘이 알림음이 울리기도 전에 나를 깨웠다.
오늘 나설 길은 내가 지금까지도 매년 올레를 찾게 된 동기가 된 곳이자, 새로운 즐거움을 깨닫게 해 준 내 첫 번째 올레길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올레 여행자들이 올레를 처음 오게 되면 꼭 찾는다는 바로 7코스다.
길의 길이가 17.6Km에 이르는 조금은 긴 코스다. 이른 시간부터 부지런을 떨었지만 10코스 도착점에서 7코스 도착점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건 만만치가 않았다. 게다가 한 번에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 환승하여 가는 편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일찍 길을 나서려고 했던 계획에 조금은 늑장을 부린 시간이 되어버렸다.
어렵사리 도착한 7코스 도착지점 앞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식당들 몇 개와 작은 슈퍼마켓이었다. 7년 전 찾았던 내 첫 올레의 하루를 마무리지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출장길이었던 탓에 당시 완주는 아니었지만 세, 네 시간의 긴 산책으로 얻은 게 많았던 하루였었다.
적당히 좋은 계절이었고, 적당히 흘렸던 땀을 식히며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김치찌개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그날 올레에 반해버렸던 내가, 그 하루가 생각이 난다.
나는 늘 출발점에서 시작해 도착점까지 완주하는 코스를 고집했는데 오늘은 그렇게 왔던 길을 반대로 걸어보려고 시도했다. 항상 열려 있는 마인드에 융통성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되짚어보면 고집스러우리만치 늘 계획을 세워야 했고, 매뉴얼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한 행동들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오답 제출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었던 삶 속에서 항상 조바심을 내며 아파도 아닌 척, 달라도 같은 척을 하며 지낸 시간들이 많았다. 다시 찾은 올레에는 오답이 없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이 제각각이어도 저마다의 정답이고, 해답이 된다. 그래서 난 오늘 7코스를 역으로 완주하기 위해 도착점에 섰고, 길의 이정표도 평소와는 다른 주황색 화살표를 따라 걸어간다.
길 위에서 처음 마주한 곳은 월평포구와 강정포구였다. 작은 두 개의 포구에는 포구만큼이나 작은 몇 대의 배만이 가지런히 정박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구와 포구를 잇는 올레길은 좁았지만 정감이 가는 바닷길이었고, 군데군데 밟히는 바다 해안 돌들이 올레의 멋스러움을 여행자에게 안겨준다. 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멈춰 서서 올레만의 느림과 여유로움을 잠시 만끽하고 발걸음을 다시 돌린다.
늦어진 발걸음 탓에 점심을 먹기 위해 계획했던 법환포구까지는 제법 길이 길었고, 서두르지 않으려고 했던 여행자의 발길은 어느새 구슬땀을 이마에 뿌리며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던 내게 여러 개의 돌탑들이 눈에 들어왔고, 올해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이 생각나 쌓인 돌탑 사이에 작은 소원을 담아 가지런히 돌을 올려 보았다.
잠시 욕심내어 더 올려볼까 했지만 튼튼하게 오래 버틸 수 있는 4단 돌탑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살면서 내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욕심을 낸 적 있었다. 터무니없는 욕심은 마음에 상처뿐 아니라 삶 자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딱 소망하는 만큼의 돌로 그 소망하는 바람을 쌓고 난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정오를 즈음해서 마주한 곳은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 가려고 한 장소인 법환포구였다. 길 위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조금은 큰 마을이다. 조용한 포구는 아니었지만 제주 바다만의 낭만과 아름다움은 고스란히 갖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들른 식당은 언덕 위에 있는 제법 손님으로 북적이는 식당이었다. 여러 가지 메뉴들이 있었지만 1인분이 가능한 식사는 낙지 비빔밥이 전부였다. 한 시간 가까이 한 걸음에 내달은 법환포구까지 온 길에 땀도 많이 흘렸고, 갈증도 난 탓에 낙지 비빔밥에 막걸리 한 잔이 간절했다.
막걸리 한 잔이 입에 담기고 조금은 달콤 쌉싸름한 맛은 어느새 내 목을 타고 들어가 시원함을 넘어서 개운함까지 주는 기분이다. 매콤한 낙지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달콤한 맛에 잠시 쉼표를 찍었다가 금세 다시 난 길 위에 섰다.
