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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을 실천하는 다국적 사람들의 삶

자연의 지혜를 따르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이야기

등록|2021.11.22 11:17 수정|2021.11.22 11:17
서울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한국인 여자와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전자제품 사용설명서를 만드는 남자가 있었다. 사는 곳도 언어도 다른 두 사람은 지쳐가는 삶에 대한 물음이 생겼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바깥으로 나가보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시아 여행길에 오른 남자는 한국에 들렀고, 우연 혹은 운명적으로 여자를 만난다. 처음 만남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남자에게 여자는 한국의 농촌과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알고 지내던 농부를 찾아간 것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큐멘터리 <자연농 final straw>를 만들게 되었다.

강수희, 패트릭 라이든은 2012년 봄부터 2013년 여름까지 일본, 미국, 한국에서 자연농을 하는 농부들을 취재하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영화 배급사를 통하지 않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한국, 일본, 미국, 영국에서 100회가 넘는 상영회와 관객을 만났다. 그리고 다큐에 전부 담지 못했던 내용들을 담아 <불안과.경쟁.없는.이곳에서>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 다큐 <자연농 final straw> ⓒ 다큐멘터리 <자연농 final straw>


몇년 전 한국에서 상영회를 할 때, 두 사람이 다큐를 만들게 된 계기를 들었지만 다른 일 때문에 영상을 보지는 못했다. 이후에 이메일을 통해서 영상 파일을 받아보았고 관람료는 자유롭게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다큐 자연농 예고편 보기 <자연농 Final Straw>

자연농, 그냥 농사가 아니다

농사를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던 10년 전, 벽에 붙여진 종이포스터의 인물사진과 눈이 마주쳤다. <신비한 밭에 서서>의 저자로 일본에서 자연농을 하는 가와구치 요시카즈 농부였다. 그때부터 자연농에 대한 관심을 갖고 관련된 책을 읽고 정보를 검색했다.

흙을 갈지 않으므로 석유를 태우는 농기계는 필요하지 않다. 풀과 벌레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제초제와 살충제의 농약도 필요하지 않다. 자연의 순환으로 작물을 재배하기에 인위적으로 만든 퇴비와 비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가 잘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놀랍고 기적 같은 농법이라고 생각하니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작물을 삼켜버린 거대한 풀밭에 서서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뭔지 모를 웃음이 나왔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터득하면서 농사가 되는 조건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러나 농사가 잘 되는 조건을 흙에 만들더라도 기후변화로 인한 예상치 못한 날씨 앞에서는 농사가 잘 안 됐다. 그리고 자연농은 자연을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농자연을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어야 할 수 있다 ⓒ 오창균


한국에서의 자연농은 흙을 갈아엎는 경운을 하지 않고,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며, 풀을 뽑지 않고 벌레를 잡지 않는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시작된 자연농의 관점은 다르다. 외부에서 만든 것을 밭으로 들여올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풀을 뽑기도 하며 벌레를 잡고 비료를 줄 수도 있다. 심지어 한국의 자연농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일본인을 만났을 때 비닐을 사용한다는 것을 듣기도 했다.

지역과 날씨, 작물의 종류에 맞춰 다양한 환경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자연농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자연농은 크고 때깔 좋거나 다수확을 목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농사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자연에서 배우고 성찰하게 한다.

자연농, 단순소박한 삶

국적은 다르지만 자신의 농사 방식과 신념으로 자연농을 실천하고 있는 농부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들 모두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연농이 본래 지향하는 목적에 맞게 농사를 짓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 불안과.경쟁.없는.이곳에서 ⓒ 열매하나


돈과 출세를 위해서는 자신과 남의 삶을 갉아먹으면서 경쟁하는 것이 정당하다고보는 시각으로는 자연농을 이해할 수 없다. 자연농을 하게 된 사연들은 다양하지만, 그들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아왔다. 한국의 연천에서 자연농을 하는 홍려석 농부의 말을 옮겨본다.

"돈이라는 건 결국 수단에 지나지 않아요. 지금 이 주류 사회 속의 가치는, 물론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영 그래요. 저는 쭉 경쟁사회에서 살아왔어요. 특히 제가 있던 문화예술계에서는 자신을 드러내고 남들보다 더 돋보여야 했어요. 그 안에서 언제나 저는 승자였어요. 그래서 패자의 설움 같은 건 몰랐죠.

'자기 노력하기 나름 아니겠어? 자기 능력 탓 아니겠어?' 하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 된통 깨지고 나서 한동안 분노에 휩싸여 있다가, 그게 가라앉고 나서는 오히려 인생의 다른 면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 점에 감사하죠. 점점 더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진정한 가치에 몰입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경치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농사 짓고 사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부러움을 표시하기도 하고, 궁금증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신도 그렇게 살고는 싶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며 여러 이유들을 말한다. 대부분은 지금의 삶에 불만이 있지만, 그 틀을 벗어났을 때 불안과 맞설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도래한 지금, 자연농이 주는 메세지는 '생물다양성을 유지했을 때 인간의 삶도 지속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단순 소박한 삶이 있었던 행복한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갈수록 커지는 불평등의 양극화와 환경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소비는 끝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고, 백신을 접종하는 것만으로는 불안해 보인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마지막 경고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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