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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로도 최고... 실패율 0% 알밤깍두기, 엄청 간단합니다

[우리집 김장 자랑] 익히지 않아도 맛깔... 올 가을 꼭 도전해보세요

등록|2021.11.19 07:27 수정|2021.11.19 07:27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맘때면 연례행사로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지요. 바로 '김장'입니다. 우리집만의 김장 비법, 독특한 재료로 만든 이색적인 김치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흔히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말한다. 몇 인분씩 고기를 배부르게 먹어도, 달달한 케이크를 바닥이 드러나게 먹은 후에도, 쌀알이 입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한국인은 한 끼 식사로 쳐주질 않으니 참으로 요상하다. 그리고 우리가 '밥'이라고 할 때는 김치가 콤비로 따라붙는 것은 말하면 입 아픈 상식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김장 시즌이 돌아왔다. 주부들은 봄부터 하나둘 준비한 젓갈, 소금, 고추, 마늘에다 지금 가장 맛있는 배추와 무를 절여 겨우내 먹을 김치 담기 좋은 날을 정해 두었을 게다.

긴긴 겨울 동안 먹을 기본 찬이다 보니, 지역에 따라 혹은 가풍에 따라 재료를 달리하여 여러 종류의 김치를 담가 저장한다. 그렇다 보니 일반적으로 담가 먹는 배추·무김치 외에도 "이런 김치가 다 있어?" 기함할만한 별미 김치는 전국적으로 볼 때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다.

내게도 나만의 김치라고 꼽을만한 것이 두 가지나 있다. 하나는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김치고, 다른 하나는 꼭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김치다.

동과, 맛깔난 김치로 재탄생할 그날을 기다린다
 

▲ 지인이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며 '베트남 호박'을 한 통 주었다. 받고 보니, 우리네 '동아'였다. 동아는 '동과'라고도 한다. ⓒ 박진희


올가을, 지인으로부터 직접 농사지은 베트남 호박이라며 흔치 않은 식재료를 건네 받은 일이 있다. 베트남 호박이라고 할 때는 '그게 뭐지?' 싶었는데, 막상 받고 보니 '동아'라고 부르기도 하는 우리네 '동과(冬瓜)'였다.

시장에서 보기만 했지 사 본 적은 없어서 고맙게 받긴 했지만,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다 보니 손댈 엄두를 못 내고 한 달 넘게 베란다에서 묵히게 됐다. 어느날, 방치해 뒀어도 상하지 않고 멀쩡한 동과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런 동과가 하도 기특해서 "내 어떻게든 너의 진가를 알아내 줄게" 약속하듯 팔을 걷어붙이게 됐다.

처음에는 갈치조림에 동과를 넣어 봤다. 동과는 어른들도 들기 힘들 만큼 크고, 무게 또한 6~8kg 나간다. 게다가 가시 박힌 겉껍질은 단단하기까지 하여 일반 주방 칼로는 어림도 없어 감자칼로 살살 달래가며 껍질을 먼저 벗겨냈다. 그 안쪽은 오이나 호박 같겠거니 여겼는데, 역시나 박과 식물이다 보니 단단한 게 꼭 덜 여문 멜론 같다.

두툼하게 자른 동과를 냄비 바닥에 깔고, 갈치와 양념장을 켜켜이 넣어가며 준비를 마쳤다. 양념 잘 밴 고등어조림의 무를 기대하며 잘 익기만을 고대했다. 그러나 완성된 갈치조림은.... 아무리 좋게 봐 주려고 해도 국물은 물론이고 동과 자체도 평가라는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한 마디로 실패였다.

다음으로 도전한 건 동과 생채다. SNS 정보대로라면 무처럼 생각하면 되니, 생채야말로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조리법이다. 그런데 이건 또 뭔 일인지... 시원하고 달콤한 채즙과 아삭아삭한 식감을 기대했건만, 공든 탑이 무너져 버렸다. 혹시 몰라 많이 만들지 않은 걸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두 번의 실패를 겪고 결국은 동과를 떠넘긴 지인에게 조리법을 묻게 됐다. 한참이 지나도 잘 먹었단 답례가 안 들리니,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단다. 궁금증이 풀린 지인은 "썰어서 살짝 말리면 더 좋은데, 그냥 생과도 괜찮으니 납작납작 썰어서 들기름 넣고 볶아라"라고 알려준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먹어 본 지인에게 물어보길 정말 잘했다. 지인의 말대로 조리하니, 더도 덜도 아니고 적당히 익혔을 때의 식감과 호박 맛이 만족스럽게 입안에 퍼졌다.

