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가요 시상식 폐지 불러온 기 싸움·불협화음
지상파 방송 3사의 연말 가요축제, 어떻게 변화해 왔나
▲ 지난 17일 열린 KBS가요대축제의 한 장면. ⓒ KBS
매년 12월이면 지상파 방송3사는 연례적으로 각종 시상식을 진행하며 그해 자사 드라마, 예능 등을 총결산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가요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지상파는 < KBS 가요대상 >, < SBS 가요대전 >, 그리고 < MBC 10대 가수 가요제 > 등 경쟁적으로 시상식을 개최하면서 매년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바 있다.
그런데 예능-드라마가 지금도 각각 연예대상, 연기대상으로 꾸준히 행사를 진행하는 것과 달리, 가요 분야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하나둘씩 시상식 폐지를 선택하면서 특집 공연을 꾸미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지난 17일 < KBS 가요대축제 >를 시작으로 25일 < SBS 가요대전 >, 31일 < MBC 가요대제전 >로 이어지는 방송 3사 연말 가요 축제 개막을 맞아 지난 40년간 방송 3사 연말 가요대상의 역사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1980년대] 어차피 대상은 조용필... 올림픽 이후 트로트 가수 약진
▲ 조용필 (1983년 KBS가요대상), 주현미 (1989년 MBC 10대가수가요제) ⓒ KBS, MBC
방송 통폐합으로 인해 TBC를 흡수한 KBS가 1982년 < KBS 가요대상 >(1981년 '방송음악대상'이었던 것을 이듬해부터 '가요대상'으로 변경했다)을 마련하면서 < MBC 10대 가수 가요제 >에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이때 양사의 시상 부문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MBC는 그해를 대표하는 인기가수 10인을 먼저 선정하고 생방송 당일 최고 인기가수(가수왕)와 노래를 발표했다. 반면 KBS는 1986년까지 남자가수, 여자가수, 중창, 그룹사운드 등 부문별 시상제로 차별화를 도모했다.
당시 단골 수상자는 설명이 필요없는 '가왕' 조용필이었다. MBC에선 4연패 포함 무려 6차례나 가수왕(1980,81,83~86)에 선정되는가 하면 KBS에선 4회(1981~83년, 85년)에 걸쳐 남자가수상을 수상하면서 연말 가요시상식 최고의 스타로 사랑받았다.
이에 맞선 경쟁자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82년 MBC에선 '잊혀진 계절' 이용이 가수왕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고 1984년 KBS 남자가수 부문에선 '나도야 간다', '젊은 그대' 등 연일 인기곡을 배출한 김수철이 조용필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대세를 가로막기엔 역부족이었고 매년 '가요대상=조용필' 공식이 반복되면서 조용필이 정중하게 수상을 거부하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1987년 전영록이 양 방송사 시상식을 석권하면서 변화를 맞이한 가요대상은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 모처럼 여가수이면서 트로트 가수의 대상 수상으로 또 한번 요동쳤다. 그 주인공은 바로 주현미. 이후 현철(1989~1990년 KBS), 주현미 (1989년 MBC), 김정수 (1991년 KBS), 김수희(1993년 KBS) 등 트로트 가수들이 연말 시상식 대상 수상자로 각광받게 되었다.
[1990년대] 서태지는 왜 대상을 못 받았을까
▲ 김건모 (1995년 KBS가요대상), H.O.T (1997년 MBC가요제전) ⓒ KBS, MBC
1990년대 들어 방송사 연말 시상식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팬덤 시대로 접어들면서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과 더불어 각종 언론사가 주최하는 가요상이 생기면서 MBC는 가요대상 방식에 변화를 도모하기 시작했다.
MBC는 1992년부터 대상(가수왕)을 더이상 선정하지 않고 '최고 인기가요'(~1998년)에 대해서만 시상하는가 하면 1993년엔 아예 <10대 가수 가요제>를 폐지하고 < MBC 가요제전 >을 1998년까지 운영한다.
