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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장애를 '개인 문제'라고 여기는 당신이 놓친 것

[인터뷰] 치유에세이 <또, 먹어버렸습니다> 저자 김윤아 식이장애 전문 상담사

등록|2021.12.27 09:54 수정|2021.12.27 14:28

▲ 지난 27일 오후 나를 만나는 시간 상담센터에서 김윤아 식이장애 전문상담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신서윤, 이윤주


최근에 무언가를 먹거나 먹지 않은 경험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싫어하는 음식이라서, 배가 불러서... 그리고 이 대답 중엔 '다이어트 중이라서'도 있을 것이다.
 
"다이어트에 이렇게 목매는 이유는 사실 사회적으로 다이어트가 하나의 성취 수단이 되어서 그렇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되게  많이 하는 것 같고요. 한국 사회에서 이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생각을 하고, 특히 여성분들한테 그 압력이 훨씬 더 많이 가해진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11월 27일 '나를 만나는 시간' 심리상담센터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김윤아 상담사가 한 말이다. 김윤아씨는 식이장애 전문 상담사로, 자신의 식이장애 경험과 상담 내용을 재구성해 담은 심리 치유 에세이 <또, 먹어버렸습니다>(2021)를 출판하였다. 이를 통해 알게 모르게 식이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전하고, 식이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다.

현재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가? 하고 있다면 왜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주변의 시선 때문에, 가족의 말 때문에, 혹은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그 자기만족의 기준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이어트, 그리고 이로 인한 식이장애가 과연 온전히 '나'에 대한 개인적인 문제일지, 아니면 사회적인 문제일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몸'에 대한 사소한 말 한마디가 낳는 결과
 
"학교에서 5주간 영국으로 해외연수를 갔다 온 경험이 있어요. 그전에 다이어트를 했었던 상태라서 돌아왔을 때 체중이 5kg 늘어있었는데, 공항에서 어머니가 저를 보자마자  "어머, 너 왜 이렇게 살이 쪘어"라고 말씀하셔서 충격을 받고 다이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 3학년 때까지 6~7년 정도 식이장애를 겪었어요."

김윤아 상담사는 약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식이장애를 겪었으나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어트의 계기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였다.
 

▲ 다이어트 관련 설문조사 통계 ⓒ 신서윤, 이윤주


실제로 아시안뷰티학술지에 따르면 다이어트에 영향을 준 사람으로 '나 자신'이 164명(61.4%)으로 과반수를 차지하였으며, '이성 친구/배우자/가족'이 71명(26.6%)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스스로 날씬하지 못하다고 느끼거나, 주변인의 말을 듣고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또한, 엠브레인이 전국 거주 만 13세 이상 남녀 1050명을 대상으로 벌인 2017년의 조사 결과에서, 전체 응답자 중 77%가 최근 1년 이내에 다이어트를 시도한 적이 있고, 81%는 체중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사회적으로 '날씬함'이라는 가치는 매우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너무나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으로 다가와 주변 사람에게 관련된 말을 꺼내 영향을 주기에 매우 쉬운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요즘 살이 좀 올라서 좋아 보이네"라는 인사말, "살 빠지니까 사람이 달라 보이네"라는 사소한 칭찬도 상대방에게 다이어트의 동기가 되고, 그 다이어트가 심해져 식이장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몸'에 대한 말이 이런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유효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듯 닮은 다이어트와 식이장애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 식이장애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식이장애의 시작은 무조건 다이어트가 맞아요.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점점 다이어트가 내 삶에서 엄청나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고, 내가 다이어트를 하지 않거나 날씬한 몸이 아니면 스스로 가치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이렇게 내 일상 및 가치의 많은 부분을 다이어트나 음식이 차지하는 순간, 식이장애로 빠지기가 굉장히 쉽죠. 그래서 다이어트와 식이장애를 다르게 구분 짓는 경계는 '내가 어느 정도로 다이어트에 비중을 두고, 내 가치를 어느 곳에 두는지'가 아닐까요."

많은 사람의 삶에 '다이어트'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이어트가 모두 식이장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윤아 상담사의 말처럼 다이어트가 삶에서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수록 식이장애로 더 가까워지고 있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약 80%의 사람들이 체중조절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식이장애를 겪을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식이장애는 광적으로 몸매에 집착하는 일부 특이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는, 나 자신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질병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식이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2020년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식이장애 환자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이며, 2016년 2702명에서 2020년 4280명으로 5년 사이 약 6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진단받은 환자들을 기준으로 조사된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 증상을 겪는 사람 수와 증가 수치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함께 '조이는' 사람들, 프로아나
 "식이장애 및 거식증은 말 그대로 병의 진단명이지만, 프로아나는 병의 진단명이 아닌  '거식증처럼 마른 몸을 내가 지향하고 나는 그것을 원한다'라는 사람들의 모임, 어떤 하나의 단체행동 정도로 볼 수 있어서 용어 자체가 완전히 다르고요. (중략) 프로아나는 SNS에서 같이 방법도 공유하고, 서로 응원해 주고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사람이 소속감을 느끼게 되면 '그곳이 문제다, 틀리다'라고 생각하기 어려워요. 이미 그곳에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이미 내가 소속감을 느껴버리고, 그곳이 옳다고 생각되면 더 그렇죠. 더군다나 SNS라는 특성상 이러한 심리를 더 확고하게 만드는 성향이 강하니 프로아나는 자신이 프로아나임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말하고, 공유하고, 친구를 찾고, 그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되죠."
 

