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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결혼했습니다, 거리 두기 잘 할 수 있을까요?

[서평] 김혜남 지음 '당신과 나 사이'

등록|2021.11.28 12:48 수정|2021.11.28 17:14
"이젠 딸한테 어지간히 반찬 해다 나르고 그러겠네?"

얼마 전 딸이 결혼했다. 몇 달 전 결혼 소식을 알리자 이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대답하곤 했다.

"이제부턴 거리 두기를 정말 잘해야겠지요."

남들에게는 어떻게 들렸는지 모르겠는데, 가정을 이루는 아이들에 대한 거리 두기는 오래전부터 다짐해온 것이었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부끄럽고, 불행하게도 말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지난날 대중목욕탕에 함께 가자고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선뜻 나설 정도로 큰 벽을 느끼지 않으며 지내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결혼 30년 차 동안 어머니와 있었던 일이 좀 많으랴. 어머니는 평소 "며느리를 딸처럼"이라는 말을 종종 하시곤 했는데, 정말 그래서였는지 걸핏하면 오셔서 살림살이와 생활을 참견하곤 했다. 처음엔 애정으로 착각해 참았고, 그러시다 말겠지 싶어 참고 이해하곤 했다.

그런데 살림을 간섭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남편과 아이들 옷이나 머리 자르는 것까지 사사건건 간섭하거나 못마땅해하는 것은 물론 내가 입는 옷이나 머리까지 간섭하는 등 심해졌다. 심지어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닌 옷을 사다 나르며 입지 않으면 섭섭해하곤 했다.
 

▲ <당신과 나 사이> 책표지. ⓒ 메이븐

 
우연한 일로 어머니와 껄끄러워지면서 그동안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좋게 넘기곤 했던 것들의 불합리와 바람직하지 못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내게 더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시부모님과 선 긋기, 즉 거리 두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처음부터 간섭은 싫다고, 하지 말아 달라고 확고하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애들이나 남편이 잘 먹지 않으니 음식은 그만 주셨으면 좋겠다고, 장을 충분히 봐놨는데 묻지도 않고 사다 주시니 버리는 것이 많아진다고, 아무도 없는 집에 와서 설거지며 청소해 놓는 것 하지 말라고 왜 말 못 했을까? 왜 처음부터 선 긋기를 못했을까?'

그래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내 아이들이 가정을 이루게 되면 거리 두기부터 제대로 하자고. 아랫사람만으로가 아닌 사위와 며느리에 대한 예의로 대하자고.
 
그런데 딸이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하니 솔직히 기쁘지만은 않았다. 딸이 좀 더 내 곁에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결혼 준비에 한껏 들떠 있는 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딸이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그제야 나는 부모로서 2차 관문에 들어섰음을 알게 되었다. 자식을 품 안에서 보호하고 보살피던 역할에서 벗어나 다 큰 자녀를 떠나보내고 그 자녀가 자기 가정을 이루고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렇게 딸의 독립을 앞두고서 심란해하는 나를 돌아보며 자녀의 독립을 진짜로 두려워하는 건 둥지를 떠나는 자녀가 아니라 그 자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멋지게 독립해서 자신의 인생을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서도, 정작 독립을 받아들일 준비는 하지 못한 부모들... - <당신과 나 사이> 206쪽에서.

그런데 막상 쉽지 않았다. 내 마음이 (인용처럼) 딱 이랬다. 딸은 집 떠나갈 날짜를 꼽으며 행복해 죽겠다는데 떼어내는 것만 같아 허전하고 막연히 섭섭했다. 이제까지 의젓하게만 느껴지던 딸이 새삼 아직 어리게 느껴지고,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마음 놓이지 않았다.

떠나보낸 후 염려는 더욱 커졌다. 하루에도 몇 번 '퇴근 후 집에 들러 밥 먹고 가라고 할까?', '밑반찬 몇 가지 해 갔다 올까?'를 궁리하곤 했다. 하루라도 톡으로든 전화로든 어떤 연락이 없으면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곤 했다. 그렇게 한밤중에 전화할 뻔한 위기까지 간 적도 몇 번이나 된다.
 
어머니는 기대야 할 존재가 아니라 기대는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다. - 208쪽. 

그럴 때마다 떠올라 정신 차리게 한 죽비와 같은 책이 있다. <당신과 나 사이>(메이븐 펴냄)가 그 책. 덕분에 딸에게로 쓸데없이 향하는 마음을 통제할 수 있었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거리 두기를 제대로 하겠다는 애초의 결심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제목으로 알겠지만, 거리 두기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으며 서로에게 도움되는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당신과 나 사이를 힘들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자신을 위해 스스로 챙겨야 하는 거리, 가족 혹은 연인 사이에 필요한 거리, 친구와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 회사 사람들과 필요한 거리,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위한 지혜를 들려준다.
 
각자 올곧이 자라기 위해서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이 거리를 두자고 얘기하면 서운함을 넘어서서 '내가 귀찮은가?' 혹은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라는 오해부터 하게 된다. 그래서 친밀한 사이일수록 '거리'를 얘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자칫하면 서로 깊은 상처를 남기는 문제가 되곤 한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에게는 거리가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기대고 싶어 하는 의존 욕구만큼이나 내 뜻대로 움직이고 싶은 독립 욕구가 동시에 존재한다.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며 그로 인해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 때문에 남과 다른 나의 정체성이나 독립성이 침해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친밀감과 거리감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다른 한쪽은 멀어진다는 점에 있다. - <당신과 나 사이> 61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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