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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인데 붕어빵 먹고 싶단 아내... 반드시 구해야만 했다

입덧 하던 아내가 간절하게 찾던 '슈크림 붕어빵'... 이맘때만 되면 떠오르는 추억의 음식

등록|2021.11.18 07:28 수정|2021.11.18 07:28
7년 만에 만난 아기를 하필 코로나 시대에 낳아서 기르고 있습니다. 아기를 정성으로 키우며 느끼는 부분들을 누군가는 기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모든 부모님과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기자말]
"여보, 뭐 먹고 싶어요?"

아내 입덧 때의 일이다. 아내는 뭐가 급히 먹고 싶으면 문자를 남겨 두기도 했지만 웬만해서 먼저 말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퇴근 때면 아내에게 무얼 먹고 싶은지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마저도 잘 얘기하지 않을 때가 많아서 항상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내에게 무얼 먹고 싶은지 물었다.

그런 그녀가 먼저 문자를 남겼던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붕어빵을 먹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아내는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 어귀, 주민센터 앞의 붕어빵 아저씨가 굽는 슈크림 붕어빵을 매우 좋아했다. 그 아저씨가 구워주시는 붕어빵을 먹고 싶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시기가 맞지 않았다. 아저씨는 날씨가 추워지면 장사를 시작하셨기 때문이었다. 때는 10월, 아직 아저씨가 장사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아내는 이후로도 '붕어빵 아저씨의 슈크림 붕어빵을 먹고 싶어요'라고 꾸준히 얘기했다. 답이 없는 이야기였다. 아저씨가 장사를 하러 나오시지도 않는데 어찌 사다 준단 말인가.

아내는 근 10여 년간의 세월을 나와 함께 지내며 어김없이 날씨가 추워지면 이 붕어빵을 먹어 왔었다. 겨울이 되면 항상 먼저 아저씨가 장사를 하러 나오셨는지 살피는 이유였다. 장사를 시작하려고 나오셨을 때도 변수는 있었다. 사러 올 때마다 붕어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저씨가 몸이 편찮으시면 한 번씩 나오시지 못하셔서 빈손으로 돌아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공수해온 붕어빵, 아내의 반응은 
 

닫혀 있는 아저씨의 포장마차영업을 하시는 3개월 이외에는 저렇게 문이 닫혀 있다. 아내를 위해 찾았지만 문을 열지 않아 돌아왔던 어느 날, 아저씨의 포장마차 사진이다. ⓒ 최원석


부랴부랴 주위에 수소문하고 SNS에 도움을 요청했다. '아내가 입덧으로 슈크림 붕어빵을 먹고 싶어 하니 파는 곳을 알려 달라'라는 간곡한 예비 아빠의 호소였다. 이내 여러 개의 댓글과 메시지가 달렸다. 다행히 파는 곳이 있었다.

지체 없이 달려가서 붕어빵을 샀다. 아내에게 원하는 것을 구해다 줄 수 있다는 기쁘고도 기쁜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집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붕어빵을 전달했다. 돌아온 반응은 실망. 그 이상이었다. 아내의 대답은 이랬다.

"여보. 고마운데 이거 예전에 먹던 맛이 아니라서 더는 못 먹겠어요. 항상 먹던 붕어빵은 텁텁하지 않았는데 이건 많이 텁텁해요. 하나 이상은 먹기 힘드네요. 다음에 아저씨가 만든 것으로 사다 주세요. 미안해요."

하아.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내를 위해 멀리서 붕어빵을 공수해왔는데, 맛이 없다니. 속상했다. 붕어빵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였다. 남은 붕어빵을 억지로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팔지도 않는 것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러다 아내는 출산을 했다. 그리고 산후조리 차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겨울이 지나고 아저씨께서 붕어빵 장사를 접고 나서야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출산을 하고 고향에 가 있는 동안인 11월경이 되어서야 붕어빵 아저씨는 장사를 시작하셨다. '왜 이제 나오셨어요? 너무해요. 늦게 나오셔서 아기 엄마 입덧 때 붕어빵을 먹이지 못했잖아요. 10월부터 장사하시는 건 어떠실까요?...' 투정을 포함해, 하고 싶은 말들이 참 많이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것 대신에 천 원짜리 세 장을 꺼냈다.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었던 슈크림 붕어빵을 사기 위함이었다.

