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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여주고 재워주면 됐지..."라던 생활의 끝, 노숙 또는 고시원

[일터에 사는 사람들] 평생 집 없이 떠돈 60대 두 남자의 대화

등록|2021.12.31 11:35 수정|2021.12.31 12:11
해가 지면 집이 되고, 해가 뜨면 일터가 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7년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36만여 가구를 조사했는데 이 중 18만여 가구는 일터를 거주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주거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일터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오마이뉴스>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편집자말]

일터, 방황하는 사람들 ⓒ 이희훈


여기, 삶의 궤적이 비슷한 두 사람이 있다. 김명배(63, 가명)씨와 최세식(61)씨. 두 사람 모두 일터를 집으로 삼았다. 김씨는 지난 2016년 운영하던 회사가 파산한 뒤, 공장과 고시원 등 숙소를 제공하는 일터를 전전하며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최씨는 중국집, 한식당, 양계장, 목욕탕에서 일을 하면서 늘상 일터 한 구석을 거처로 썼다.

직장을 잃었을 때, 거리 노숙을 했던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김씨는 지난 11월 직장을 그만뒀고, 최씨는 지난 1997년 실직한 이후 오랫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현재 이들의 거처는 방값이 가장 저렴한 고시원이다.

일터에서 잠을 자면서 이들이 몸으로 느낀 것은 '집'이라는 공간의 소중함이다. <오마이뉴스>는 두 사람과의 심층 인터뷰를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 최세식씨는 영등포역 인근 고시원에 살고 있다. 고아로 자라 숙식을 제공하는 일자리를 찾아 평생을 떠돌았다. 그의 일터 중에는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월급을 주지 않는 곳도 있었다. ⓒ 이희훈


최세식 "저는 영등포구 고시원에 살고 있는 최세식입니다. 요즘 날씨가 추워지는데 선생님은 좀 괜찮은 곳에 자리잡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명배 "고시원 사시는군요. 저도 서울역 인근 고시원에 삽니다. 지난 8월부터 석 달간 수원 고시원에서 총무로 일을 하다가 이번 달 일을 그만두고 나왔어요. 거기서도 고시원 총무를 하면서 살았으니 고시원 생활은 계속해온 셈이네요. 선생님도 계속 고시원에 머무셨나요?"

"저는 예전에는 직장에서 내주는 방에서 살았어요. 직장을 잃은 뒤로 머물 곳도 없어져서 한동안 서대문구 공원에서 노숙 생활을 했었죠. 특별한 기술도 없으니까 써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지금은 주거급여를 받으면서 영등포구 고시원에서 살고 있어요. 영등포구 고시원을 돌면서 살았는데, 이 생활도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 김명배씨는 서울역 인근 고시원에 산다. 운영하던 사업체가 파산하며 영등포의 한 공원에서 노숙하다 고시원 총무 생활을 하기도 했다. 퇴근이 없는 고시원은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감옥과도 같았다. ⓒ 이희훈


"20년이요. 정말 힘드셨겠습니다. 저도 고시원 생활을 해보니까 사람 살 곳이 못됩니다. 고시원 방이 너무 작아서 키가 크면 무릎을 접어야 몸을 뉠 정도니까요. 사람 죽어서 들어가는 관이랑 뭐가 다른가요. 정말 국민소득 3만불이 넘는다는 이 나라에서는 없어져야 할 것 같아요. 고시원 이전에는 어디서 사셨나요?"

"마땅한 집이 없으니까, 항상 직장에서 살았죠. 중국집에서 배달 할 때는 손님 들어가는 방 있죠? 거기서 먹고 자고 했어요. 목욕탕에서 세신사 일을 할 때도 목욕탕 홀 안에서 손님들 다 나가면 거기 바닥에서 잤어요. 직장을 많이 옮겨 다녔는데, 집이 없어서 매일 그런 공간에서 살았어요. 참 외롭게 살았네요, 내가."

"저는 지난 2016년 사업체가 파산을 했어요. 여기저기 돈 끌어 모아서 직원들 밀린 월급 다 주고 나니까 주머니에 만원짜리 몇 장밖에 안 남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영등포구 공원에서 종이 박스 덮고 노숙을 하다가 지인 소개로 고시원 총무 일을 했어요. 거처도 고시원 공간이었는데, 처음에는 옆방 사람들 소음도 들리고 적응이 안됐었죠."

"옆방 사람들이 술 먹고 시끄러운 사람이면 정말 골치 아프죠. 새벽에 잠을 못자요. 고시원 총무일은 어떻던가요? 보니까 굉장히 일이 많던데."

