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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던 독립출판을 이루게 해 준 책

정여울 작가의 '끝까지 쓰는 용기'

등록|2021.11.26 09:43 수정|2021.11.26 10:07
2020년과 2021년, 이 두 해 동안 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제약을 받았다. 나 하나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기에 약간의 억울함이 있었고 온 세계가 다 같이 겪는 일이기에 두려움은 컸다. 이 억울함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독서이다.

책의 여러 가지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읽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위안은 물론 깨달음과 반성으로 사람을 변하게도 한다. 3년 전 내가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바로 책이었다. 그때 읽은 배지영 작가의 <소년의 레시피>가 나에게 쓰고 싶다는 욕망을 일깨웠고 써도 된다는 용기를 주었다.

정여울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2019년 7월 그녀의 강연은 강연 자체로도 아주 좋았지만 강연 말미에 나에게 아주 큰 충격을 주었다. 강연을 듣던 한 청중이 한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쓰고 싶은 글의 목차를 만들어 보세요."

그 당시 나는 에세이 쓰기를 배우기 시작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컴퓨터 폴더에 하나하나 쌓여가는 글이 마냥 자랑스럽기만 했었다. 글도 없는데 목차를 만들라니. '역시 대작가는 나와 같은 습작생과는 차원이 다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믿을 수 없게도 나는 그 차원을 뛰어넘었다. 2020년에 내가 써놓은 모든 글을 엮어서 첫 독립출판 책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 할래>를 탄생시켰다. 해가 바뀌어 어느 공모전에 출품한 글이 필요했다. 그때 정여울 작가가 생각났다. 그녀의 충고가 다른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내가 있는 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로 변한 것이다.

한 해 동안 읽은 책들 중에서 '올해의 책'을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 많은 책 중 내가 정한 '올해의 책'은 정여울 작가의 <끝까지 쓰는 용기>이다. 작년에 첫 독립출판을 경험한 나는 올해에도 또 다른 책을 독립출판 하기 위해 원고 마무리 중이었다. 그 원고를 어떤 편집자에게 보여줄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기대했던 대답을 받지 못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늘까지 뛰어오를 것 같았는데, 그날 이후 내 발목에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진 것처럼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책으로 완성할 만한 원고가 성에 차지 않았고 독립출판 하려던 계획이 망설여졌다. 한동안 내 원고를 보지 못하다가 읽은 책이 바로 <끝까지 쓰는 용기>였다.
 

▲ 책 <끝까지 쓰는 용기>. 망설이던 독립 출판을 완성하게 해주고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 준 고마운 책 ⓒ 김영사


제목에서부터 용기를 주는 책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고 책장은 순식간에 넘어갔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좋은 구절이 나오면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인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밑줄 그은 내용을 필사한다. 그러면 그 책은 완전히 내 책이 된다. 이 책에는 나만의 독서방식을 적용할 수 없었다. 좋은 구절이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등장한다. 밑줄 가득한 책을 필사할 엄두를 아직 내지 못했다.
 
"저는 재능을 과대평가하는 문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혼자 조용히 글쓰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더 오래 더 끈기 있게 작가의 길을 걸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능은 발굴되기도 하지만 꾸준히 연마하고 제련되지 않으면 긁지 않은 복권에 그치고 맙니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라는 자만심보다는 '나는 매일매일 글을 써야 하고, 글을 써야만 진정으로 깨어 있을 수 있다'라는 간절함이 작가의 힘입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용기를 얻은 부분이다. 처음 글쓰기를 배울 때, 한 편 한 편 완성할 때마다 너무나 좋았다. 같이 글쓰기 배우는 선생님들과 같이 문집을 만들었을 때 내 글이 책 속에 들어가 있는 생경한 경험을 했다. 컴퓨터 안에 저장되어 있는 내 글이 책이라는 물성으로 세상에 존재하다니.

언젠가부터 나는 기획출판을 꿈꾸기 시작했다. '열심히 쓰면 언젠가 한 권은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간직했다. 독립출판을 경험하면서 그 열망은 더 커져갔다. 그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상황을 겪고, 용기가 꺾이고 나서야 나는 진정한 글쓰기의 기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독립 출판한 내 책들작년과 올해에 각각 독립 출판한 내 책들. 매년 한 권을 출판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 신은경


<끝까지 쓰는 용기>를 읽고 나서 신기하게도 쓰고 싶은 책이 여러 권 생겼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글감이 연거푸 떠오르고 발견되었다. 나는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일 년에 한 권씩 독립출판을 통해 책을 출판하고자 하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이 책의 제목이 <끝까지 쓰는 용기>가 아닐까. 독자는 줄어들지만 작가 지망생은 늘어난다는 요즘, 전국에 있는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쓰고 싶지만 시작하기가 두려운 당신에게'이다. 글을 쓸 때 궁금한 모든 것들, 글쓰기의 힘을 기를 수 있는 비법이 이 책 안에 있다. 작가가 매일 쓰며 배우고 느낀 내용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단순히 글만 쓰도록 하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까지 생각해야 하는 모든 것들-취재, 테마, 교감, 공간, 고백, 독자, 애정, 문장 이 모든 것들을 자세하게 또 친절하게 이야기해준다.

책 <끝까지 쓰는 용기>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습작생들이 아낌없는 용기를 모두 받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덧붙이는 글 작가의 브런치(brunch.co.kr/@sesilia11)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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