올레를 걷다 보면 가끔 계절의 흐름을 잊을 때가 많다.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한 기후 때문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 때문에 늦가을에 와서도 봄인지 모를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꽃들 때문에 길을 걷는 내내 더 행복하고, 심심하지가 않다. 길 위를 걷다가 고개를 내민 제주의 민낯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한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선 길에서 7코스가 가장 사랑받는 이유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길은 바로 수봉로였고, 이국적이고 자연 그대로의 길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길이라 걷는 내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렇게 수봉로를 경유해 지나다 보면 깎아지른 절벽을 절경에 품은 돔베낭길이 나왔다.
길을 걷다 잠시 절경을 정면에 품은 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다시 10월 제주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며, 땀을 식혔다. 그늘 아래 시원한 커피 한잔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달아올랐던 몸은 어느새 조금씩 식어갔고, 정면에 보이는 절경 너머에 곧 펼쳐질 외돌개의 풍경을 볼 생각에 잠시 늦췄던 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걷는 걸음마다 시선은 바다 쪽을 향할 수밖에 없었고, 머리 높이 솟아있는 우거진 나무숲 덕에 한낮의 더위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앞으로 나갈 때마다 바뀌는 해안선의 풍경이 익숙해질 때쯤 바다 한복판에 우뚝 선 '외돌개'가 나오고 그 웅장함과 경이로움에 자연스레 턱이 벌어지고, 탄성이 나왔다.
외돌개를 뒤로 하고 다시 걷는 해안길은 끊임없이 걸음을 멈추게 했고, 눈에 담는 것만큼이나 다음에 다시 추억하기 위해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그렇게 해안길을 나오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올레길에서 조금은 낯선 끝없이 올라갈 것 같은 계단이다. 오늘 올레길의 여정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조금은 쉽게 생각하고 오른 삼매봉은 숨을 헐떡대며 한참을 오르고 나서야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듯이 이 길도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음을, 완만한 길이 있으면 경사가 높은 길도 있다는 삶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그렇게 길의 끝을 아쉬워할 때쯤 천지연 폭포의 장관이 눈앞에 보이고, 폭포의 웅장함은 이곳 칠십리 공원 전망대에서도 느껴질 만큼 대단해 보였다. 30여 년 전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가보고 직접 본 적이 없었던 풍경이지만 그 이질적인 모습에서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워낙 오래전 모습이었지만 폭포 아래에서 바라봤던 그 웅장했던 폭포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리만큼 어린 시절 그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비가 별로 오지 않는 가을에도 쏟아지는 폭포 물줄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같아 보였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지금 이 시간처럼 폭포의 물줄기 또한 한 번을 쉼 없이 떨어지고, 흐른다.
폭포를 뒤로하고 칠십리 공원을 빠져나오면 길은 자연이 아닌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심으로 날 데려가고 들여다본 지도 위에는 7코스의 시작점이 금방이라도 갈 만큼 가까이 보였다. 서귀포의 도심으로 들어와 올레길 이정표를 보며 차도를 몇 번 건너니 눈앞에 7코스의 시작점인 이정표와 올레 여행자센터가 눈에 들어오고 이틀간의 내 여행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종착지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자 센터에 들어와 흘렸던 땀으로 젖어버린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선 가볍게 나의 이틀간 여정을 별문제 없이, 즐겁게 마무리한 것을 자축하는 뜻에서 제주 맥주 한 잔으로 이곳을 기념했다. 한 시간여를 앉아 있는 동안 많은 여행자들이 오갔고, 다들 자신들의 여정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모습이다. 다들 생김생김은 달랐지만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만은 같은 모습이다.
이틀간의 여정에 많은 걸 비웠고, 많은 걸 담았다. 여행의 끝이 늘 아쉬움을 남기듯이 올레 여행을 마무리하는 내게도 그 아쉬움은 빗겨나가지 않는 것 같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부담이 들지만 돌아갈 일상이 있으니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양쪽 새끼발가락이 검게 피멍이 들긴 했지만 마음 한가득 추억과 여유로움을 담고 간다. 이곳에 눈도장을 찍듯이 다시 한번 눈길을 주고서 몸을 일으킨다. 난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공항으로 길을 나서야겠다.
