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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민중에게 희망의 글쓰기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 9] 일제의 모진 압제와 악랄한 시책에서 동포들을 지켜야 한다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소명

등록|2021.12.28 15:52 수정|2021.12.28 15:52

▲ 덕수궁 중명전 전시관 내부 중 을사늑약 재현 ⓒ 덕수궁관리소 제공


박동완은 이같은 참담한 식민지 현실에서, 방황하는 민중들에게 정신적인 의지처가 되고 희망을 찾는 길이 곧 신앙이고 그 길을 인도하는 역할이라 믿고 <기독신보>를 비롯, <신생명>, <한인 기독교보>, <별건곤> 등에 여러 장르에 걸쳐 많은 글을 썼다. 일제의 모진 압제와 악랄한 시책에서 동포들을 지켜야 한다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소명이었다.

같은 매체에 동일 명의로 쓰기 어려울 때이면 근(槿)ㆍ근생(槿生)ㆍ근곡생(槿谷生)ㆍㅂㆍㄷㆍㅇㆍ싱 등의 필명을 사용하였다. 무궁화를 아끼는 마음은 필명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교회신문 역사상 발행기간이 가장 길었고, 그만큼 영향력이 컸던 <기독신보>는 그의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한 연구가의 이 신문에 대한 평가다.

조선 전후기 연구의 기본 사료를 <조선왕조실록>, <일성록>이라 한다면 기독신보는 한국 교회사 연구에 일차 사료가 되며 한국 기독교 100년의 뿌리를 확인하는데 필수 자료가 될 것이다.… 아무튼 기독신보는 일제하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한국 교회가 발간한 주간 신문으로 이 신문을 자료로서 이용하지 않고서는 당시의 한국 사회, 기독교 교회의 상황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기독신보는 당시 한국 교회에 대한 실상과 기독교 지식인들이 처한 고민과 시각을 아울러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 믿어지며(…) (주석 4)

조선총독부(1911)경복궁 전각을 헐어 1926년 총독부 신청사가 들어서기 전까지 식민지배 본산이던 총독부는 남산 자락에 있었음. 당초엔 조선통감부 청사였음. ⓒ 서울역사아카이브


박동완이 민중들의 설움과 아픔을 달래주는 글 몇 편을 소개한다.

                      추색(秋色) - 가을빛

꽃과 같이 사랑을 받을 청년들아 그대들은 이 우주 사이에서 그대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와 거짓 사랑하는 자기 있는 것을 깨달았는가? 꾀꼬리 같이 벗 찾는 자의 소리가 있는 것을 들었는가?

머리에 기름을 반지르하게 바르고 얼굴에 분을 횟바가지 같이 입히고 청루에 높이 안겨 먹고 마시기를 권하는 것이 그대들을 돕듯이 사랑하는 듯 하나 이것이 참사랑이 아니라 패가망신 시키는 사랑이며(…) 그런즉 이 세상에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며 참으로 붙드는 자가 누구인가. 곧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희생시킨 예수 아닌가.(…)

우리가 참사랑을 받고 참 붙드심을 입으려 하면 그 지나가는 길이 심히 험하고 그 책임이 매우 중하여 능히 감당하기가 어려우나 그러나 만일 예수께서 자기의 생명을 버리도록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생각하면 어찌 어려움이 있으리오.

그런즉 우리가 그 사랑을 받고 그 붙으심을 입고 이 세상을 지나가려면 삼복의 고열보다도 더 괴로울 것이며 엄동의 맹렬한 바람보다도 더 견디기 어려운 시험을 당할지나 가을같이 서늘한 때를 만날 수가 있으며 봄 같이 화려한 동산에서 기쁜 날을 당할 때가 멀지 아니하리니 제군은 이 세상 헛된 사랑에 빠져서 허영심을 좇지 않고(…) 사랑을 주시니 끝까지 믿고 이 세상의 어두움을 면하고 광명한 주의 빛 아래 평안한 복을 누릴 지어다.(현대문 정리)

박동완은 향락에 빠진 청년들에게 허영심을 쫓지 말라고 격려하면서, 화려한 동산에 기쁜 날을 맞을 때가 멀지 않다고 당부한다. 직설적인 표현이 금제된 식민지 청년들에게 은유적으로 민족해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주석 5)

                                    사조(祠藻)

 一. 연연히 피어 상받던
       붉은 꽃도 가는 비 부는 동풍
         사정 없이 부딪펴 내리닛가
           불과 열흘 다 못되어
             분분이 떨어졌고나
                 불지 말아

 二. 솔로몬의 영화로도
      들어선 백합꽃만 못하였고
        골리앗의 자랑하던 용맹도
          다윗의 물매 돌 하나로
             쳐이 괴여 멸하였도다
               조급말라

三. 부운 같은 인생으로
     이 세상을 춘몽속에 보내어
        뜬 구름과 흐르는 물 같은
          색스에 춤같이 취하야
             깨지못하는 인생들아
               목덕하라

四. 검은 구름이 아무리
     붉은 햇빛을 가리울지라도
     광풍이 일어나 맹렬히 불면
        검은 구름 쫓겨가고
          붉은 햇빛 다시 온다
            낙심 말라

五. 욕정이 비록 영혼을
     유혹하여 해롭게 할지라도
       성신이 광풍같이 임하샤
         마음을 씻어 정케하면
           새 생명 다시 얻는다
             소망 있다. (주석 6) (현대문 정리)

위의 사조는 내용도 인상적이지만 본 사조를 <기독신보>에 실을 때 글자의 배열 방식을 종횡으로만 배열한 것이 아니라 조합된 글자들이 위로 향하는 화살표 모양으로 배열함으로써 소망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각적으로도 디자인의 요소가 가미된 이러한 표현 방식은 당시에도 획기적인 편집이라 볼 수 있다. 절대적 절망의 시기였던 일제강점기 1916년 그의 '사조'라는 시에서 자연과 인생을 대비함으로써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하여 민족의 희망을 노래하였다. (주석 7)


주석
4> 서광일, <기독신보의 사료적 가치>, 박재상ㆍ임미선의 앞의 책, 112쪽, 재인용.
5> <기독신보>, 1916년 8월 30일.
6> 같은 신문, 1916년 6월 7일.
7> 박재상, 임미선, 앞의 책, 12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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