갓 구워진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겉바 속 촉촉한 맛, 아내가 그리워 마지않았던 그 붕어빵의 이유를 다시 느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편의점에서 산 따뜻한 캔 커피를 건넸다. 캔 커피에 보이지 않는 글씨를 새겨서 말이다. 새겨진 글귀는 이렇다. '아저씨 내년부터는 장사를 조금 일찍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아기 엄마는 아기 돌을 지나 14개월 차에 접어드는 아기를 양육 중이다. 11월이 되기 하루 이틀 전쯤부터 장사를 시작하신 아저씨의 제일 큰 단골손님은 나다. 2년을 아저씨의 붕어빵을 기다린 아기 엄마에게 자주 사다 주기 때문이다. 결핍은 가끔 과한 소비를 일으킨다. 그때 아내에게 이 붕어빵을 못 사준게 한이 됐기 때문이다.

"올해만 하고 안 해야지 하다가도..."
 

슈크림 붕어빵아저씨의 슈크림 붕어빵이다. 아기 엄마가 2년을 기다렸던 붕어빵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아저씨의 바로 그 슈크림 붕어빵이다. ⓒ 최원석


아내는 2년 만에 원하는 붕어빵을 먹는다며 좋아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의 모든 붕어빵 아저씨 아줌마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워야 시작하는 일, 추워야만 손님이 오는 일이라 추위에 노출돼서 하루 종일을 계시는 모든 분들 말이다. 목장갑 하나와 가느다란 가스 불 하나에 의지해 겨울을 나는 일, 하지만 기다리는 누군가들이 있어서 하는 일. 그 일을 하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오늘도 퇴근길에 따끈한 캔 커피 하나를 사서 붕어빵 집에 들렀다. 언제나처럼 3천 원어치를 주문하며 고생하신다, 수고가 많으시다,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이후 여느 날처럼 붕어빵을 굽는 동안 꽤 많은 대화가 오갔다. 그 대화 중 일부를 전한다.

"가스값도 오르고 재룟값도 오르고 게다가 이건 먹는 거니까 (위생을 생각해서) 마스크까지 계속 쓰고 하려니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닙니더.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견디는 거다 아닙니꺼. 아 참 얘기하다 보니 하나를 더 구웠네. 내 정신머리 보소. 늙어가 요새 자주 이 칸다 카이. 이 건 서비스로 드릴게. 이거는 따땃할 때 손님이 바로 드시소. 갓 굽은 게 맛있는 기라. 뭐든지 갓 만든 게 맛있다 아닌교?"

붕어빵 아저씨의 마스크 너머의 미소를 본 지도 어언 2년이 지났다. 코로나 이전 보았던, 아저씨의 붕어빵을 닮은 따뜻했던 미소를 나는 아직 기억을 한다. 그 아저씨의 따뜻한 미소를 닮은 응원과 격려를 이 시대의 모든 부모님들께 전한다.

또, 부모님들께 아저씨가 구우시는 슈크림 붕어빵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닮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도 함께 전하는 바다. 아저씨와 나누었던 수많은 날들의 대화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말씀을 존경하는 독자님들께 바치며 글을 마친다.

"뭐 이게 딱 일 년에 많이 해도 넉 달만 하는 거요. 게다가 동네 장사고 푼돈 장사라 남으면 얼마나 남겠는교? 번다고 카면 원칙적으로는 일 년 치를 벌어야 카는데... 그게 되겠는교? 딱 벌어서 먹고사는 만큼만 번다 안카요. 이번 해만 하고 내년에는 안 해야지 하다가도 찾아오는 손님들 보면 마음이 바뀐다 아닌교.

특히 잔돈 가져와서 한두 개 가져가는 오는 손주 또래 애기들 보면 '아 장사 계속해야겠구나' 싶고... 그러다가 보낸 세월이 10년이 넘었다 아닌교. 갈팡질팡하다 보니 오늘 또 여기 나와 있다 아닌교.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싶데이. 어쩌겠는교.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 볼라 카요. 언제까지요? 언제까지 일지는 모른다카이... 해 봐야 겠지예. 허허 "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추후 기자의 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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