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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부활' 우리은행 박지현, 포지션 파괴의 모범

[여자프로농구] 29일 삼성생명전 20득점 10리바운드 맹활약, 우리은행 5연승

등록|2021.11.30 11:53 수정|2021.11.30 11:53
우리은행이 안방에서 삼성생명을 꺾고 파죽의 5연승을 내달렸다.

위성우 감독이 이끄는 우리은행 우리원은 29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삼성생명 2021-2022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 블루밍스와의 홈경기에서 56-47로 승리했다. 지난 14일 2라운드 첫 경기에서 삼성생명에게 3점 차로 분패했던 우리은행은 보름 만에 안방에서 다시 만난 삼성생명을 상대로 9점 차 승리를 따내며 설욕에 성공했고 파죽의 5연승으로 단독 2위 자리를 지켰다(8승 3패).

우리은행은 에이스 박혜진이 풀타임으로 출전하며 15득점 9리바운드 3어시스트 1스틸 1블록슛으로 팀을 이끌었고 슛컨디션 난조로 20분 출전에 그친 김소니아도 9득점 6리바운드로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이날 누구보다 위성우 감독과 우리은행 팬들을 기쁘게 했던 선수는 따로 있었다. 2라운드까지의 부진을 씻고 3라운드 첫 경기에서 20득점 10리바운드로 맹활약한 4년 차 가드 박지현이 그 주인공이다.

포지션 파괴 주도하는 젊은 유망주
 

▲ 박지현은 가드임에도 매 경기 두 자리 수 리바운드를 잡을 수 있는 좋은 신장을 가지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농구에서는 대체로 키가 작은 선수가 공을 운반하고 배급하는 가드를 맡아주고 키가 큰 선수가 골밑에서 몸싸움을 하면서 리바운드를 잡는 빅맨을 소화하는 게 상식적인 포지션 배분이다. 하지만 포지션의 개념이 흐려지고 있는 현대농구에서는 큰 선수가 가드 포지션에서 경기를 조율하거나 작은 선수가 힘과 투지를 바탕으로 골밑을 책임지는 등 전통적인 포지션의 틀을 깨는 경우가 적지 않다.

WKBL에서 '포지션 파괴'를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는 단연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김단비다. 김단비는 180cm의 좋은 신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내외곽을 넘나드는 플레이로 포지션의 개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특히 박지수(KB스타즈)가 리그에 합류하기 전인 2016-2017 시즌에는 득점과 리바운드, 스틸, 블록슛 부문을 독차지하기도 했다(심지어 김단비는 그 시즌에 어시스트 역시 리그 2위였다).

김단비가 좋은 신체조건에도 외곽플레이를 겸비한 선수라면 지난 시즌 챔프전 MVP 김한별(BNK 썸)은 신장(178cm)의 한계를 극복한 선수다. 물론 팀을 옮긴 이번 시즌에는 5.56득점 4.2리바운드로 주춤하지만 김한별은 삼성생명 시절이던 2018-2019 시즌부터 2020-2021 시즌까지 세 시즌 연속 8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특히 플레이오프나 챔프전에서는 자신보다 20cm 가까이 큰 박지수를 상대로도 골밑에서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우리은행에도 포지션 파괴를 주도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프로에서 4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장신가드 박지현이 그 주인공이다. 가드이면서도 183cm의 좋은 신장을 가지고 있는 박지현은 숭의여고 시절 자신이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여자농구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8-2019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무려 4.8%(1/21)의 확률을 뚫고 1순위 지명권을 따낸 우리은행에 입단했다.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은 장차 팀의 미래를 책임질 최고의 유망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루키 시즌 15경기에서 8득점 3.73리바운드 1.67어시스트를 기록한 박지현은 무난하게 신인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박지현은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종료된 2019-2020 시즌 27경기에 모두 출전해 출전시간이 34분으로 크게 늘어났음에도 8.37득점 5.56리바운드 3.44어시스트로 기대한 만큼의 발전속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저돌적인 돌파와 리바운드 능력 갖춘 장신가드
 

▲ 국가대표이기도 한 박지현(오른쪽)과 박혜진은 여자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가드 듀오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2019-2020 시즌까지만 해도 외국인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박지현의 활동반경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제도를 폐지한 지난 시즌 박지현은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박지현은 지난 시즌 출전시간이 단 2분 늘어났을 뿐이지만 15.37득점(6위) 10.40리바운드(2위) 2.93어시스트로 프로 입단 3년 만에 우리은행은 물론이고 WKBL을 대표하는 젊은 에이스로 도약했다.

시즌이 끝난 후 2020도쿄올림픽에서 대표팀의 막내로 선발된 박지현은 3경기에서 8.3득점 4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세르비아전에서는 17득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유럽선수들을 상대로 전혀 위축되지 않는 패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박지현은 올림픽이 끝난 후 곧바로 9월에 열린 아시아컵까지 참가하면서 시즌 개막을 앞두고 휴식을 거의 갖지 못했다.

비 시즌 동안 두 번의 국제대회에 출전한 데다가 지난 10월 25일 하나원큐와의 개막전에서 엄지발가락 부상까지 당한 박지현은 2라운드까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은행의 중요한 옵션으로 성장한 박지현이 막히니 우리은행의 경기가 잘 풀려 나갈 리 만무했다. 지난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우리은행이 개막 후 7경기에서 3패를 당한 것은 박지현의 부진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지현은 29일 삼성생명과의 홈경기를 통해 지난 시즌에 보여줬던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회복했다. 폭발적인 돌파와 미드레인지 지역에서 자신 있게 올라가는 슛, 그리고 적극적인 리바운드 가담으로 코트를 누빈 박지현은 72.7%(8/11)의 2점슛 성공률을 기록하며 20득점 10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작성했다. 삼성생명은 수비를 바꿔가며 박지현을 막으려 했지만 183cm의 가드 박지현을 제어할 방법을 끝내 찾지 못했다.

박지현은 이날도 3개의 3점슛을 던져 하나도 림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박지현은 통산 3점슛 성공률이 29.7%에 불과할 정도로 외곽슛에서는 약점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뚜렷한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은행은 박지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은행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선수로 성장한 박지현은 아직 만 21세에 불과한 2000년생 유망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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