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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된 작은 아파트, 그런 우리 집이 너무 좋습니다

나의 삶이 녹아있는 공간에 대하여

등록|2021.11.30 17:02 수정|2021.11.30 17:04

즐거운 우리 집코로나로 일년의 절반 이상을 가정보육 해왔다. 가정보육 하는동안 낡고 작은 평수의 집에서도 매일 즐겁게 노는 아이를 보며 집에 담기는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 박소희


우리 집은 지은 지 25년 된 작은 평수의 아파트다. 영등포 다세대 주택을 첫 신혼집으로 시작해 거기서 1년을 살고 얻은 두 번째 보금자리가 지금의 집이다. 아버님의 오랜 군 생활과 교직 생활로 어릴 때부터 이사를 밥 먹듯 해왔던 신랑은 늘 안정적인 우리 집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의 집은 그래서 생긴 첫 번째 우리 집이다. 비록 지금도 안방 하나 정도만 우리 것이고 나머지는 은행 집이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는 결혼 후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던 날, "와, 우리 집이라니" 하는 신기함과 약간의 설렘으로 이삿짐을 올리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니 스무 살 훌쩍 넘은 이 집의 나이도, 그리 넓지 않은 이 집의 크기도 이렇다 할 아쉬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아침에 햇살이 잘 들어 좋네, 앞뒤로 바람이 잘 통하니 환기가 잘돼서 그것도 좋네, 베란다 큰 창문 앞이 트여있어 저기로 공원길이 보이니 그것도 마음에 드네. 하는 생각만 들뿐.

내 손길이 닿은 곳 

몇 년을 살고 있지만 나는 지금도 우리 집을 좋아한다. 아이들과 종일을 보내다 잠깐 빨래를 널러 나간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깥 풍경이 좋다. 저 앞으로 작은 공원과 아파트 단지마다 가득한 나무들이 계절마다 제 색을 내며 변해가는 모습이 반갑다.

봄꽃들이, 여름 녹음이, 가을 단풍이, 겨울 눈꽃이 때마다 다정하게 느껴진다. 특별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작년 한 해를 생각하면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풍경은 집안일을 하는 중에도 내게 작지만 생생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아침 햇빛으로 환하게 채워지는 우리 집을 좋아한다. 내가 고른 벽지와 아침 햇빛이 만났을 때 만들어지는 자연스럽고 따뜻한 색의 밝음이 좋다. 좋은 기분으로 많은 아침을 보내는 일이 하루를 시작할 때 받는 고마운 응원이 된다는 걸 알았다.

해 질 무렵 작은방으로 밀려드는 노을빛도 좋아한다. 해지면 드리우는 그늘이 아니라 붉그래한 노을빛으로 하루가 저물고 있음을 아는 게 좋다. 노을빛이 드는 방 안에서 오늘 하루도 나름 잘 살았네, 하는 생각이 가만히 드는 것이 감사하다.

손이 느려 뭐든 남보다 시간이 배로 걸리는 내가 매일 청소하고 정리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크기의 우리 집이 좋다. 평생 야무진 살림꾼은 못될 체질인 내가 그래도 집 안 구석구석 돌아보며 손을 보고 세련된 안목은 아니어도 내 맘에 흡족하게 만들어져 가고 있는 아담한 우리 집이 좋다.

이 집 구석구석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안방엔 탁 털어 주름 없이 펴진 이부자리와 깔끔하게 정리된 화장대가, 작은방엔 안 쓰는 물건과 옷가지들을 잔뜩 덜어낸 후련함과 내 책들로 채워진 책장이, 주방엔 설거지를 마치고 비워진 싱크대가, 거실엔 매일 나와 앉아 묵상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이 책상이 있는, 부족한 살림꾼인 내가 마음으로 닦고 가꾸며 만들어 온 우리 집.

집은 삶이다

'우리 집'이라는 이름이 만들어 내는 마음이 있다. 예전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이시언 씨가 오래도록 살던 빌라를 떠나던 장면을 기억한다. 아마 거실에 방 하나 주방과 화장실이 있었던 평범한 빌라. 그 집에 오래도록 살았다는 이시언씨는 이사를 나가던 날, 비워진 집안 곳곳을 훑으며 눈물을 쏟았다.

오랜 무명의 힘든 시간을 보내며 살았지만 감사한 일도 많았다던 집. 그 집을 떠나며 그는 많이 울었다. 고마웠다고 되뇌면서. 그 모습을 보는데 그의 말이,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삶이 거기 있다. 그 집에 사는 동안 기뻐하고 힘들었던 모든 시간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평수와 모양에 상관없이 '우리 집'은 사람에게 그런 의미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집은 모두에게 자신의 삶이기도 할 거다.

모양과 크기에 상관없이 '우리 집'을 좋아하는 일. 찾으려고 들면 금세 보일 단점보다 구석구석 내 손이 닿아 있는 우리 집을, 그래서 조금씩 내 마음과 삶도 담아가는 우리 집을 좋아할 이유를 더 섬세하게 살펴 기억한다. 내 삶이, 우리 가족의 삶이 오늘도 여기서 서로 위로받으며 채워져가고 있다. 나는 우리 집을 좋아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먼저 게재 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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