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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난방열사'가 될 수는 없다

[2022대선 정책오픈마켓] 공동주택 관리비 문제 이제는 근절하자

등록|2022.01.17 13:31 수정|2022.01.17 15:45
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편집자말]

▲ 어렵게 찾아낸 수도계량기. 이게 뭐라고 그렇게 안 알려주려고 했을까? 지난 2017년 <중부일보>에 따르면, 평택시의 한 아파트는 수도요금을 세대당 월평균 5천 원씩 과다 부과해 조성한 2500만 원으로 수도배관 교체공사를 진행하다 감사에 적발되기도 했다. ⓒ 김나라


'진짜 미심쩍네.' 수도요금 문제로 아파트 입주자 대표와 통화를 마친 후 생각했다. 새 집에 이사 온 뒤로 몇 달간 수도요금이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동일 면적 대비로는 만 원 이상 차이가 났고, 전에 살던 집과 비교해 봐도 물을 더 많이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수도사업본부에 연락해서 집안 여기저기 누수 점검을 받았다. 그런데 수도계량기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연락하라고 했고, 일전엔 달변이던 회장은 이상할 정도로 말을 빙빙 돌렸다. 그럼 계량기가 멀리에 있는 거냐, 접근할 수 없게 돼 있는 거냐 물어도 알쏭달쏭한 답만 돌아왔다.

결국 서너 번 같은 질문을 한 끝에야 겨우 우리 집 바로 위인 '옥상'에 있다는 걸 알아냈지만, 상수도사업본부 직원에게 말하자 옥상은 검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수에 대한 생각은 접기로 했다.
       
대표와 그런 통화를 하고 나니, 누수가 아닌 비리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스스로 한 달간 계량기가 몇 미터 돌아갔는지 기록했다가,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홈페이지의 '요금시뮬레이션'을 이용해 계산해 봤다. 고지받은 수도요금과 비교하니 내 계산보다 약 5천 원 높게 청구된 걸 알 수 있었다. 과연 이걸 오차 범위 내로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당장 더 해볼 만한 일이 없었다.

관리비 관리, 소규모 공동주택은 어렵다

관리비 사용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 싶다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우리 아파트는 40여 가구밖에 안 되는 소규모 공동주택이다. 2020년 4월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되어 150가구 미만 공동주택은 입주자 및 사용자의 3분의 2 이상 동의하는 경우 '의무관리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의무관리대상이 되면 정기적으로 외부감사를 받는다. 공동주택 측에서 작성한 재무제표가 아파트 회계원칙에 맞게 작성된 것인지 외부 공인회계사가 확인하는 거다. 또 해당 주택이 K-apt 공동주택관리시스템에 등록되어 세부 정보를 공개하게 된다. 주민들은 이 시스템으로 구체적 사용 내역, 다른 단지와의 비교 결과, 세부항목 지역별 평균 등의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상한 점이 보일 때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300가구 이상의 대단지 아파트만 의무관리대상으로 삼던 법이 이렇게 바뀐 건, 소규모 공동주택이 관리에서 소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주자 입장에서는 이런 개정안의 실효성이 와닿지 않는다.

전 가구를 방문해 서면 동의를 구하는 일은 개인에게 큰 부담이다. 외부감사에 드는 돈을 세대별로 나누어 부담해야 하기에 필요한 일이지만, 작고 오래된 아파트는 관리사무소나 전체 공지 체계조차 없는 곳이 많다. 더구나 요즘처럼 면대면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방문이 두려운 사회 분위기에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상황을 설명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비혼 여성 등 1인 가구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소규모 공동주택은 익명성이 떨어져서 집단 내 갈등과 신변의 위험을 더 감수하게 된다. 또한 월세로 짧게는 1~2년, 전세로 길어야 4년 한 집에 사는 세입자, 사회 경험이 없는 청년층이라면 나서기는 더 애매하다.

