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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들이 '기다리는 것들', 전혀 뜻밖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 'wait'을 만들고 울컥했던 사연

등록|2021.11.15 07:28 수정|2021.11.15 07:31

▲ <나는 기다립니다...> 책을 읽고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담은 <Wait> 그림책을 만들어보았습니다. ⓒ 진혜련


책을 한 권 만들었다.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만든 책이다. 아이들의 글이나 그림을 단편적으로 모아 묶은 문집은 아니다. 이 책은 이야기와 메시지를 담고 있는 하나의 그림책이다. 책 제목은 'Wait(기다림)'이다.

나는 책을 만든 후 학교 선생님들께 조심스레 소개해 보았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책을 보는데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고 말씀해주셨고, 선생님들은 이 책을 한 번 보고 이내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살펴보시며 선뜻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셨다.

책을 만들게 된 건 <나는 기다립니다...>(2007, 문학동네)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나서였다. 다비드 칼리가 글을 쓰고, 세르주 블로크가 그림을 그린 이 책은 한 사람의 일생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기다림의 장면을 보여준다. 검은색 펜으로 간결하게 그린 스케치에 빨간색 끈으로 포인트를 준 그림은 고개를 끄덕일 만한 기다림의 순간을 따뜻한 느낌으로 전하고 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책과 자기 삶을 연결 지어 보았으면 한다. 나는 기다림에 관한 책을 읽은 아이들에게 '지금 자신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아이들은 질문을 듣자마자 한결같이 대답했다.

"코로나가 끝나는 날이요!"

그리고 볼멘소리로 덧붙였다.

"선생님,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기다리는 거 정말 지겨워요."
"코로나가 끝나긴 끝나나요?"


아이들은 속절없이 길어진 기다림에 지친 듯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았던 시간이 어느새 2년이 지났다. 이제는 거의 체념한 상태가 된 것 같은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주는 게 좋을지 고민되었다. 나는 아이들과 '기다림'에 대한 책을 만들어 보는 것으로 답하기로 했다.

우리는 기다립니다 

우리는 코로나 종결 외에 각자 가지고 있는 기다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에게 '나는 기다립니다. 무엇 무엇을'이라는 문장을 쓰고 그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림을 표현할 때는 <나는 기다립니다...> 책에서 힌트를 얻어 빨간 털실을 그림의 한 부분으로 넣도록 하여 '온기'와 '연결'의 의미를 전하고자 했다. 그렇게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말하는 기다림의 순간을 담아 그림책을 만들었다.

2021년을 살아가는 열한 살 아이들은 무엇을 기다릴까?
 

▲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그림책 <wait>입니다. ⓒ 진혜련

 
나는 기다립니다. 성공 확률이 30%인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기를.

누리호 소식을 그저 하나의 뉴스로만 받아들이고 덤덤하게 지켜봤던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우주 시대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성공 확률이 크게 높지 않았어도 누리호는 아이들에게 우주로 향하는 꿈을 꾸게 했다.
 
나는 기다립니다. 친구들과 신나게 피구 하는 체육 시간을.

나는 기다립니다. 매주 친구들과 함께 숲에 가는 날을.

요즘 아이들이 유튜브와 휴대전화만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른들의 편견이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며 체육활동 하는 시간을 가장 기다렸다. 우리반은 매주 화요일마다 학교 바로 뒤에 있는 숲에 간다. 아이들은 새소리가 들리고, 햇살과 바람이 살갗에 닿고, 계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숲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그림책 <wait>입니다. ⓒ 진혜련

▲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그림책 <wait>입니다. ⓒ 진혜련

 
나는 기다립니다. 북극곰이 멸종 위기에서 벗어나기를.

나는 기다립니다. 피 흘리는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오기를.

나는 기다립니다. 약자들의 편이 되어주는 진정한 정의를.

아이들의 생각을 담은 그림책을 만들어 보니 평소 아이들이 우리를 둘러싼 환경 및 사회 문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정확하고 예리했다. 아이들은 자연, 동물, 인간이 함께 공존하고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고대하고 있었다.

"기다리면, 이루어져요"

그림책 후반부에는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온다.
 
혹시 알고 있나요?
모든 기다림의 순간에는
희망이 반짝인다는 것을요.
우리 함께 기다려요.
기다리면,
이루어져요.

나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때론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분명히 반짝이고 있는 밤하늘의 별처럼 모든 기다림에는 희망이 있다고. 그러니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우리 함께 기다리자고. 나의 자리에서 나의 몫을 해내며 우직하게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의 기다림뿐만 아니라 앞으로 아이들은 살아가며 수많은 기다림을 마주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지난하고 고된 기다림 앞에 섰을 때 체념과 비관보다는 희망과 낙관 쪽으로 움직이길 바란다. 그것이 말로는 쉬우나 실제로 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 그림책이 조금이나마 아이들에게 긍정적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그림책 <wait>입니다. ⓒ 진혜련

▲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그림책 <wait>입니다. ⓒ 진혜련


우리반 책장에 꽂아둔 작은 그림책 한 권, < Wait >는 늘 대여 중이다. 수시로 가져가 보고 또 보는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은 책에서 책의 뒤표지에 있는 문장이 특히 좋다며 책갈피 만들기를 할 때도 이 문장을 썼다.
 
당신을 기다릴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 Wait > 전자책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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