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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이 그렇게 이상한 겁니까

고성방가와는 다른 혼잣말, 혼자 사는 사람에겐 또 하나의 습관이기도 합니다

등록|2022.01.01 12:07 수정|2022.01.01 12:07

▲ 혼자 산다는 것. ⓒ pexels


사람이 혼자 살면, 누가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생활이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좋지 않은 생활습관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끼니를 자주 거른다든가, 몸을 자주 씻지 않는다든가, 혹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 등입니다.

위에 열거된 것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나쁜 습관들입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이런 습관들은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라 당사자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마음만 굳게 먹으면 고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주 고약한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흔히 있는 습관 중에 본인이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은밀한 습관 말입니다. 바로 '혼잣말하는 습관'입니다.

혼자 살다보면 대개 혼잣말을 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혼잣말을 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 말고는 말을 붙일 상대가 없으니까요.

혼자 사는 사람의 경우, 본인은 혼잣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평소 혼잣말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혼자 사는 독자라면 시간을 내서 한번 세어보십시길 권합니다. 하루에 혼잣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긴 몰라도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혼잣말이 습관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주 오래 전부터 혼잣말을 했습니다. 제게는 학창시절부터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저는 체구가 왜소합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도 작습니다.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친구들이 못 알아들을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이럴 때면 제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갈 곳을 찾지 못해 허공을 맴돌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말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다 결국 저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 가면 입을 열지 못하게 됐습니다. 친구들이 또 아무 반응이 없으면 어쩌나싶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아마 이때부터 제가 혼잣말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혼잣말은 참 좋은 것이었습니다. 혼잣말에는 좋은 점이 세 가지나 있었습니다. 혼잣말을 하면 기가 죽어 초점이 사라진 눈동자를 힘없이 껌벅이며 상대방의 반응을 살필 필요가 없었고, 바짝 마른 입술을 애처롭게 달싹거리며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허공을 맴도는 자신의 말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할 일도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이래저래 저는 점점 혼잣말을 자주하게 됐고, 결국 혼잣말이 습관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나이 50이 넘어 혼자 살면서부터는 혼잣말이 아주 입에 붙어버렸습니다.

마트에서 벌어진 일

그러던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날 마트에서 이리저리 피자를 뒤적거리던 저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내용은 대략 '피자는 값싸고 맛있는 게 좋다. 그러니 일단 싼 걸로 사야 한다. 맛이야 어차피 배고프면 다 맛있으니까.'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용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는 말이었죠.

그런데 마트에 있던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키득거리며 웃고,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때 참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밖에 나가면 혹시라도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할까봐 무척 조심합니다. 제 경험을 반추해보니 어떤 생각에 깊이 빠져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불쑥 혼잣말이 나오더군요. 그때문에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아무 생각도 안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독자님들은 소리 내어 하는 혼잣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게 정말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게 정말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소리 내어 하는 혼잣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소리 내어 하는 혼잣말은 사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주변을 짜증나게 하는 고성방가와는 다르니까요.

예전 우리 사회는 혼밥이나 혼술을 좀 이상한(?)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왜 혼자 밥을 먹니?'라는 말을 들었거나 해본 적이 한두 번은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혼밥이나 혼술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게 됐습니다.

혼밥·혼술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혼잣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소리 내어 하는 혼잣말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져야 하지 않을까요? 혼잣말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고, 혼잣말하는 사람을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으로 쳐다보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몇 년째 혼자 살면서 소리 내어 혼잣말을 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혼잣말은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혼잣말은 가령 어려움에 처한 어떤 사람이 마음 속 고통을 혼잣말로 토해냄으로써 고통을 줄이기도 합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사회적인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의 수가 늘어납니다. 제 경험상, 혼자 사는 사람은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생기곤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들에게 소리 내어 혼잣말할 자유를 너그러이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홀로 사는 누군가에게 혼잣말은 삶의 동반자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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