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동에 대해 잘 이야기 하고 있는가?
시사인 전혜원 기자의 책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읽고
소설가 김훈은 전혜원 기자의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무엇이 정의인가?를 묻는 책이라 평한다. "무엇이 정의인가의 질문구조는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가 부딪히는 갈등의 현장 쪽으로 열려있다"는 김훈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노동 현장에서의 문제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쟁점들을 텍스트화 했다. 가령 플랫폼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나 쿠팡 같은 기업의 화려한 혁신 및 성장 이면의 그림자, 그리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선악의 이분법을 벗어난 노동기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작가의 말이다. 기자의 말이라고 해야 맞겠다. 기자가 목표로 했던 것처럼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다수 진보 언론이 표현하는 것처럼 피고용인인 노동자들을 '선', 고용인인 기업들을 '악'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을 피하면서, 어떤 형태의 공존이 기업과 노동자에게 유익한 것인지를 제시한다.
주간지 <시사 IN>을 꾸준히 읽는 독자라면 전혜원 기자의 글이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실제 전 기자가 취재하고 발행한 기사들을 수정 및 보완해 수록한 것 같다. 여러 자료들이나 통계, 그리고 참고 문헌들이 첨가되어 기사보다 풍부한 내용을 전달한다.
책을 펴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한국의 노동은 정상적인가?"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아니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경제규모는 세계 7위 수준에 도달했고, 국민 소득도 매우 높아졌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한강의 기적'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어도 현재까지 유지되는 듯하다.
근데 사람들이 죽는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죽는다. 여전히 일하다 죽는다. 기업은 성장하고 나라 경제는 성장하는데도 사는 것이 어려워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가진 자는 더욱 가져가고 가진 것 없는 자는 있는 것조차 빼앗긴다. 청년들은 모든 영역에 있어 공정할 것을 요구하지만, 똑같이 청년이면서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산업체에서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에는 눈 돌리지 않는다. 각자의 주관적인 공정만이 메아리처럼 맴돈다.
노동은 선하지 않고, 자본도 악하지 않다. 그러나 현대 한국사회에서 두 가치의 대립은 잘못됐다. 자본의 무분별한 추구로 인해 노동의 가치가 소외되는 것도 물론 안되지만, 막무가내로 노동의 가치만 주장하며 자본의 논리를 무시하는 것 또한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제 3의 영역이 필요하다.
전혜원 기자가 제시하는 제 3의 영역은 정치이다. 기자는 제시한 여러 쟁점에서 공통적으로 정치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선의 의미가 크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다 읽었을 무렵, 평택 공장단지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화재 진압을 시도하던 소방관 3명이 순직했다. 대선 후보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이재명 후보는 사고 당일 오후 일정을 취소했고, 윤석열 후보는 이준석 대표와의 극적인 화합이 연출된 의원총회 이후 이 대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평택 사고 현장에 조문을 위해 방문했다.
노동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러한 사고에 정치인이 즉각 반응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겠으나 이런 사고가 수십년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정치인들의 입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라는 상투적인 말만 반복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비극적이다. 정치인들의 반응은 단순히 현장을 방문하고 위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 가운데 존재하는 구조맹(構造盲)의 사회를 인식하고 개선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책의 제목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 어떤 주어를 붙이느냐에 따라 책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 '정치인들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기업가들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노동자들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그리고 '시민들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등이다.
독자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읽힌다. 많은 부분 동의할 수도 있고, 상당한 부분에 반감을 표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동에 대해 여전히 거론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다.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 드러나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다.
어떻든지 간에, 노동에 대한 담론이 지금보다는 더 활발해지고,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 자본의 논리, 이윤 추구 원리에 뒤처져 삶과 존재를 상실하는 사람만은 없는 노동 환경이 마련됨에 따라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과 같은 책들이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 사회를 소망해본다.
"선악의 이분법을 벗어난 노동기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 전혜원 기자의 책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서해문집
주간지 <시사 IN>을 꾸준히 읽는 독자라면 전혜원 기자의 글이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실제 전 기자가 취재하고 발행한 기사들을 수정 및 보완해 수록한 것 같다. 여러 자료들이나 통계, 그리고 참고 문헌들이 첨가되어 기사보다 풍부한 내용을 전달한다.
책을 펴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한국의 노동은 정상적인가?"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아니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경제규모는 세계 7위 수준에 도달했고, 국민 소득도 매우 높아졌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한강의 기적'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어도 현재까지 유지되는 듯하다.
근데 사람들이 죽는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죽는다. 여전히 일하다 죽는다. 기업은 성장하고 나라 경제는 성장하는데도 사는 것이 어려워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가진 자는 더욱 가져가고 가진 것 없는 자는 있는 것조차 빼앗긴다. 청년들은 모든 영역에 있어 공정할 것을 요구하지만, 똑같이 청년이면서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산업체에서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에는 눈 돌리지 않는다. 각자의 주관적인 공정만이 메아리처럼 맴돈다.
노동은 선하지 않고, 자본도 악하지 않다. 그러나 현대 한국사회에서 두 가치의 대립은 잘못됐다. 자본의 무분별한 추구로 인해 노동의 가치가 소외되는 것도 물론 안되지만, 막무가내로 노동의 가치만 주장하며 자본의 논리를 무시하는 것 또한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제 3의 영역이 필요하다.
전혜원 기자가 제시하는 제 3의 영역은 정치이다. 기자는 제시한 여러 쟁점에서 공통적으로 정치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선의 의미가 크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다 읽었을 무렵, 평택 공장단지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화재 진압을 시도하던 소방관 3명이 순직했다. 대선 후보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이재명 후보는 사고 당일 오후 일정을 취소했고, 윤석열 후보는 이준석 대표와의 극적인 화합이 연출된 의원총회 이후 이 대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평택 사고 현장에 조문을 위해 방문했다.
노동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러한 사고에 정치인이 즉각 반응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겠으나 이런 사고가 수십년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정치인들의 입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라는 상투적인 말만 반복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비극적이다. 정치인들의 반응은 단순히 현장을 방문하고 위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 가운데 존재하는 구조맹(構造盲)의 사회를 인식하고 개선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책의 제목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 어떤 주어를 붙이느냐에 따라 책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 '정치인들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기업가들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노동자들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그리고 '시민들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등이다.
독자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읽힌다. 많은 부분 동의할 수도 있고, 상당한 부분에 반감을 표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동에 대해 여전히 거론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다.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 드러나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다.
어떻든지 간에, 노동에 대한 담론이 지금보다는 더 활발해지고,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 자본의 논리, 이윤 추구 원리에 뒤처져 삶과 존재를 상실하는 사람만은 없는 노동 환경이 마련됨에 따라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과 같은 책들이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 사회를 소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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