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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살 청년 "제가 본 한국 사회는 정글이에요"

내가 만난 청년들 8

등록|2022.01.13 17:57 수정|2022.02.09 17:12
불평등한 사회, 청년들이 숨 쉴 틈 없는 현실입니다. 청년은 시대의 얼굴이 아닐까요. 청년들이 무엇에 분노하는가, 무엇에 웃고 열광하는가가 그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의 삶 속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청년들을 만납니다.

건조한 분석과 통계만으로는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다양한 삶과 고충을 전부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를 보는 청년들도 인터뷰하고 싶어요! 연락주세요! - 기자 말

 

▲ 승찬님이 활동하는 고생물학 동아리 '라거슈타트'의 활동이 담긴 책자 ⓒ 김명신


배운 것을 나누고 싶은 21살 대학생 이승찬님을 만났다. 지적 우월함이 아닌 서로의 지식과 배경을 존중하며 서로 배우는 것을 지향하는 청년이다. 창작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서 동아리 활동을 정돈한 책을 내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도 한다.

고생물학에 관심이 많아 고등학생 때부터 전국 동아리를 만들고 운영해왔다. 단체를 만들고 운영하며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신중하게 헤아려야 함을 깨달았다.

"대학에 오면 공부를 열심히 할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네요. (웃음) 경기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가 대학때문에 부산까지 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고생물학 공부를 위해 원하는 학과를 찾아 경기도에서 부산까지 내려온 이승찬님은 한국사회와 한국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청년으로서 한국사회를 한마디로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 정글이에요.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현대사회가 급변하는 사회라고 하잖아요. 미디어의 중심이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으로 옮겨가고, 대면활동이 온라인 비대면 활동으로 전환되고 있어요. 강의도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급변하는 정글 안에서 어떤 방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살아남기 위해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모두 고민해야 해요. 사소한 것부터 경제, 사회, 정치 등의 많은 부분이 빨리 바뀌니까요."

- '정글 같은 한국사회'를 구체적으로 경험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우리 사회에서 제가 가장 가혹하다고 느끼는 건 수능이에요. 많은 학생이 자기 행복을 희생해가며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사회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학생들을 몰아붙이잖아요.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고, 학생들이 공부하기 위해 대학을 가는 게 정상인데...

지금 사회는 대학을 일종의 자격이나 명예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학생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학생이 공부를 얼마나 잘 하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문화가 자리잡혀 있다고 봐요. 수능 때문에 우리는 관심이 없어도 고전시가를, 과하게 어려운 과학 개념을 억지로 배워야 해요. 단순히 좋은 대학을 가려고 청춘과 시간을 수년씩 바치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일까요? 공부가 부, 명예와 결탁한 기이한 사회를 깨부수고, 공부하고 싶은 학생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는, 그렇지 않은 학생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생명과학2 문제오류를 둘러싼 논의를 보면서 느낀 것도 있어요. 평가원의 역할은 잘 길들여진 학생을 골라내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수학능력을 변별하고 평가하는 거잖아요.

그래도 법원이 이번에 굉장히 빠른 판결을 내렸고 평가원은 이 판결을 수용했어요. 수능 문제오류 재판과정은 기본 몇 달이 걸리기도 하고 1년이 걸린 사건도 있는데. 재판을 1년 동안 하면 수험생이 그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이후 입시는 수험생이 알아서 해야만 해요. 이번엔 한 달 만에 판결을 낸 게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좋은 사례로 남을 거 같아요. 사회적으로 봤을 때 법원이 '수능이 평가하고자 하는 건 학생들이 획일적인 답만을 외우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준 거라고 봐요."

-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으로 보장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쉽게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거요. 다양한 사회보장제도가 있는데 필요한 사람들은 어떤 게 있고, 어떤 경로로 보장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몰라요. 사회에서 강한 사람들에게 쥐어지는 게 결국에는 지식이라고 생각해요. 지식을 얻는 데 드는 비용들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자기의 것을 빼앗기는 사람이 많지 않나 싶어요.

특히 저는 공익근무제도에 대한 교육자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공익근무도 대체복무라던가, 연구직으로 3년을 보내면 군복무로 인정해주는 등등 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데요. 이 경우의 수를 다 직접 찾아봐야 해요. 일반 병역은 주변에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도 많고 얻을 수 있는 자료의 폭이 넓은데, 공익근무를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라서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고 접근성이 떨어져요."
 

▲ '나'를 표현하는 사진 ⓒ 김명신


- 내가 바라는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별자리요.(웃음) 별 하나하나는 큰 의미가 없지만, 사람들이 수십억 개의 별을 별자리로 이어놓고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지어주면 의미를 갖잖아요.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서 더 큰 의미로 밝게 빛나는 모습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요."

- 그렇다면 승찬님이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가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큰 배를 움직일 때, 배 앞에 튼튼한 줄을 이어서 다른 배가 끌어갈 수 있게 하는데, 배 한 대가 끌고 가면 매우 불안정하기에 두 대 이상의 배를 이어서 균형을 맞추곤 합니다. 우리 사회를 이 커다란 배라고 생각하면, 정치는 이 배를 이끄는 작은 배들이라고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 한국사회의 정치는 성숙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해결책은 양 끝단이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라는 속담이 있어요. 더 나은 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우리 생각을 한쪽으로만 끌어가지 않고, 여러 사람, 각계각층의 의견과 지식, 그리고 경험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그런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 민주화는 상당히 성숙해졌잖아요. 정부정책과 국민의 여론이 다를 때 이제는 정부가 자신들의 의견을 국민에게 강제할 수 없는 사회잖아요. 우리나라의 정치도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뒷받침할 수 있을만큼 점점 성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스스로 정치를 한다면/정치인이 된다면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겠는데 입시제도에 있어서 큰 변화를 주고 싶어요. 사실 이 사회가 고등학생 수험생에게 굉장히 가혹해요. 학교는 배우기 위해 다니는 거니까, 학생들도 마음껏 여가시간을 즐기고, 원하는 공부를 할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할 거에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학생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요. 무엇부터 매듭을 풀어야 하는지 모르겠는 복잡한 문제지만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보궐선거가 작년이었나요? 올해군요(웃음).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청년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 하는 정치집단들의 입장이 느껴져요. 올해가 '청년 표심'이라는 게 정치판에 등장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정당들도 자신들이 청년들의 표에 집중하지 못했구나 하고 성찰을 하는 거 같구요. 이런 현상을 보면 앞으로는 다양한 측면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기대 반, 보여주기식이 아닐까 하는 걱정 반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청년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없어요. 청년들이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계속 청취하려는 모습이 지금의 정치권에는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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