국토교통부가 2014년부터 운영 중인 '공동주택 관리 비리 및 부실감리 신고센터'는 이 같은 상황을 보완한다고 볼 수 있다. 신고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참고인의 인적사항 또는 증거자료가 있다면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가 가능하다. 그러나 증거자료를 만들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시설 보수가 정말 필요한지 아닌지 등 주민들이 자세히 알기 어려운 사안이 대부분이고, 사용 내역 등은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월세 상한제가 낳은 조삼모사
 

▲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다세대 연립주택의 모습. 자료사진 ⓒ 연합뉴스


소규모 공동주택이 의무관리대상에서 벗어나 있어 생기는 문제는 그 외에도 더 있다. 현재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중 '전월세 상한제'에 따라 임대료는 직전 계약 임대료의 5% 내에서만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관리비는 법적으로 증액 제한이 없어서 소위 '제2의 월세'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

나 역시 몇 년 전 월세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외진 곳에 있는 낡고 좁은 투룸임에도 7~10만 원의 관리비를 요구하는 곳이 많아 놀랐는데, 집주인은 관리비를 깎아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월세가 싼 편이니 이 정도는 감수하라는 태도다. 일부 건물주들은 건물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하면서 다달이 5만 원 이상의 관리비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원룸 빌라에 사는 경우 부당한 관리비에 대응할 방편이 없다. 일반관리비, 청소비, 전기료, 잡수입 등 세부내역의 의무적 공개도 10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올리면 올리는 대로, 달라면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다.

현행법에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이상엽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간 동아>에 실린 기사에서 "원룸 건물은 크기와 가구 수가 각각 달라 법적으로 관리비 기준을 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건물주의 상식과 인품에만 맡길 일은 아니다.

각각의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면 전월세 상한액에 관리비를 포함하는 방안, 관리비 인상 이유를 적절히 고지하지 않은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원룸과 빌라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관리비 인상 근거를 서면으로 알리도록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추진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체가 나서 의무관리대상을 소규모 공동주택에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추진했으면 한다. 내 돈의 쓰임새를 지켜볼 권리, 부당한 인상이나 입주 시의 계약에 피해 입지 않을 권리는 공동주택의 형태에 따라 다르지 않다.

'속이면 걸리고 걸리면 끝이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도록

우리 아파트는 대부분 노년층이 거주하고 청장년층 가구는 몇 되지 않는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아무래도 우리 집이 물을 많이 쓰지 않겠냐며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좀 지켜봤거든. 젊은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서 어떤가 하고." 흘리듯 한 말이었지만 '내가 너희를 지켜보고 평가할 힘이 있다'는 암시를 느낄 수 있었다.

주민 대표에게까지 갑질을 당할 수는 없기에 나는 한 달을 더 기다려 볼 생각이다. 계량기 미터를 기록하고 같은 문제가 있다면 증거자료로 삼아 신고센터에 제출해 보려 한다. 하지만 이미 수도요금 문제로 여러 번 통화한 일이 있으니, 신고자 정보가 비공개로 유지될지언정 그게 나라는 건 쉬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큰 여력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갈등을 빚느니, 그깟 1~2년 돈 좀 더 내고 살까 싶기도 하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그런 이유로 대충 보아 넘기고 그런 무관심 속에서 비리는 계속되겠지만.

2014년, '난방열사'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나섰던 덕분에 아파트 관리비의 투명성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수년간 주민 간의 불화와 소송, 몸싸움에 휘말려야 했다. 사회는 누군가 나서야 바뀌게 마련이지만, 제도의 미비함을 개인이 큰 짐으로 떠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월세 공제 확대, 기본주택 제도 등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한 대선 공약을 눈여겨보고 있다. 굵직한 문제에 비하면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파값만 크게 올라도 국민생활이 삭막해지듯 관리비 문제도 국민의 일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사안이다. 꾸준히 적발되고 있는 회계감사 업체, 주택관리 업체와의 담합 등을 볼 때 일상 가장 가까이에서 비리가 양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전히 관리비는 공공연히 '눈먼 돈', '어쩔 수 없는 영역'으로 인식된다. 주택 규모에 관계없이 '속이면 걸리고 걸리면 끝이다'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도록 제도를 정비, 강화해야 한다. 세심한 개정안을 끌어낼 줄 아는 새 대통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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