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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세 엄마의 뜨거운 학구열... 영영 식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이 배우지 않아도 책 읽고 글 쓰는 엄마가 좋습니다

등록|2021.12.17 08:38 수정|2021.12.17 08:45
작년부터 자서전을 쓰는 엄마는 벌써 두꺼운 노트로 3권을 넘겼습니다. 어머니는 코로나19로 나가지도 못하는데 글을 쓰니 좋다고 합니다. 전화 너머로 밝은 음성이 전해옵니다.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해. 그런데 배운 사람이 더 자신감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 배우지 못한 내 경우를 보면,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는데 자신감이 없어. 어쩔 땐 대화가 잘 안 통하지. 상대는 모르겠지만 본인은 답답하거든. 단어의 뜻을 몰라 끙끙대다가 집에 와서 물어볼 때도 있고 어물쩍 넘어갈 때도 있는데 개운하지 않아."
 

▲ 한 글자마다 정성이 가득한 어머니의 자서전 ⓒ 김광선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엄마는 배움에 게으른 적이 없습니다. 그 한을 풀려고 5년 전, 인천에 있는 기초반이 있는 종합학원을 찾았습니다.

"기초반이지만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없었어. 한 반에 40명 정도 있는데 40, 50대로 젋고 멋진 분들이더라. 학습도 초등 수준을 넘어 중학교 기초를 배우는 것 같았어. 진도도 빠르고. 기초 과정 끝내고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배울 작정으로 온 사람들인가 봐."

그때 학원 접수하시는 분은 며칠 다녀 보시고 결정하라고 엄마에게 적응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엄마는 며칠 다니시다 그만두셨습니다.

"에이, 그래도 좀 다녀 보지 그랬어?"
"인천까지 지하철 타고 내려서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해. 계속 다닌다 해도 무릎이 아파서 힘들었을 거야. 좀 가까운 곳에 1학년 과정부터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을 텐데. 기초반이 70, 80대로 한정되면 더 좋구. 젋은 사람들은 나야 상관없는데 상대방이 노인이라고 싫어할까 봐. 사실 겉만 늙었지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맞아, 엄마는 아직도 소녀같아."
"1970년대 내가 본 할머니들은 이가 빠져서 입과 볼이 움푹 들어갔었어. 배, 참외, 무처럼 딱딱한 거 드실 땐 놋수저로 박박 긁어서 오물오물 드셨지. 할머니들은 주로 무명옷을 입으셨는데 자주 안 빨아서 꼬질꼬질했어. 눈이 가렵거나 눈물이 나도 병원에 갈 생각도 못하고 소매로 슬쩍 닦으셨지. 요즘 할머니들은 안 그런다. 목욕도 아침, 저녁으로 하고 옷은 세탁기가 빨아주니까 매일 갈아 입어.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도 받고 얼마나 멋쟁인데. 머리는 하얘지고 주름은 느는데 마음은 늙지 않는다. 나의 학구열도 수그러들지 않아."


엄마의 학구열이 영영 식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경로당이나 공원에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보다 책 읽고 사색하고 글 쓰는 엄마가 더 자랑스럽습니다. 나도 엄마처럼 늙어야지 다짐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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