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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면 매일 천근 짐지고 교회 옥상 올라가는 부목사

[일터에 사는 사람들] 일과 쉼이 분리 안되는 교회 사택

등록|2021.12.28 12:05 수정|2021.12.28 12:45
해가 지면 집이 되고, 해가 뜨면 일터가 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7년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36만여 가구를 조사했는데 이 중 18만여 가구는 일터를 거주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주거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일터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오마이뉴스>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편집자말]

▲ <일터에 사는 사람들> 교회 옥탑방 ⓒ 이희훈


 

교회 옥탑방 ⓒ 이희훈



수도권 한 교회의 부목사인 이현일(37, 가명)씨는 일을 마치면 언제나 가파른 교회 계단을 오른다. 교회 4층의 옥상 한켠에 그의 집이 있다. 사택이다. 샌드위치 판넬로 만들어진 20평 크기의 작은 가건물. 이씨를 비롯해 그의 아내, 두 딸의 보금자리다.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그는 집을 구하지 못해 교회 사택에 머무르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현재 주거에 별다른 불편은 없다. 다만 판넬집의 특성상 더위가 힘들다.

"더위가 제일 심하죠. 판넬로 지은 집이다 보니까 여름에 더워요. 낮에 더운 게 아니고 판넬에 열이 저장됐다가 저녁에 더워요. 가건물의 삶이 이렇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죠. 옆집 옥상에선 매일 고기를 구워먹고 하면서 소음이 발생할 때가 있죠. 잠을 설칠 때도 있는데, 교회에 있으니까 막 소리를 지르진 못하고요."
 

[풀영상] 옥탑방 교회 사택에 사는 목사 인터뷰<일터에 사는 사람들> 옥탑방 교회 사택에 사는 가족 ⓒ 이희훈


그는 지난 2015년 서울에서 목사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교회 사택에서 살았다. 처음 자리잡은 교회 사택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옛날식 교회의 옥상 건물에서 살았는데, 겨울에는 웃풍이 심했다. 보일러를 계속 돌려도, 방풍막을 쳐도, 실내 온도는 20도를 넘기지 못했다. 난방 텐트까지 쳤지만 어린 자녀들은 겨울이면 감기에 자주 걸렸다.

"겨울에는 화장실이 제가 샤워하기에도 너무 추운 거예요. 근데 거기서 애를 씻기려 하니 눈물이 났죠. 그래서 조명으로 난방 기능도 되는 것을 달기도 했는데, 오래된 건물이라 추운 건 해결이 안되더라고요."

겨울에 몹시 추웠던 그 사택에선 마음조차 편하게 지내지 못했다. 담임목사 가족들의 간섭이 조금 심했다. 퇴근을 한 뒤에도 일이 있으면 불려 나왔고, 여름에 에어컨을 트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다. 담임목사 가족들이 옥상에서 운동을 할 때, 이씨의 가족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여름이라서 에어컨을 켰어요. 그런데 에어컨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담임목사 사모님이) 올라오신 적이 있어요. 그날은 정말 눈물이 났죠.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여름에 아이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땀띠가 난 적도 있고요. 옥상에 (사모님이) 물건도 두고 쓰시는데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도 했고요."
 

▲ 이 목사는 아내와 두 딸이 함께 사는 교회 사택에서 설교 준비를 한다. 컴퓨터 앞은 아내의 일터이자 이 목사의 일터이기도 하다. ⓒ 이희훈

 

▲ 이 목사의 바람은 가족의 웃음이 가득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집이다. 그리고 추운 날씨엔 따듯하고 더울 땐 시원할 수 있는 그런 집에 살고 싶다고 했다. ⓒ 이희훈


2018년 현재 교회로 옮기면서 사생활 간섭 문제는 사라졌다. 이씨는 "담임목사님이 예전부터 그런 간섭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다"며 "퇴근 시간은 보장해주고, 사생활 간섭도 일절 안하신다"며 비교적 만족해했다. 그래도 교회 사택에서 산다는 것은 무거운 짐이다. 이씨 개인적으로는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고충이다.

"일을 하는 공간과 집이 같이 있잖아요. 집에 돌아와도 사역을 하다가 지친 것들이 심리적으로 연결이 돼요. 집이 따로 있으면 퇴근을 하는 길에 좀 풀리거나 할 수 있는데. 교회 안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고민이 고스란히 집 안에서도 느껴지니까 그게 스스로 힘든 거죠."

사택이 있는 교회만 선택해야 하니 근무지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도 고민이다. 이씨는 "서울 반포나 잠실 등지의 큰 교회들은 사택이 없고 지원금만 지급되는데, 아무리 지원금이 많더라도 집을 구할 수 있는 재정적 형편이 되지 않는다"며 "최근 집값이 오르면서 서울에서 사택을 제공하는 교회도 줄어드는 것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씨와 인터뷰를 했던 시점은 11월 중순이었다. 그와 그의 가족은 11월 말 또다시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씨는 "사역자들은 교회에서 자리를 잡고 3년 정도가 되면 열매를 볼 수 있다"며 "저 같은 경우, 목사는 교회의 부름에 따라 어디든 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역시 사택에서 살 계획이다. 목사 생활을 시작한지 6년이 됐는데, 벌써 세 번째 이사다.

"집을 따로 장만하려 대출을 받으려 해도 여의치가 않네요. 사실 교회를 옮기기보다는 스스로 개척(교회를 설립)을 하고 싶은데,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요. 집을 따로 구하게 되면 돈이 이중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니까 지금은 아무래도 부담스럽죠. 일단은 제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려고 합니다."
 

▲ 이 목사는 과거 추위를 피할 수 없던 교회 사택에 살았다. 그는 주거 문제만 해결된다면 자신이 바라는 사역을 직접 개척한 교회에서 펼치고 싶다고 했다. ⓒ 이희훈


* 이 기사는 증강 현실(AR) 콘텐츠로 구현돼 있습니다. 기사에서 다룬 일터 주거지의 AR은 오마이뉴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AR 콘텐츠 바로가기 http://omn.kr/1wa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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