KBS만 기존 방식을 고수하면서 대상 수상자를 선정했지만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보수적인 관점에서 수상작을 선정하던 방송사 특성상 신승훈, 김수희, 김건모 등에 밀려 단 한번도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MBC에서만 '난 알아요'(1992년), '컴백홈'(1995년)으로 최고인기가요상을 받긴 했지만 시상식 대신 축제 형식으로 이뤄진 행사 내용을 감안하면 시상의 무게감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기자주 : MBC는 2002년 '최고 인기가수상' 부문을 부활시켰다).
새롭게 개국한 민영방송 SBS는 1996년이 되서야 '10대 가수 대전'이라는 이름 하에 뒤늦게 가요상을 신설했고 이듬해부터 < SBS가요대전 > 대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KBS-MBC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통 가요 및 발라드 가수가 강세를 보인 기존 방송사와 다르게 SBS는 H.O.T., 핑클 등 철저히 10대 아이돌 가수 중심으로 후보, 수상자를 선정하면서 차별화를 강조했다.
3사 시상식 체제가 확립되면서 더 이상 1980년대 조용필처럼 대상을 독식하는 가수는 등장하지 않았고, 이 흐름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한편 MBC는 1998년부턴 30세 이하, 30세 이상 인기가요로 세대를 구분해 수상곡을 선정하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기도 했다.
[2000년대] 시상식 제도 속속 폐지...김종국 마지막 대상 3관왕
▲ 김종국 (2005년 KBS가요대상) 장나라 (2002년 KBS가요대상) ⓒ KBS
2000년대 초반의 지상파 3사 가요 시상식은 말 그대로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god(2000~2001년, KBS), 이수영(2003~2004년, MBC)을 제외하면 2년 연속 대상 수상자가 등장하지 않을 만큼 매년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조성모, 이효리, 신화, 장나라 등 다양한 가수들이 최고 영예를 차지하면서 쉴틈없이 대상 트로피 주인공이 바뀌었다.
반면 199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각 가수별 팬덤들의 기싸움도 뜨거워지면서 시상식을 둘러싼 온갖불협화음 또한 극에 달했다. 최고인기가수상, 인기가요상 선정을 위한 문자 및 인터넷 팬투표는 과열 양상을 보이기 일쑤였다. 결국 2005년 MBC와 KBS, 2006년 SBS를 끝으로 방송사 가요상은 모두 폐지됐다.
한시적으로 KBS(2009~11,13년)가 최고인기가수를 선정하기도 했지만 오래 지속되진 않았고 현재와 같은 축제 및 연말 특집쇼로 궤도 수정이 이뤄진다. 결과적으로 2005년 김종국은 3사 가요상 대상을 동시에 석권한 마지막 가수가 되었다.
[2010년대 이후] 축제 방식으로 변화, 끊이지 않는 각종 사고 논란
▲ 방탄소년단 (2017 KBS가요대축제), 혹한 속 야외행사로 열린 2016 MBC가요대제전 ⓒ KBS, MBC
축제 형식으로 변화한 3사 연말 가요 특집 무대는 시상식 제도 폐지 외에 개최일에도 변화를 줬다. 오랜 기간 SBS는 29일, KBS는 30일, MBC는 31일 나란히 행사를 치렀지만 이젠 간격을 두고 열리고 있다. MBC만 신년 맞이 특집쇼 의미를 유지해 < MBC 가요대제전 >의 12월 31일 개최를 고수하는 데 반해 < KBS가요대축제 >, < SBS가요대전 >는 해마다 다른 날짜를 정해 공연을 열고 있다.
KBS가 여의도 대공개홀을 고수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 SBS 가요대전 >의 경우 코엑스, 고척돔, 일산 킨텍스 등 매년 다양한 장소를 선정해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반면 MBC는 일산 드림센터를 중심으로 상암동 공개홀, 기타 야외 무대(임진각, 영동대로) 등에서 2원·3원 생방송 형태로 차별화를 도모했다.
이런 방송사의 노력에도 불구, 해를 거듭할수록 예전 같지 않은 시청률·화제성을 고전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KBS만 하더라도 3사 역대 최저 시청률 (3%, 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할 만큼 과거의 영광과는 거리감 있는 모습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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