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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조차 액세서리로... '돈 룩 업'이 보여준 정치과잉 시대

[리뷰] 영화 <돈 룩 업>... 애덤 맥케이표 블랙 코미디, 이번에도 유효

등록|2022.01.04 17:12 수정|2022.01.04 17:12

▲ '돈 룩 업'의 스틸컷 ⓒ 넷플릭스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애덤 맥케이 감독은 오늘날 미국 자유주의자(리버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블랙 코미디를 만드는 사람이다. SNL(Saturday Night Live)의 작가 출신인 그는 현실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씁쓸한 웃음을 만드는 장인이다. 금융 자본주의의 파탄을 논한 <빅쇼트>(2015)가 첫 번째였다. 네오콘의 수장인 딕 체니 전 부통령을 그린 <바이스>(2018)는 애덤 맥케이의 지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히 했고, 전기 영화의 문법 자체를 통렬하게 비틀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맥케이의 신작 <돈 룩 업> 이야기를 한다. 맥케이의 신작이 유독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첫 번째 이유는, 화려한 캐스팅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연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를 비롯, 메릴 스트립과 조나 힐, 타일러 페리, 케이트 블란쳇, 롭 모건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동세대 최고의 스타가 된 티모시 샬라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얼굴도 볼 수 있다. 수많은 배우들이 비중에 상관없이 각자의 몫을 확실히 하면서 웃음을 안긴다. 두 번째는 높은 접근성이다. 이 영화는 약 2주간 영화관에서 상영된 후, 크리스마스 연휴에 맞춰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세 번째는, 이 영화가 오늘날의 미국을 다루는 방식이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아마겟돈'이 아니다

천문학 교수인 랜달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천문학자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는 6개월 후 지구와 충돌하게 될 혜성을 발견한다. 지구가 멸망의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미국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을 찾아가지만, 그는 미래적 과제보다는 당장의 중간 선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 '돈 룩 업' 스틸컷 ⓒ 넷플릭스


어린 시절에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다. <에어포스 원>에서 테러리스트를 직접 무찌르던 해리슨 포드,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직접 전투기를 몰고 가 외계인과 맞섰던 빌 풀만, 그리고 이 영화의 메릴 스트립을 비교해보자. 혜성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는 사업가 피터(마크 라이언스 분)는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를 섞은 듯 기시감이 느껴진다. 론 펄먼이 연기한 애국 영웅의 모습에서는 <아마겟돈>이 떠오른다.

그러나 <돈 룩 업>에는 영웅이 없다. 대통령 뿐 아니라 기업가, 미디어, 대중, 세상 사람들은 혜성 충돌에 관심이 없다. 당장 팝스타의 가십과 스캔들이 더 흥미로울 뿐이다. 두 과학자는 시급한 위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세상에 분개하지만, 오히려 네티즌들은 케이트의 화난 얼굴을 밈(meme)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와중에 민디는 뜻밖의 섹시 아이콘이 되어 버리고, 우파 방송국의 아나운서와 불륜을 저지른다. 미국은 혜성 충돌에 대비하자는 사람들, 그리고 혜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 분열된다. 지구를 구하는 여정이 아니라, 전 지구적 위기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작품이다.

의도된 산만함, 위험사회에 둔감한 우리들
 

▲ '돈 룩 업'의 스틸컷 ⓒ 넷플릭스


<돈 룩 업>의 대본은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이 바이러스를 받아들이는 미국의 방식은 영화의 상상을 넘어섰다. 트럼프는 미국 전염병연구소 소장인 과학자 앤서니 파우치를 조롱했고, 살균제 주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백신에 대한 음모론이 활개를 쳤다.

결국 팬데믹 이후, 이 작품의 풍자는 더욱 미국의 오늘날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극대화되었다. 우리는 팬데믹 이전에도 영화 못지 않은 현실을 보았다. 미국 대통령이 나서 "미국에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 걸 보면 지구 온난화는 거짓말이다"라고 했고, 파리협정을 탈퇴했다. 폭스뉴스 등 우파 매체는 이 반지성주의에 힘을 보탰다.

그대로 대입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대선을 두 달 남짓 남겨 놓은 대한민국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경제, 환경, 사회문화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었고, 후보자 가족에 대한 가십이 선거판을 주도하지 않았나. '현실 가능성이 있다'는 이 영화의 슬로건은 마케팅을 위한 과장이 아니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심각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지만, 담론은 실종되었다.

<돈 룩 업>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SNL 작가였던 애덤 맥케이의 경력을 들어, 'SNL을 두 시간 짜리로 늘려놓은 것 같다'라는 혹평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산만함조차도 애덤 맥케이가 철저히 의도한 혼란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두 시간 동안 밈이 되기를 자처했으며, 2020년대의 미국적인 것에 대한 조소를 하기 위해 작정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합리성을 추구해온 인간의 도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역사를 끝장낼 수 있는 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지구적 위기조차도 액세서리가 되어 버리는 정치 과잉의 세상을 살고 있다.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웃었지만, 씁쓸한 여운이 맺힌다.

반성한다. 북극곰의 설 자리가 사라져간다는 소식이 안타깝긴 했지만, 몸으로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기후 관련 뉴스보다 국내 정치 뉴스에 관심이 더 많이 갔다. 나부터 돌아보아야겠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커디(Kid Cudi)가 부른 사운드트랙 'Don't Look Up'은 이 영화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친절하게 축약한다.

"망할 놈의 폭스 뉴스 좀 꺼봐" /
"권위있는 과학자들 이야기를 제발 들어봐. 우린 정말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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