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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P 고양이가 '이것' 하는데 4년 반 걸렸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애월이와의 첫 스킨십... 고양이가 있어 덜 조급합니다

등록|2021.11.30 19:57 수정|2021.11.30 19:57
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동물의 성격'입니다.[편집자말]
둘째 고양이 애월은 제주도 애월읍에서 2013년 11월에 입양했다. 나는 애월에게 이름을 지어주기 전까지 그 애를 '발라당 고양이'라고 불렀다. 애월읍 길가에서 우연히 만날 때마다 아스팔트에 발라당 드러누워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해서였다.

애월은 그때까지 내가 본 가장 유순한 길고양이였다. 한 번도 하악질(고양이가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하악' 하며 내는 경고의 소리)을 하거나 발톱을 세우지 않았다. 나는 애월을 입양하며 은근히 기대했다. 도도한 첫째 반냐와는 다르게 애월은 내 '껌딱지'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사 대체로 그렇듯, 기대는 기대일 뿐 현실이 되지 못했다. 함께 살아보니 애월은 사람에게 마냥 치대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입양 초기, 나는 '발라당 고양이' 애월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매번 놀라곤 했다. 요즘 유행하는 MBTI를 빗대 말하자면 온화하고 다정하지만 낯가림이 있는 INFP 같았달까.

너 혹시 '인프피'니?

애월은 사람을 좋아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면 십중팔구 애월이 강아지처럼 쪼르르 현관 앞에 나와 있었다. 나는 그런 애월이 못 견디게 귀여워 손을 뻗어 녀석을 품에 안았다. 그러면 애월은 1초도 되지 않아 쌩하니 내 품을 빠져나갔다.

애월은 퇴근한 내 주변만 빙빙 맴돌았다. 물론 나와 눈이 마주치면 애월은 이내 골골송(고양이가 낮게 반복적으로 '그르렁' 또는 '가르릉' 내는 소리)을 들려주었지만 내 곁에 가까이 붙어 있지는 않았다.

내심 섭섭했다. 다른 집 고양이들은 무릎에도 올라와주고(일명 무릎냥이), 컴퓨터를 할 때 품에 안겨서 자판도 막 누른다던데. 애월은 왜 한 번을 안겨 주지 않는 걸까. 나도 겨울이면 물주머니보다 뜨뜻한 고양이의 온기를 누리고 싶은데. 고양이가 몸 위에 올라와 비키질 않아서 무릎이 저리다는 불평 한 번 해보고 싶은데.

내겐 다 요원한 얘기였다. 서운함이 한 번씩 차오를 때마다 나는 '사람 성격 다 다르듯 고양이도 그런 거야', '애월이는 사회화를 배우는 시기에 유기되어서 스킨십이 어색할 수 있어'라며 애써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아직도 기억하는 2018년 5월 3일

그렇게 4년 하고도 6개월이 흘렀다. 2018년 5월 3일, 나는 거실 바닥에 엎드려 휴대전화로 웹서핑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팔에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뭐지 싶어 휴대전화에서 고개를 돌렸더니 애월의 조그만 머리통이 보였다. 녀석이 소리도 없이 다가와서 내 팔을 베고 누운 거였다.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방정을 떨면 고양이가 가버릴까 봐) 무음으로 기뻐했다. 처음엔 마냥 들떴지만 이내 여러 마음이 교차했다. 애월이 내게 안기기까지 4년 반이나 걸렸구나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 낯가림 심하고 조심성 많은 성격의 고양이가 얼마나 용기를 냈을까 싶어 마음이 애잔했다.

애월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20분쯤을 기대어 있었다. 나는 한쪽 팔만 들어 휴대전화로 애월의 사진을 두어 장 찍었다(내가 이날을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다). 그 외에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팔이 저려 와도 애월과 나의 '첫 스킨십'을 만끽했다.
 

▲ 떨리는 마음으로 찍었던 애월의 첫 스킨십 ⓒ 이은혜


그날 이후 애월의 스킨십은 은근히 영역을 넓혔다. 아침이면 내 종아리에 얼굴을 부비며 인사를 하기도 하고, 어쩌다 한 번씩은 무릎 위로 올라와주기도 한다. 애월이 드물게 무릎냥이가 되어주는 날이면 나는 잠잠히 그 순간을 누린다. 따뜻한 백차를 마시는 것처럼 온화한 기분으로.

고양이와 함께 살아 좋은 점은 끝도 없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조급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게 되었다는 거다. 이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안달복달하지 않고 관조를 택하려 한다(물론 자주 실패한다). 좋게 될 인연이면 내가 조급해 하지 않아도, 그저 마음을 보내면 언젠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애월이 내게 4년 하고도 6개월 만에 기대온 것처럼.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보낸 마음이 다시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내게는 고양이가 있으니까. 심지어 그 고양이가 무릎에도 가끔 올라오니까. 그러면 얼었던 마음도 스르르 녹게 되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relaxe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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