▲ '프로아나' 키워드 검색 결과 [사진=트위터 캡쳐] ⓒ 신서윤, 이윤주

 
'프로아나'란 찬성이라는 의미인 pro-에 거식증을 의미하는 용어인 에너렉시아(anorexia)를 합성한 신조어로, 거식증을 지향하고 지나칠 정도로 마른 몸을 추구하는 하나의 경향을 가리킨다. 프로아나는 주로 트위터, 틱톡과 같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해당 단어를 해시태그로 사용하며 '함께 조일(굶으며 살을 뺄)' 친구를 찾고 서로의 극단적 단식과 다이어트를 응원하고 있다.

프로아나를 SNS에 검색하면 '뼈말라', '씹뱉', '먹토' 등 다양한 내용이 필터링 없이 나타난다. 프로아나를 전혀 모르던 사람들도 검색 결과를 몇 분 보기만 하면 프로아나가 무엇을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렇듯 손쉽게 프로아나의 방법, 용어들을 접하여 관심을 갖게 된 후에는 소셜 미디어의 큐레이션과 같은 맞춤 추천 기능을 통해 관련 내용을 지속해서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다. 매우 공개적인 SNS를 통해 프로아나를 접하고 빠져드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지만, 한번 발을 들이고 난 후에는 관련된 내용에 지속해서 노출되어 벗어나기 어려운 폐쇄적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특히 SNS를 통한 소통 및 정보 공유가 보편적인 10, 20대 사이에서 이 현상은 더욱 더 빠르게 나타난다. '탈프아(프로아나) 했다가 다시 왔어요'라는 말과 같이 프로아나를 그만두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식으로든 그만두었다가도 타자만 몇 번 치면 손쉽게 다시 함께 프로아나를 할 친구들과 환경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로서의 식이장애
 "한국 사회에서는 누구나 다이어트를 하라고 말해서 이제 다이어트는 어떤 하나의 기준이 되어 큰 압력으로 다가오잖아요. 적당히 하는 건 괜찮다고 말하면서 식욕억제제 같은 약을 먹으면  '그런 것까지 먹어야 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말이 악영향을 많이 미치고 있죠. 사회에서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을 줘놓고 오히려 압박대로 따르면 유난스럽다고 하고… 그래서 식이장애에 걸린 분들이 힘들다고 얘기를 못 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까지 유난스럽게 다이어트를 하는 걸 알면 사람들이 비난할까 봐. 저는 이런 점들이 사람들을 훨씬 힘들게 한다고 보고, 그래서 식이장애는 사회적인 문제가 훨씬 더 크다고 생각을 해요."

우리는 모두 다이어트를 하고 있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고, 단식 혹은 초절식을 하고, 먹토와 씹뱉과 같은 방법으로 음식을 게워내는 사람들을 유난스럽고, 특이하며 그것을 개인의 의지와 선택의 탓이라고 판단하여 기괴한 눈초리로 보기 일쑤다.

그러나 날씬함이 가치 및 수단으로 작동하는 하는 사회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식이장애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만약 이 사회가 타인의 몸에 어떠한 잣대나 평가도 들이대지 않는다면, 외모에 대해 그 어떤 가치도 매기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래도 지금과 같이 수많은 사람이 서로 다이어트를 보편적인 경험으로 공유하며 조언하고, 날씬한 몸매를 위해 뼈가 보일 때까지 마르고자 하는 프로아나를 추구하고, 식욕억제제를 마구잡이로 처방하고 처방받는 등의 일이 존재할까?

이런 배경에서 김윤아 상담사는 식이장애를 겪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프로아나와 같은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사회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몸과 다이어트에 대한 이중적 잣대는 식이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더욱 움츠리게 하고 치료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식이장애라는 미로의 출구가 될 '인식의 변화'
 
"전 프로아나 자체가 더는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고 소위 말하는 음지에만 있었으면 합니다. 프로아나는 유튜브나 SNS가 발달한 지금 어린 청소년들이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저 또한 그렇게 접하여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프로아나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취재 중 만난 프로아나로 활동 중인 사람의 말.

식이장애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게 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으로 지속적인 언론 보도 및 노출이 있다. 최근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프로아나 및 마약성 식욕억제제의 무분별한 처방의 위험성을 보도하며 우리 사회의 엄격한 미의 기준 등을 다룬 바 있다. 그러나 영향력을 가진 이런 보도와 방송이 누군가에게는 식이장애 및 프로아나로 가는 입문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위험성 역시 존재한다.

실제로 취재 중 현재 SNS에서 프로아나로 활동 중인 한 사람으로부터 더는 프로아나가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공개적인 곳의 언급이나 보도가 없었으면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의견에 대해 김윤아 상담사에게 물었고 아래와 같은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제 내담자분들만 하더라도 식욕억제제가 방송에 나간 순간, 그 약이 대놓고 위험하다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저렇게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는 상담을 하고 있어서 아니라고 말릴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말릴 수 없는 불특정 다수한테는 분명히 그런 방송이 자극되어 시도로 이어질 수도 있잖아요. 저도 사실 이게 조금 어려운 부분이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어떠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차 위험성이 알려진다면 그러한 반응도 덜하지 않을까요."

식이장애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이를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도록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언론 보도와 노출이 필요하다. 그 과정 중에서 프로아나 혹은 극단적인 다이어트 방식을 접하게 되어 식이장애를 앓게 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유입된 사람들을 출구로 이끄는 것 또한 변화된 생각과 인식을 하게 된 주변인들과 사회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단순히 식이장애의 비정상적임과 기괴함을 말할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그리고 꾸준히 인식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식이장애라는 미로 안에서 헤매는, 미로 안에 갓 발을 들이게 된 사람들이 빠른 시일 내에 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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