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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의 시대, 노동공제가 필요한 진짜 이유

정부차원의 사회안전망 제도를 보완하고 협력 모델로 검토해야

등록|2021.12.15 18:50 수정|2021.12.15 19:42
백신 접종율이 80%를 넘어서면서 코로나19의 끝이 보이는가 싶더니, 확진자가 급증하여 2022년 새해를 맞는 우리의 상태는 여전히 '비상'이다. 코로나19 초기 정부의 지원 정책은 사업장에 대한 긴급자금 대출과 고용안정 지원금이었다. 고용보험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절반에 이르는 상황에서 재난지원금, 손실보상금 등 후속 정책이 추진되었는데, 지원 대상과 방법을 두고도 진통은 거듭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소득만이 아니라 사회안전망도 양극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공제'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불안정고용 노동자 조직과 전문 지원기관들의 참여로 '노동공제연합 사단법인 풀빵'이 출범했다. 노동공제는 사회보험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이 연대에 기초해 스스로 만들어 운영하는 사회안전망이다. 대리기사, 라이더, 문화예술인, 가사노동자 등이 공제품목 운영을 시작했고, 제화노동자, 방송작가, 아파트경비노동자, 돌봄 종사자, 강사 단체 등이 설립을 추진 중이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공제

국내에서 '공제'는 개별적인 법률에 근거해 직능 단위로 설립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교직원공제회, 군인공제회, 과학기술인공제회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법과 제도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생겨나 성장해 온 조직들이 있다.

1990년대 주민운동 조직에서 탄생한 40여 개의 지역별 자활공제 조직들은 2009년 '전국주민협동연합회'를 결성해 10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며 50억원 규모 자산운용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2013년 설립된 공익활동가 공제회 '동행'은 2200여 명 활동가들의 생활을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2015년에는 안산-시흥 지역 소규모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사단법인 좋은 이웃'을 결성하였고, 2019년 전국화섬노조가 '봉제인공제회'를 출범시켰다. 이들 조직은 자조와 협력을 통해 살아남았으며, 최근 늘어나는 공제조직 결성에 큰 영감을 주고 있다.

<표 1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생겨나 운영되는 공제 ⓒ 세이프넷지원센터


사회적 경제 공제에 대한 오해

공제는 위험보장을 위한 것으로, 운영에 있어 참여자 간 상호성이 강조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공제는 협동조합과 함께 대표적인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 손꼽힌다. 즉, 이용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이윤이 아닌 이용자들의 필요 충족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공제는 자본이 아닌 사람 중심 결사체이기 때문에, 영세하고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조직일 것이라 오해받는다. 그러나 책임 있는 판단은 추측이 아닌 사실에 근거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이하 생협) 성공 경험이 있다. 1990년대에 다양한 사회적 기반 위에 탄생한 생협 조직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연합회 중심의 사업 체계를 갖추었고, 2020년 기준 조합원 140만 가구 규모로 성장하였다. 품질 관리와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연간 1조 3천억 원 규모의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 사업을 조합원 통제 하에 둘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거버넌스, 커뮤니티 착근성 등 공제 조직이 지향하는 특성은 지속가능발전 패러다임에 기반한 ESG 경영과 맞닿아 있다. 사회적 경제 방식의 공제가 활성화된다면, 관련 분야 기업의 ESG 경영으로의 전환이 "워싱"의 수준을 넘어 보다 깊고 넓게 일어날 것이다.

공공의 복지와 협력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안전망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공제의 역할을 두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불필요하게 대신하려 한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가 넓고 이를 메울 수 있는 충분한 재정이 단기간에 마련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 차원의 사회보장 제도와 협력적으로 작동하는 모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상호공제조합은 시기에 따라 공적 의료보험 체계와 역할을 나누고 연결해가며 발전해왔다.

공제는 어려움 앞에 연대하고 서로 협력하려는 인간의 행동을 기반으로 한다. 사회적 경제 방식의 공제는 금전적 보장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풍성히 하는 데에서 오는 비금전적 안전망까지 제공한다.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복지는, 급여와 서비스만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배제를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기제와 함께 실현될 수 있다.
 

<표 2>사회적 경제 방식의 공제 설립 근거 법률 발의안 ⓒ 세이프넷지원센터


위기의 시대에 빛나는 다양성의 가치

코로나19는 이미 우리 삶에 굵고 진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전망과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일상에 기반해 착실히 한 걸음씩 내딛는 시도를 작아 보이게도 만든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변화의 방향과 비전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는 정치 과정을 통해 제안과 토론, 선택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위기에 대응하고 다가올 변화를 예비하는데 사회안전망 확충이 중요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금은 대전환의 초입이자 혼돈의 시기라고 말한다. 기후 위기와 자원 제약으로 성장주의 모델은 힘을 잃었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비전은 아직 또렷하지 않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다양성은 더욱 중요하다. 정책 당국은 기존 문법과는 다른 새로운 모델의 등장을 불안한 눈으로 막아설 것이 아니라, 대안으로서 가능성을 인정하고 다양성의 관점에서 키워 두는 현명함을 발휘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 공제에 대한 요구는 풀뿌리 경제 주체들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관심과 역량이 결집되면서 높아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를 극복하려는 풀뿌리 경제 주체들의 자발적 노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제도적인 틀 위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장지연 경영기획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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