피곤했던 몸 상태와는 다르게 밤새 잠을 설쳤다. 오랜만에 집이 아닌 곳에서의 잠자리가 낯설어서였을 테다. 잠이 깨었다 다시 들길 여러 차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든 것 같다. 평소 같으면 설친 잠자리 탓에 이른 모닝콜이 한참 울려야 간신히 일어났겠지만 여행자의 설렘이 알림음이 울리기도 전에 나를 깨웠다.
길의 길이가 17.6Km에 이르는 조금은 긴 코스다. 이른 시간부터 부지런을 떨었지만 10코스 도착점에서 7코스 도착점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건 만만치가 않았다. 게다가 한 번에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 환승하여 가는 편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일찍 길을 나서려고 했던 계획에 조금은 늑장을 부린 시간이 되어버렸다.
어렵사리 도착한 7코스 도착지점 앞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식당들 몇 개와 작은 슈퍼마켓이었다. 7년 전 찾았던 내 첫 올레의 하루를 마무리지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출장길이었던 탓에 당시 완주는 아니었지만 세, 네 시간의 긴 산책으로 얻은 게 많았던 하루였었다.
적당히 좋은 계절이었고, 적당히 흘렸던 땀을 식히며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김치찌개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그날 올레에 반해버렸던 내가, 그 하루가 생각이 난다.
▲ 올레7코스올레7코스 ⓒ 정지현
나는 늘 출발점에서 시작해 도착점까지 완주하는 코스를 고집했는데 오늘은 그렇게 왔던 길을 반대로 걸어보려고 시도했다. 항상 열려 있는 마인드에 융통성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되짚어보면 고집스러우리만치 늘 계획을 세워야 했고, 매뉴얼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한 행동들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오답 제출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었던 삶 속에서 항상 조바심을 내며 아파도 아닌 척, 달라도 같은 척을 하며 지낸 시간들이 많았다. 다시 찾은 올레에는 오답이 없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이 제각각이어도 저마다의 정답이고, 해답이 된다. 그래서 난 오늘 7코스를 역으로 완주하기 위해 도착점에 섰고, 길의 이정표도 평소와는 다른 주황색 화살표를 따라 걸어간다.
길 위에서 처음 마주한 곳은 월평포구와 강정포구였다. 작은 두 개의 포구에는 포구만큼이나 작은 몇 대의 배만이 가지런히 정박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구와 포구를 잇는 올레길은 좁았지만 정감이 가는 바닷길이었고, 군데군데 밟히는 바다 해안 돌들이 올레의 멋스러움을 여행자에게 안겨준다. 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멈춰 서서 올레만의 느림과 여유로움을 잠시 만끽하고 발걸음을 다시 돌린다.
늦어진 발걸음 탓에 점심을 먹기 위해 계획했던 법환포구까지는 제법 길이 길었고, 서두르지 않으려고 했던 여행자의 발길은 어느새 구슬땀을 이마에 뿌리며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던 내게 여러 개의 돌탑들이 눈에 들어왔고, 올해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이 생각나 쌓인 돌탑 사이에 작은 소원을 담아 가지런히 돌을 올려 보았다.
잠시 욕심내어 더 올려볼까 했지만 튼튼하게 오래 버틸 수 있는 4단 돌탑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살면서 내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욕심을 낸 적 있었다. 터무니없는 욕심은 마음에 상처뿐 아니라 삶 자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딱 소망하는 만큼의 돌로 그 소망하는 바람을 쌓고 난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 올레7코스법환포구 ⓒ 정지현
정오를 즈음해서 마주한 곳은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 가려고 한 장소인 법환포구였다. 길 위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조금은 큰 마을이다. 조용한 포구는 아니었지만 제주 바다만의 낭만과 아름다움은 고스란히 갖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들른 식당은 언덕 위에 있는 제법 손님으로 북적이는 식당이었다. 여러 가지 메뉴들이 있었지만 1인분이 가능한 식사는 낙지 비빔밥이 전부였다. 한 시간 가까이 한 걸음에 내달은 법환포구까지 온 길에 땀도 많이 흘렸고, 갈증도 난 탓에 낙지 비빔밥에 막걸리 한 잔이 간절했다.
막걸리 한 잔이 입에 담기고 조금은 달콤 쌉싸름한 맛은 어느새 내 목을 타고 들어가 시원함을 넘어서 개운함까지 주는 기분이다. 매콤한 낙지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달콤한 맛에 잠시 쉼표를 찍었다가 금세 다시 난 길 위에 섰다.
