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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죽어' 욕 들으며 버텼는데..." 울분 토한 코로나 병원 간호사

'파업' 군산의료원 지부, 청와대로 행진하며 "의료진 처우개선, 정부가 나서야"

등록|2021.12.28 17:50 수정|2021.12.28 17:54

▲ '전북 군산의료원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보건의료노조 투쟁 결의대회'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열렸다. ⓒ 권우성


"세상 처음 듣는 욕을 들으며 지냈어요. 핫도그 사다 주지 않으면 죽는다고 협박한 환자부터 '니가 대신 죽으라'고 욕하는 환자까지... 코로나 때문에 아파서 그렇다고, 답답해서 그렇다고 이해하며 버텼는데, 병원이 우리를 막 대하는 건 참을 수 없었어요."

군산의료원 코로나 병동에서 2년여간 일한 문세미(32) 간호사는 "병원과 교섭을 시도하고 농성을 하기도 했지만, 병원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병원의 약속을 더는 믿을 수 없었다"라고 파업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군산의료원 지부는 지난 17일 ▲의료인력 충원을 비롯해 ▲임금 체계 개편 ▲근로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코로나 전담병원의 파업은 군산의료원이 처음이다.

2년여 코로나 병동 지켰지만...
 

▲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열린 파업 집회 도중 기자와 인터뷰 중인 군산의료원 문세미 간호사. ⓒ 권우성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만난 문 간호사는 "코로나 확산세가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군산의료원의 의료진들이 '파업'을 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토로했다. 군산의료원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초부터 전담병원으로 지정, 전북지역 코로나 병상 중 20여%를 책임지고 있는 감염병 전담병원이다. 4년차인 문 간호사 역시 군산의료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초기부터 병동을 지켰다.

2020년 3월 대구에서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했을 때는 대구에서 온 환자들을 돌봤고, 올해 그리스·태국·필리핀 환자 등 외국인 환자들이 늘어났을 때는 손짓·발짓을 하며 확진자들의 증상을 확인했다. 치매 환자들이 폐기물 수거함에 대변을 보고 벽에 이를 묻혀 간호사들이 직접 치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CCTV가 없는 샤워실이나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환자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간호사들이었다. 확진자들을 돌보다 직원들이 코로나 확진을 받는 일도 상당했다.

문 간호사의 동료 심예람(26) 간호사가 그랬다. 군산의료원 코로나병동에서 일했던 심 간호사는 지난 1월 병동에서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발열증상이 있던 그는 자신이 일했던 코로나 병동에 28일여 간 입원했다. 치료 후 그는 다시 코로나 병동으로의 복귀를 택했다.

"코로나환자는 신규인력이 맡기에 한계가 있어요. 기본 2개월 이상 교육은 물론 위기 대응력을 배우는 최소 6개월의 숙련 기간이 필요해 혼자 환자를 담당하려면 기본 1년이 필요해요. 그러니 신규인력보다 제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코로나 확진 후 이미 항체도 생겼을 테니 다른 동료보다 제가 일하는 게 안전하기도 했고요."

심 간호사는 "확진자가 늘어날 때마다 체력적으로 힘든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쩌겠나. 환자들을 돌보는 게 내 일인데"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이들이 파업을 결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심 간호사는 "간호 인력의 피로도 누적을 비롯해 군산의료원이 약속했던 처우개선 등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전북 지역의 코로나 병상은 군산의료원과 남원의료원 두 곳에서 맡고 있다. 이들 의료진은 현장뿐 아니라 생활치료센터와 재택 치료센터까지 책임진다. 하지만 공공병원의 인력은 2년여째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군산의료원 지부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코로나 환자를 책임지는 국립대병원에 2022년 3753명을 증원해달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라면서 "한시 인력(433명)을 뺀 실질적 증원 수는 929명 정도"라고 지적했다.
 

▲ '전북 군산의료원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보건의료노조 투쟁 결의대회'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열렸다. ⓒ 권우성


처우개선도 의료인력들의 오래된 요구다. 군산의료원은 1998년부터 16년간 원광대병원의 위·수탁 경영 체제를 유지하다 2014년 전라북도 직영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임금체계는 바뀌지 않았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결정적 이유다. 민 간호사는 "다른 지방의료원과 같은 임금·직제로 개편해 적용하는 등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군산의료원은 올해 100억 원에 달하는 흑자를 냈고, 지난 3년간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군산의료원측은 2020년 노사합의로 임금·직제개편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 간호사는 "지난 25일 크리스마스에 병원측과 노조가 교섭을 진행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노사 합의가 이뤄지길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병원은 또 다시 의료진들에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기다려달라는 요구만 하고 있다"라면서 "더는 병원측의 약속을 신뢰할 수 없었다"라고 하소연했다.

"코로나 장기전 대비하려면, 정부가 나서야"

파업을 시작한 지 12일째인 28일, 결국 이 두 명의 간호사를 포함한 군산의료원 지부 조합원 190여명 중 대부분이 서울로 상경해 군산의료원과 운영주체인 전라북도을 향해 "처우개선 약속을 지키라"고 외쳤다. 이날 이들을 포함한 보건의료노조 소속 노동자 250여 명(노조 추산)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결의대회'를 연 뒤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결의대회에 함께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군산의료원은 '노조 파업으로 인한 코로나 치료와 진료 차질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병동 규모를 축소하는 등 응급의료 기능을 포기하고 있다"라며 "코로나 장기전 준비의 핵심은 의료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언제까지 의료진들의 희생으로 코로나 대응을 이어갈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전북 군산의료원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보건의료노조 투쟁 결의대회'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열렸다. ⓒ 권우성


27일 전북도청에 따르면, 코로나 전담 병원인 군산의료원이 운영하던 병상은 지부의 파업 영향으로 198개에서 130개로 축소됐다. 하지만 군산의료원은 여전히 "처우개선이 쉽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여 년 유지된 임금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려우니 협의 기간을 연장해 충분히 논의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심 간호사는 "올해 한꺼번에 급여체계를 맞춰달라는 게 아니다. 수당을 낮추더라도 기본급을 인상하는 등 단계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라면서 "병원에 남아있는 동료 간호사, 환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렵고 힘들지만 얼른 코로나병동으로 돌아가 내 할 일을 하고 싶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군산의료원의 일방적 행태에 개입해 조율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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