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했어도 "아가씨"... 정치권의 역겨운 성차별
[당신 곁의 페미니즘] 15번째 편지: 조동연 관련한 언론의 경마보도, 공해 수준이었다
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편집자말]
(* 아래 오디오 버튼을 누르시면 편지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지낭독 서비스는 오마이뉴스 페이지에서만 가능합니다.)
편지를 쓰기 전, 6월에 제가 받은 첫 편지 '여자로 태어난 건 축복일까요'를 다시 읽었어요. 요즘 마음이 정말 심란했거든요. 정책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거대 양당의 대선 캠프가 경쟁하듯 인선과 인재영입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 풍토가 이제 저는 좀 질리는데... 당신은 어떠신가요.
한편 정말이지 지켜보는 게 괴로웠던 이슈도 있었어요. 민주당에서 공동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던 조동연 교수의 사퇴 말이에요.
영입 인사 검증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엔 공익적이라기보단 사생활을 파헤치는 데 혈안이 된 것 같았어요. 가세연(가로세로연구소)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대표 등은 유튜브에서 조 교수 자녀 사진을 눈만 가린 채 공개하고, 실명·생년월일 등 신상을 페이스북(강용석)에 올렸다가 지웠다고도 하죠. 가족의 개인정보까지 공개될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녀 얼굴까지 공개한 가세연, 그걸 또 받아쓴 언론
▲ 공동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던 조동연 교수 이슈는 지켜보는 데도 힘이 들었습니다. 사진은 11월 30일 인선 발표 기자간담회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조 교수 모습. ⓒ 공동취재사진
제가 더 분노하는 지점은 따로 있어요. 가세연이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가짜뉴스'에 가까운 과장정보를 마구 퍼뜨리며 이걸로 돈을 번다는 점요. 유튜브 조회수가 곧 돈이기 때문이겠죠. TV조선 등 언론도 이를 퍼나르는데, 이건 '국민 알 권리'를 빙자한 관음증 아닐까요. 이 문단을 쓰는 내내 제 구겨진 미간이 펴지지를 않네요(덧붙여 가세연은 과거에도 수차례 허위정보로 지적받았었고요. http://omn.kr/1n4gg ).
제가 겪은 사이버불링(cyberbullying)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저도 지난 총선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었는데, 일부 남성 중엔 '친해지고 싶다'며 제 SNS로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 자기와 따로 만나줘야만 후원을 하겠다는 이가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그들을 '언팔'하는 것 외엔 적극 대응하질 못했어요. 강하게 나가면 그걸 또 캡쳐해 문제삼을까, 겁이 났었거든요.
그뿐인가요. 선거운동을 다닐 때 전국 유세현장에서 만난 다른 당 남성 후보들은 저를 '후보님'이 아닌 "아가씨"라고 불렀고, 제 외모와 얼굴에 대한 평가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곤 했습니다. 제가 정색하고 "그런 말씀은 하면 안 됩니다"라고 반박을 해도 그분들은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당대표도 겪는 성추행... 살기 피곤하다, 여자여서
출마경험이 있는 동료들과 대화해보면 이게 여성 정치인들의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정의당 대표였던 이정미 전 의원조차 그런 경험이 있더라고요. 유권자들과 악수를 하는데, 한 남성이 성적인 의미로 이 의원의 손바닥을 긁는 성추행을 했다는 얘기였습니다(관련 기사: 이정미 "'손바닥 희롱'한 그 분, 지금 만나면 달리 대응할 것").
여성은 검증의 문턱을 넘기도 힘들지만, 넘는다고 삶이 달라질까요?
서울시의회 여성의원 100명에게 물은 조사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의원이 '나는 성차별·혐오 표현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고 답했대요(민주당·지방자치발전소 등 '여성정치인 대상 폭력 실태조사'). 남성의원이 여성의원들 사진을 불법으로 촬영해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는데, 믿어지시나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 최근 별도사이트를 열고 '정치에서의 여성폭력 뿌리 뽑기 캠페인(Stop Violence Against Women in Politics)'을 시작한 것도 이런 정치권 성폭력의 오랜 역사 때문이더라고요.
▲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정치 분야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양한 폭력을 경험해왔다"며 최근 '정치에서의 여성폭력 뿌리 뽑기'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https://stopvawp.campaignus.me/) ⓒ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여기엔 여성을 향한 일부 언론의 '논란' 딱지 붙이기와 갈등 부추기기 보도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이슈에서도 드러난 성차별적 보도는, 여성 정치인·연예인·스포츠인 등 그게 유독 '여성'이었을 때 더 가혹했어요.
입은 옷이 뉴스가 된 류호정 의원, 청와대 비서관 발탁 뒤 공격받은 박성민 최고위원이 그랬죠. 올림픽서 안산 선수의 헤어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가수가 단지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기사화되고 손가락질 받던 사례도 기억나고요. 그때마다 제목에 '논란'이라며 검색어 장사에 나섰던 언론들. 클릭수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가세연 유튜브와는 대체 뭐가 다른 거냐고 묻고 싶네요.
최근 화제인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에도 현실적이고 '뼈 때리는' 장면이 등장해요. 극 중 검사 출신 야당 4선 의원인 '차정원(배해선 역)'은 그 경력에 맞게 매우 카리스마 있지만, 그조차도 성차별을 겪습니다. 차정원은 라이벌인 문체부 장관 '이정은(김성령 역)'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없거든, 그런 여자는. 쉽게 뭘 얻는 여자는 없다고, 이 나라엔. 이정은(문체부 장관)이라고 쉬웠을까? … 온갖 것들을 견뎠겠지."
아무리 경쟁자라도 같은 분야에서 분투하는 여성이라 공감 가능한 부분이었겠지요. 이건 비단 정치 분야만의 얘기는 아닐 거고요.
▲ 정치풍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스틸컷 ⓒ 웨이브
그런데도 차별금지법은 계속 '나중에'로 미뤄지고, 여성가족부를 축소·폐지하겠다는 이가 대통령 후보로 활보하고 있어요. 저도 차별금지법과 여가부가 더는 필요 없는 사회를 환영합니다, 단 여성들이 죽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요. 그런데 현실은? 10월 25일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6~2020) 연인 간 폭력 신고 중 살인으로 검거된 것만 227명이었다고 합니다.
최전선에 서 있던 그, 어떤 심정이었을까
낙선 뒤 제가 잠 못 들때마다 펼쳐든 책이 있는데, 미국 역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었던 루스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1933~2020)의 <긴즈버그의 말>이란 책예요. 평생 '차별'에 맞서온 그의 발언들을 읽다 보면 최전선에 있던 그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해보게 됩니다. "내가 작은 성취나마 이룰 수 있었던 건 내 앞에도 뒤에도 여성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문장, 최근엔 이 앞에서 오래 머물렀네요.
긴즈버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걸 당당히 드러내고 자신보다 먼저 싸운 여성들에게 감사하는 걸 잊지 않았어요. 저도 그래보려고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라 말하는 게 두려운, 매우 어두운 시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앞서 호주제 폐지 등 성평등을 위해 싸워온 선배·동료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표해보려고요.
싸울 때 싸우더라도 힘들 땐 쉬자고, 그리고 당신이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는 결심으로... 오늘 이 편지를 부칩니다.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긴즈버그의 말> 성평등과 소수자 보호에 평생을 바친 그의 지혜가 우리에게도 함께하길 바랍니다.
2021년 12월 8일
분투하는 당신을 응원하며, 혜미 드림.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 긍정적인 피드백과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편지를 즐겁게 읽으셨다면, 여기(링크)를 눌러 응원을 남겨주세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회복지사.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