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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를 없애라' 그 시절 우리 형제의 완전범죄

군고구마와 할머니의 김치, 잊을 수 없는 연말의 맛

등록|2021.12.23 17:21 수정|2021.12.23 17:21

▲ 전라도 고흥에서 보낸 외할머니의 김장 김치 ⓒ 최원석


"오늘 김장했다. 아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시내 나가는 길에 택배로 부칠게. 내일 아마 도착할 거야. 맛있게 먹어."

"어, 외삼촌.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못 갔는데 번번이 챙겨주시고... 할머니께는 제가 따로 감사 인사 넣을게요."


외할머니께서 외가 가족들과 김장을 했나 보다. 이 추운데 김장하신다고 고생하셨을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의 김치를 보며 일전에 김장을 함께 하던 때가 기억이 났다.

나는 태어나 줄곧 외할머니의 김치를 먹어왔다. 그래서 어릴 적에 김치는 원래 외할머니께서 주시는 것인지 알았다. 그만큼 할머니의 김장을 받아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어머니 오시기 전에

지금 이 시기 내 월급도 이렇지만 그 시절의 용돈은 빛의 속도로 지갑을 스쳐갔다. 사고 싶은 것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그렇게 용돈이 모자라 고민하다가 수시 합격한 그해 겨울 방학에 결국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바로 친구들과 군고구마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세 명의 친구들은 서너 달을 모은 용돈을 우리의 첫 사업인 이 군고구마 판매에 모두 투자했다. 물론 내 용돈도 군고구마 통의 잉걸(불이 핀 숯덩이)처럼 모조리 하얗게 불태워졌다.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우리의 군고구마는 타버리기 일쑤였다. 적당히 잉걸들을 넣고 불 조절을 해야 하는데 경험이 없는 초보 셋이 이를 잘 해내기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고구마를 잘 구워야 팔기라도 하지, 처음 일주일은 타버린 고구마가 아까워 집으로 가져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머니한테 들키면 혼이 나고 당연히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될 테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퇴근하고 오시기 전에 먼저 먹어 치우는 완전 범죄를 해야 했다.

원래 이렇게 집안에서 나쁜 짓을 할 때면 동생의 참여가 필수다. 동생과 나는 군고구마를 함께 먹었다. 처음에는 먹을 만(?)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니 어머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 고구마들을 다 먹어 치우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고구마를 먹기 힘들던 순간 냉장고에 있던 김치가 눈에 들어왔다. 동생에게 김치랑 같이 먹어볼 것을 제안했다.
 

▲ 군고구마 모음, 주먹보다 큰 고구마는 잘라서 구웠다. ⓒ 조종안


동생과 함께 김치와 군고구마를 먹다 신세계를 발견했다. 겨울에 먹는 군고구마와 할머니 김치의 궁합은 진짜 환상이었다. 이후에는 아예 김치를 꺼내 놓고 함께 먹었다. 할머니의 김치가 이 시기를 버티게 했다. 동생은 이때를 두고 김치와 함께 군고구마를 원 없이 먹었던 시절이라며 김장 김치를 볼 때마다 이야기한다.

고구마 장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빌렸던 군고구마 통을 채 한 달이 되기 전에 반납했다. 남은 잉걸과 고구마를 군고구마 장사를 하시던 어느 할아버지께 요새 말로 무료 나눔을 했다.

이때 맛본 고구마와 김치가 내 동생과 나에게는 연말의 맛이다. 할머니의 김치가 오면 동생에게 나눠 주는데 이때마다 동생이 빼놓지 않고 군고구마를 사서 먹는 이유다. 동생에게 김치를 보내며 우리 부부도 군고구마를 사서 함께 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수야, 이번 주말에 집에 잠깐 들러. 할머니께서 김치 보냈더라. 네가 바쁘면 제수씨라도 들르시라고 그래. 가져가서 장인·장모님도 조금 드리고."

"어 알았어. 형. 고마워. 이번 김치도 고구마랑 수육이랑 해서 먹어야겠다. 아, 형, 군고구마 여기 편의점에서도 이제 팔더라. 군고구마를 이제는 편의점에서 구워주네. 하하. 세상 참 좋아졌지? 형 예전에 장사할 때 기억나네. 그때 참 지겹게 먹었는데. 그렇지?"


할머니 고맙습니다
 

▲ 동생이 편의점에서 고구마를 판다며 보내온 사진. ⓒ 최원석


군고구마 파는 분들을 길거리에서 뵙기가 어렵다. 우리 때의 이 연말의 맛을 지금의 아이들이 앞으로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예전처럼 군고구마 파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아기와 이 맛을 공유할 수 있게 말이다.

할머니의 김치가 도착했다. 김치가 도착했으니 동생의 말처럼 군고구마 판매를 한다는 편의점에 가야겠다. 외할머니께 감사 인사를 하러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번번이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으셨어요. 보내주신 김치 잘 먹겠습니다. 수육이랑 고구마 사 와서 아내와 함께 먹으려고요."

"그래. 김치는 그렇게 먹으면 더 맛이 나제. 고기랑 고구마랑 묵으면 더 맛이 있제. 맛있게 먹고 열심히 아가 키워야제잉. 아가, 잘 길러라잉. 잘 먹고들 건강해라잉. 건강이 최고제. 아가 걷는다미. 아따. 삼촌이 보여줘서 영상으로 다 보았제. 귀엽더라잉. 아가 잘 기르고 김치 맛있게 묵거라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추후 기자의 브런치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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