"어휴 말도 마세요. 올해 8월 경기 수원의 한 고시원 총무로 들어갔는데, 90실이 되는 고시원을 저 혼자 다 관리했어요. 식사는 주로 라면. 고시원 청소와 입퇴실자 관리, 화장실 등 시설 정비, 계단 청소, 밥하는 일까지 다 했어요. 잠깐 라면을 끓여먹더라도 '주방에 밥 떨어졌어요' 하면 먹던 거 놔두고 다시 가야 해요. 근무하는 석 달 동안 고시원 반경 1km를 못 벗어났어요. 고시원에 제 집이 있으니 어딜 벗어나질 못하죠. 가끔 눈치 봐가며 슈퍼 정도 다녀왔어요."
 

▲ 최씨는 자신만의 집이 있다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했다. ⓒ 이희훈


"얘기를 들으니 양계장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양계장에 있는 건물에서 살았는데, 닭 모이를 주려고 새벽 6시에 무조건 일어나야 했어요. 닭이 어느 정도 양을 먹어야 알을 낳으니까, 그 시간에 딱딱 맞춰서 주고, 온도 조절도 해줘야 해요. 온도 조절을 못해주면 닭들이 죽어요. 거기서 잠도 제대로 못잤어요. 주변에 공장이 있었는데, 잠 잘 때도 공장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아무튼 양계장 일은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게 일한 이들이 받은 보상은 크지 않았다. 수원 고시원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했던 김씨는 월급으로 고작 100만원을 받았다. 중국집과 한식당에서 일했던 최씨도 월급을 제대로 못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밀린 월급을 달라는 최씨에게 한식당 주인은 "먹여주고 재워주면 됐지 월급까지 바라느냐"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사장들은 일터를 숙소로 쓰는 대가를 톡톡히 받아냈다.

"먹고 자고 숙식 제공이 우선이었으니까요. 중국집에서도 월급을 제대로 안줬어요. 그때(최씨는 중국집에서 일하던 때를 1980년대로 기억했다)는 안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거저 부려먹는거죠. 주인이 아무래도 좀 무시를 하니까요. 한식당에서도 7년인가 일했는데 월급을 안주더라고요."

"주인 눈치가 많이 보이셨겠네요."

"그렇죠. 휴일이나 주말이면 조금 늦잠도 자고 싶잖아요. 그런데 그러질 못했어요. 아침 되면 주인 오고 손님들 오는데 이불 깔고 누워있을 수 없잖아요. 목욕탕에서 일할 때는 목욕탕이 새벽 6시에 문을 여는데, 새벽 5시에는 무조건 일어나 있어야죠. 나도 사람인데 힘들지 않겠어요? 아플 때나 피곤할 때 쉴 공간이 없다는 거. 여기 그만두면 어디로 가야 하나 걱정도 많았죠."
 

▲ ⓒ 이희훈


"저도 수원 고시원이 아오지 탄광 같았어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저녁 11시까지 일했어요. 휴일 없이 365일 일해야 했어요. 원래 고시원에는 총무 2명은 있어야 하는데 그 일을 저 혼자 하다보니까. 너무 힘들고 내 시간도 없이 일하다보니까 머리도 굳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달에 정리하고 나왔어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청파동에 고시원을 얻고, 돈이 떨어지면 공공근로로 생활비를 하려고요."

"나는 일을 해본지가 10년이 넘었네요. 1998년도 IMF 터지고 나서 목욕탕에서 나오고 다시 일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기술이 없고 나이가 드니까 써주질 않더라고요. 일자리를 못구하니까 갈 데가 없더라고요. 그때가 추운 겨울이었는데, 서대문 공원에서 노숙도 하고 그랬어요."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고시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씨는 현재 기초급여를 받으면서 영등포 일대 고시원에서 살고 있고, 김씨도 그간 모아둔 얼마간의 돈으로 서울역 인근 고시원에 자리를 잡았다. '고시원은 없어져야 할 곳'이라고 했던 김씨도 다른 주거를 마련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동안 주거가 주는 안락함에 대해 모르고 살았더라고요. 경제적 무능력 상태가 되니까, 직장과 분리된집이 있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알겠더라고요. 침대, 세탁기, 샤워실이 갖춰진 원룸이라도 구한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평생을 집 없이 살았으니, 집이 있으면 그보다 더 할 행복이 없겠네요. 집이라는 나만의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그게 꿈이죠."
 

▲ 김씨의 바람은 침대와 세탁기, 샤워실이 갖춰진 작은 원룸을 구해 집이 주는 안락함을 한번이라도 누려보는 것이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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