소화성이 좋은 동과는 색다른 요리로 동과선이나 동아 정과, 동과석박지 등이 있단다. 김치로 담그기도 한다는데, 동과 생채를 담가 본 경험상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내년에도 동과를 얻게 된다면 수박김치를 벤치마킹하여 물김치 쪽으로 도전해 볼까 생각 중이다.

알밤, 깍두기로 만들어 바로 먹어도 좋습니다
 

▲ 밤은 5대 영양소를 골고루 지닌 식품으로 위장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박진희


올 가을, 실한 밤을 한데 모아 놓고 마주하니 어찌나 뿌듯하던지. 밤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후작업은 큰 그릇에 물을 받아 밤을 쏟고, 물 위로 떠오르는 실속 없는 밤 고르기로 시작된다. 밤은 워낙 당도가 높아 쉬이 썩기 마련이다. 가정에서는 겉껍질을 벗기고 보늬만 남긴 상태로 김치냉장고에 보관해야 오래간다.
 

▲ 김장 속재료 남은 것에 살짝 절여 둔 알밤을 섞어 '알밤깍두기'를 만들었다. 밥보다는 술안주로 더 어울릴 듯하다. ⓒ 박진희


한 두어 달 놔뒀더니, 네 맛도 내 맛도 아니던 밤이 달근해졌다. 밤은 비타민C가 많아 생률(生栗)로 먹어도 좋다. 잘게 채 친 후 샐러드로 이용하는 방법도 그중 하나다. 간식용으로는 군밤과 찐밤이 기본이고, 반찬용으로는 밤조림이 있다.

밤은 원체 손이 많이 간다. 몸값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비싼지라 자주 먹기엔 부담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알밤 깍두기'로 만들어 먹으면 별미 중의 별미가 된다. 만드는 방법도 별스럽지 않다.

김치소 재료를 뒤섞은 후 살짝 절인 알밤과 버무리면 끝이다. 고춧가루, 설탕, 소금만 들어가도 내 입엔 딱 맞지만, 이왕이면 파, 마늘, 배, 양파, 젓갈 등을 넣으면 고급진 깍두기가 완성된다. 한 가지 팁을 전수한다면 다른 김치와 달리 통깨를 많이 넣고 버무리면 풍미가 더해진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깍두기는 크기를 고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 알밤을 깍두기로 담글 때는 우선 너무 크지 않은 밤으로 고르고, 크다 싶으면 작은 사이즈에 맞춰 쳐내서 쓰면 좋다. 그래야 양념이 골고루 배 맛이 균일해지기 때문이다.

이때 밤을 깎고 난 편(片)은 버리지 말고 잘 모아 둔다. 밤값이 만만치 않으니, 밤암죽으로 끓이면 알뜰하게 먹을 수 있다.

'알밤 깍두기'는 김치류이니 밥반찬으로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탁주 한 잔 걸칠 때 안주로 내거나, 떡 또는 고구마 등에 곁들일 것을 추천한다. 그 짭조롬하면서 달고 고소한 맛의 진가를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지름길이다.

별미인 김치 이야기 끝에 문득 외국 생활 중에 김치가 너무 고팠던(?) 일이 생각난다. 얼마나 김치가 궁했던지 둥근 돌로 눌러 절인 양배추에 시치미(七味)라는 향신료로 흉내만 낸 '양배추 김치'를 담갔었다. 그 또한 귀하고 맛있게 먹었으니, 한국인 밥상의 노스텔지아,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낙으로 타국에서 밥숟가락을 들었을까.

나는 앞으로도 쭈욱 밥심으로 살 한국인이다. 김치를 향한 무한 애정은 손맛의 성패에 연연해하지 않고 새로운 맛의 도전으로 켜켜이 쌓아올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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