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한국사회는 남성생계부양자-여성돌봄전담자 이데올로기로 성별 역할 분리가 강화되고, 노동자들은 자기 돌봄과 가족 돌봄을 외면하거나 여성의 독박 돌봄 노동에 의지하고 있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구축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대량 폐기로 인한 심각한 기후 위기를 마주하였기에, 4회 페미노동아카데미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강의를 진행하였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돌봄이란 삶에서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작스레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이란 다른 한 편으로는 늘 일상에 붙어있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삶의 어떤 순간에는 아프기도 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돌봄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돌봄은 늘 비일상적이고, 궂은 일, 험한 일로 인식되는 한편,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이상한 일이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아픈 순간,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 순간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을 잘 상상하지 못한다. 일상에 붙어있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돌봄은 왜 정치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공동의 일로 여겨지지 못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갖고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제 4회 페미노동아카데미를 듣게 되었다. 가족과 돌봄, 그리고 그 대안에 대한 구조적인 고민들이 이어진 강의였다.
'가족주의'의 발전, 규범화된 '정상가족'
첫 번째 강의는 홍찬숙 선생님의 <한국의 노동시장 가족주의와 돌봄노동의 의제화>라는 강의였다. 한국의 노동시장 가족주의가 성립한 배경을 설명하는 첫 강은, 돌봄 문제의 기반이 되는 한국의 가족주의 성립 배경을 서구의 공·사 개념과 대비시켜 비교하며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강의였다.
서구의 근대적인 공사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모델을 기초로 한다. 이러한 구분 아래 개인 소유자인 시민의 가족, 경제생활은 곧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며, 개인들의 이익 조정은 '공'적인 영역으로 이해된다. 이에 반해, 한국의 공·사 구분은 공동체의 의리(효)와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악)으로 나뉜다. 사대부의 내외규범 역시 집안 살림과 정치로 나뉘는데 이때의 정치는 도덕적 관념의 공동선이라 할 수 있다. 즉, 개인의 권리보다는 집단의 도덕적 관념이 중시되고 가족은 정치로부터 대척점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이후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서구의 공·사 분리는 한국의 집단주의적 속성과 결합되고, 사대부에 한정되어있던 가족주의는 사회 일반적인 규범으로서 전 영역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거친다.
3강, 석재은 선생님의 <비혼 딸의 부모 돌봄 경험이 말하는 것들>은 좀 더 세부화된 가족 내 돌봄의 문제와 돌봄 공백의 문제를 다룬다. 국가가 지지하며 유지되는 가족주의는 구체적인 삶에서 돌봄 전가로 드러난다. 국가는 돌봄 친밀성의 책임과 역할을 가족에게 전가하고, 이렇게 전가된 돌봄의 역할은 이성애 가족 내에서 가부장적 질서에 따라 여성의 일로 여겨지게 된다. 사적 영역인 가족 내에서 행하는 돌봄은 공적 담론으로 포섭할만한 것이 아닌, 평가 절하된 여성의 도덕적 의무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규범은 필연적으로 현실과의 괴리로 인한 돌봄 공백을 낳으며, 이러한 돌봄 공백으로 인해 생겨나는 노동, 주거 등의 불평등은 차별로 이어진다, 이에 국가는 잔여적 복지를 통해 '정상 가족'으로의 복귀를 강요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 <2021 페미노동아카데미 시즌4> 박이은실 - 기후위기와 기본소득 80만원 강의 사진. 자본주의사회의 '성장'은 여성에게 전가된 돌봄노동에 기대고 있으며, 이윤창출을 위해선 자원을 무상으로 호명하여 사용한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니즘과 탈성장
강의가 이어질수록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서 물고 물리며 발생하는 촘촘한 착취의 구조들을 낱낱이 살펴보고 다른 사회로의 전환을 기대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2강 백영경 선생님의 <탈성장 전환의 요구와 돌봄이라는 화두> 강의와, 4강, 박이은실 선생님의 <기후위기와 기본소득 80만원>은 이러한 단초를 제시하는 강의들이었다.
돌봄의 전담자 역할을 떠맡는 비혼여성은 부모 간병을 독박하고, 노동시장에서의 기혼여성은 배제되거나 차별받는다. 돌봄이 가족의 일로 전가되며 정상가족 밖의 존재들은 격리되고 감금되거나 잊혀진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돌봄 공백과 이에 부산되는 차별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돌봄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반증이다. 돌봄은 재생산노동으로 산출되는 상품이 없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일반적 가치 체계로 판정하기가 어렵다. 또한, 돌봄은 그 자체로 관계, 공존의 노동이기에 성장주의와 어긋나며 대안 노동으로의 가능성을 지닌다. 따라서 돌봄을 중심으로 두고 경제체계를 재편하는 것은 탈성장과 연결되는 고민을 던진다.
돌봄을 중심으로 경제체계를 재편한다는 것은 영속적 성장을 필요로 하는 사회구조인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존엄과 형평, 공존과 연대를 통해 삶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상상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 것이다. 탈성장 사회로의 변화에는 무엇보다 협력적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돌봄과 상생의 경제로의 전환은 지금과 같이 누군가에게 전가되는 돌봄이 아닌, 시민적 책무로서의 돌봄에 대한 전 사회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 독박이 아닌 협력적 체계를 통해, 시민들에게 존엄한 방식으로 돌봄이 제공되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대안은 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어가야 하는 고민인 것이다.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돌봄을 주고받는 삶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의 전희경은 현재의 정치체계와 경제체계가 '몸에 대한 통제'에 기반하여 성립되고 지탱된다고 한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돌봄이 필요하다는 통념, 돌봄을 받는 사람은 돌보지 않는다는 통념은 독립과 의존을 이분법적으로 가른다. 국가 성장과 규율을 위해 가족은 동원되었고, 여성은 독립의 책임을 전임하였다. 그러나 돌봄이 필요 없는 인간이란 지배체제를 지속시키는 허구적 프레임이다. 허구의 과정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강의를 통해 알 수 있었고, '존재'가 아닌 '쓸모'가 중심인 사회에서 어떻게 우리는 존엄과 권리를 놓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듣는 시간이었다. 강의 수강을 마친 지금, 나는 강의의 내용을 토대로 어떻게 구체적인 삶에서 존엄한 돌봄을 실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나와 내 곁에 친구들과 나의 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직시하며 존엄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지 이를 위한 나의 역할은 무엇일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그 시작으로 돌봄 이슈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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