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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에 우리를 떠난 전태일... 50년을 거슬러 돌아오다

[리뷰] 현대적 감각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 <태일이>

등록|2021.11.13 12:44 수정|2021.11.13 12:44

▲ 영화 <태일이>의 한 장면 ⓒ 명필름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 1980년대 후반 시작된 전국노동자대회는 맨 앞에 전태일을 내세웠다. 개최일도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던 11월 13일을 앞뒤로 한 시기였다. 그만큼 전태일이라는 존재가 한국 노동운동에, 아니 한국 사회에 던진 영향과 충격은 매우 컸다.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에게, 그리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필독서였다. 당시 대학가 옆 사회과학서점을 찾은 노동자들은 노조에서 보라고 했다면서 책을 구입했다. 나중에 세상이 바뀌면서 <전태일 평전>으로 이름을 바꾸기는 했으나 군사독재 시절 '전태일'이란 이름은 책 제목으로 앞세우기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밝은 색채로 그려낸 <태일이>

그 전태일을 그린 영화가 지난 11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전태일 열사 51주기를 앞두고 공개된 홍준표 감독의 영화 <태일이>는 1995년 개봉된 박광수 감독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후 두 번째 전태일 영화다. 전태일 분신 이후 25년의 시차를 두고 첫 번째 영화가 나왔고 이후 26년의 시차를 두고 두 번째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50주기에 나올 영화가 한 해 미뤄진 것이지만, 전태일은 그만큼 반세기가 흘렀어도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대중들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고 자리하는 이름이다.
 

▲ 영화 <태일이>의 한 장면 ⓒ 명필름


극영화로 만든 전태일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전태일 영화는 내용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당시의 허름하고 열악한 환경을 애니메이션의 장기를 살려 세세하게 그려낸 것이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였지만 어두움보다는 밝은 색채로 그려낸 것은 두 번째 전태일 영화의 특징과도 같다. 스무 해를 조금 넘긴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20대 청년이 한국 사회에 지른 거대한 불길이 일으킨 큰 파장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힘들었던 시기와 재단사 보조로 들어가는 모습 등에서 전태일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동생들을 챙기며 어머니를 도와 가장 역할을 한다. 그리고 어렵고 힘들어하는 어린 여공들을 챙기면서도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다.

애니메이션 <태일이>에서 전달되는 전태일은 아름다운 청년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재단사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고 진정서를 제출하고 신문에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현실이 나올 수 있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은 20대 청년이 갖는 세상에 대한 도전과 좌절, 극복의 의지가 드러난다.

<태일이>는 전태일을 1970년에만 가두지 않는다. 50년이 흘러 지금 우리 시대 청년의 모습과 소통하려는 느낌이 다분하다. 판잣집과 심야통행금지, 10대 여공, 어렵게 사는 재봉사 등 옛 시대를 묘사했으나 다가오는 느낌이 아주 옛날 이야기라기 보다는 요즘의 이야기처럼 전달되는 것은 감독이 의도한 부분으로 보인다.

홍준표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조금 더 젊은, 이십 대 초반의 우리와 비슷한 동료 태일이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라며, "또 다른 시각으로 다음 세대에도 이야기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넓게 해석한 전태일 정신
 

▲ 영화 <태일이>의 한 장면 ⓒ 명필름


1970년 전태일과 동시대를 살았던 것은 지금의 60~70대 세대들이다. 1948년생인 전태일이 살아 있었다면 <태일이>가 개봉되는 지금 현재로 73세다.

하지만 22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세상에 던진 것은 잘못된 세태에 대한 분노와 항거였다. 당시 피 끓는 20대 청년으로서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법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과 정당한 항의의 목소리마저 강압적으로 누르려는 모습에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이었다.

지식인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고, 노동자의 삶을 뒤늦게 돌아보는 계기가 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태일이>가 전태일을 1970년의 인물로 좁히지 않고 2020년대 청년들과 소통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전태일의 정신을 넓게 해석한 것이었다.

<태일이>는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를 활동하면서 바보회와 삼동친목회 등을 만들어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고 했던 전태일이 주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마지막 모습은 평전을 읽을 때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전해지는 울림이 크다.

애니메이션 <태일이>에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장동윤, 권해효, 진선규, 박철민, 염혜란 등도 영화를 빛내는 데 기여한다. 영화운동단체 장산곶매 시절 <파업전야>를 시작으로, 마트 노동자들을 그린 <카트>와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만든 명필름 이은 대표와 심재명 대표에 더해 <태일이>의 제작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마음을 모은 사람들의 이름은 영화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영화의 가치를 더욱 높게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코로나19로 인해 개봉 일정이 밀리면서 12월 1일부터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사실이다. 비록 전태일 51주기를 맞는 시점에 개봉을 맞추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전태일이란 이름이 갖는 의미와 정신을 전달하는 데 있어 <태일이>의 가치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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