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노모, 이유가 서글픕니다
요양원에 보낼까봐... 뇌경색과 치매 앓는 어머니의 애원이 담긴 그 말
▲ 손자 손 잡고있는 어머니침대에서 손자 손 잡고 있는 어머니 손을 잡으면 잘 놓으려 하지 않으신다. ⓒ 홍병희
"왜 맨날 나를 보면 좋다, 사랑한다 말해? 어디 보낼까 봐?" 모친은 그 말에 떨리는 눈동자로 "응"이라 대답하며 웃었다. 마음속 깊은 비밀 들킨 마냥 겸연쩍은 미소였다.
모친 뇌경색 발병하고 좌편 마비 심해져 의사는 재활이 시급하다고 했다. 보호자 상주 입원 치료 어렵다고 하니 공동 간병인이 있는 재활병원 찾아보라고 했다. 수소문해 가까운 재활병원 입원시켜드렸다.
한 달 가까이 옆에서 간병하다 낯선 병실 홀로 남겨두고 나올 때 모친은 내 손 잡고 "나 혼자 있으라고?" 하며 물었다. "빨리 치료받고 집에 모실게요". 손을 밀어내고 나오니,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치는 불효자가 된 것 같았다
2주에 한번 면회에 갈 때마다 "제발 나를 데려가라"고 말했다. "하루도 여기 못 있겠다"라고 가족들 이름 부르며 살려 달라고 했다. 당시 뇌경색 좌편 마비 안정화 전이라 자주 넘어지고 침대에서 몇 번 떨어졌단다. 화장실에 모시고 가다 여기저기 멍든 걸 보았다. 병원 측에 항의해봤지만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고맙게도 가까운 주간보호 센터에서 낮 시간 돌봄을 받게 된 것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침에 휠체어로 모셔다 드리고 5시쯤 모시고 온다. 침대에 눕혀드리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아빠 좋아, 사랑해"라는 말이다(치매 진행되며 어느 순간 아들인 나를 아빠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한번 잡으면 꼭 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손을 놔야 도와드릴 수 있는데, 손을 놓지 않으니 번번이 잡고 뿌리치고를 반복한다.
치매 전엔 사랑한단 표현을 거의 한 적이 없으니 나는 이 말이 그동안 하지 못한 아들에 대한 애정의 말이라 여겼다. 아마 맞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그게 다가 아닐 거란 생각이 툭 머리를 치고 들어왔다.
아이 수준 사고로 퇴화된 그 마음에 혹시 어디 보내거나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 아닐까? 손을 잡고 놓지 않는 건 발병 초기 재활 병원서 겪은 기억 강렬해서 그런 것 아닐까? 가족과 격리되고 싶지 않은 애절한 매달림 아닐까?
여동생은 '엄마가 애교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이 가족들에게 잘 보이려는 몸부림,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 생존 본능인 건가? 이런 생각이 드니 가슴이 저리고 답답하다.
누구나 두렵다, 고독이
아마 요양원에 가게 되면 전문가의 돌봄 받아 더 나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가족 면회가 용이하지 않은 코로나 상황, 떨어져 지내는 고독과 두려움 자체가 더 큰 병일 수 있다. 처음 주간 보호 센터장과 상담할 때 요양원 입주를 권유받으며 어느 정도 기간 지나면 포기하고 이곳을 내 집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 말에 감정 이입되어 슬프게 들렸다.
어제 직접 여쭈어봤다. "왜 날 좋다고, 사랑한다고 하는 거냐. 요양원 보낼까 봐 그런 거냐"고. "그렇다"고 웃으며 답했다. 늘 찡그린 표정이라 웃는 걸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억지 미소 지은 그 1~2초의 짧은 순간, 심장에서 쿵 소리가 났다. '아 이게 진심이었나?'
모친의 뇌경색과 치매 시작된 지 10개월째가 되어간다. 처음에는 모든 게 서툴렀다. 전동 침대 내리다 산 지 2주 된 노트북 액정 박살 나고, 변기 앉히다 바닥에 주저앉기도 여러 번. 삼키는 기능이 마비돼 입에 계속 퍼 넣은 음식 꺼내다 깨물리기도 했다. 이제야 조금 익숙해졌지만 결국 언젠가는 전문 요양원으로 가야할 날 올 것이다.
황소를 맨손으로 때려잡던 극진공수도 창시자 최배달은 고독과 배고픔이 제일 두렵다고 했다. 노화와 노인 병, 인간 모두에게 시간 차로 찾아오는 문제이다. 나 역시 뒤따라가는 길이다. 역지사지로 보면 나도 두렵다, 고독이.
오늘도 주간보호 센터 다녀와서 모친은 내게 사랑한다 말했다. 마음으로 귀 기울이면 그 뒤 계속 이어지는 말 들린다
"사랑하니 나를 버리지 말라"고, "외로운 거 싫다"고, "너도 사랑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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