올레를 걷다 보면 가끔 계절의 흐름을 잊을 때가 많다.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한 기후 때문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 때문에 늦가을에 와서도 봄인지 모를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꽃들 때문에 길을 걷는 내내 더 행복하고, 심심하지가 않다. 길 위를 걷다가 고개를 내민 제주의 민낯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한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선 길에서 7코스가 가장 사랑받는 이유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길은 바로 수봉로였고, 이국적이고 자연 그대로의 길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길이라 걷는 내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렇게 수봉로를 경유해 지나다 보면 깎아지른 절벽을 절경에 품은 돔베낭길이 나왔다.
길을 걷다 잠시 절경을 정면에 품은 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다시 10월 제주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며, 땀을 식혔다. 그늘 아래 시원한 커피 한잔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달아올랐던 몸은 어느새 조금씩 식어갔고, 정면에 보이는 절경 너머에 곧 펼쳐질 외돌개의 풍경을 볼 생각에 잠시 늦췄던 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걷는 걸음마다 시선은 바다 쪽을 향할 수밖에 없었고, 머리 높이 솟아있는 우거진 나무숲 덕에 한낮의 더위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앞으로 나갈 때마다 바뀌는 해안선의 풍경이 익숙해질 때쯤 바다 한복판에 우뚝 선 '외돌개'가 나오고 그 웅장함과 경이로움에 자연스레 턱이 벌어지고, 탄성이 나왔다.
▲ 올레7코스외돌개 ⓒ 정지현
외돌개를 뒤로 하고 다시 걷는 해안길은 끊임없이 걸음을 멈추게 했고, 눈에 담는 것만큼이나 다음에 다시 추억하기 위해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그렇게 해안길을 나오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올레길에서 조금은 낯선 끝없이 올라갈 것 같은 계단이다. 오늘 올레길의 여정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조금은 쉽게 생각하고 오른 삼매봉은 숨을 헐떡대며 한참을 오르고 나서야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듯이 이 길도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음을, 완만한 길이 있으면 경사가 높은 길도 있다는 삶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그렇게 길의 끝을 아쉬워할 때쯤 천지연 폭포의 장관이 눈앞에 보이고, 폭포의 웅장함은 이곳 칠십리 공원 전망대에서도 느껴질 만큼 대단해 보였다. 30여 년 전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가보고 직접 본 적이 없었던 풍경이지만 그 이질적인 모습에서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워낙 오래전 모습이었지만 폭포 아래에서 바라봤던 그 웅장했던 폭포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리만큼 어린 시절 그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비가 별로 오지 않는 가을에도 쏟아지는 폭포 물줄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같아 보였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지금 이 시간처럼 폭포의 물줄기 또한 한 번을 쉼 없이 떨어지고, 흐른다.
▲ 올레7코스외돌개 ⓒ 정지현
폭포를 뒤로하고 칠십리 공원을 빠져나오면 길은 자연이 아닌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심으로 날 데려가고 들여다본 지도 위에는 7코스의 시작점이 금방이라도 갈 만큼 가까이 보였다. 서귀포의 도심으로 들어와 올레길 이정표를 보며 차도를 몇 번 건너니 눈앞에 7코스의 시작점인 이정표와 올레 여행자센터가 눈에 들어오고 이틀간의 내 여행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종착지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자 센터에 들어와 흘렸던 땀으로 젖어버린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선 가볍게 나의 이틀간 여정을 별문제 없이, 즐겁게 마무리한 것을 자축하는 뜻에서 제주 맥주 한 잔으로 이곳을 기념했다. 한 시간여를 앉아 있는 동안 많은 여행자들이 오갔고, 다들 자신들의 여정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모습이다. 다들 생김생김은 달랐지만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만은 같은 모습이다.
이틀간의 여정에 많은 걸 비웠고, 많은 걸 담았다. 여행의 끝이 늘 아쉬움을 남기듯이 올레 여행을 마무리하는 내게도 그 아쉬움은 빗겨나가지 않는 것 같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부담이 들지만 돌아갈 일상이 있으니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양쪽 새끼발가락이 검게 피멍이 들긴 했지만 마음 한가득 추억과 여유로움을 담고 간다. 이곳에 눈도장을 찍듯이 다시 한번 눈길을 주고서 몸을 일으킨다. 난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공항으로 길을 나서야겠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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