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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순이삼촌'의 그곳... 너븐숭이의 슬픈 역사

제주올레 19코스(19.4km) 조천에서 김녕올레까지 - 두 번째 이야기

등록|2022.01.14 10:21 수정|2022.01.14 10:21

▲ 너븐숭이4·3기념관 내부 ⓒ 차노휘


너븐숭이4·3기념관
 
올레19코스는 제주 항일운동의 현장인 조천만세동산에서 시작된다. 장엄하게 서 있는 추모탑과 운동기념탑 뒤쪽 밭길을 걷다보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해안도로는 곧 조천포구 길목에 있는 관곶과 만나게 되고 관곶은 넓은 백사장이 있는 신흥해수욕장까지 연결된다.

신흥리 마을길을 지나면 드디어 함덕서우봉해변에 닿는다. 도심과 가까운 함덕해변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곱고 흰 모래사장이 바다 멀리까지 뻗어 있고 에메랄드빛 바다는 서우봉(111.3m)을 감싸면서 먼 바다로 이어진다. 살찐 물소가 뭍으로 기어 올라오는 듯한 모양새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에 해수욕을 즐겼다면 겨울에는 해변을 등 뒤로 하면서 하이킹하는 것도 좋다. 약간의 오르막길과 숲 사이로 난 길은 2003년부터 2년 동안 동네 이장과 청년들이 낫과 호미로 조성한 길이라고 한다. 그 길을 넘어 해동포구를 지나면 너븐숭이4·3기념관에 도착할 수 있다.
 

▲ 서우봉에서 바라본 함평해변 ⓒ 차노휘

   

▲ 해안도로를 걷다가 ⓒ 차노휘


'너븐숭이'는 넓은 바위라는 뜻이다. 넓은 바위가 많은 이곳에서 1949년 1월, 북촌리 마을 인구 1000여 명 중 절반가량인 약 500명이 희생되었다. 남자는 다 죽었고, 어머니를 따라나선 어린아이들이나, 집에 있다 토벌대들이 지른 불에 타 죽은 노인들도 있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은 조천면 북촌리에 있는 너븐숭이가 공간적 배경인 소설이다.
 

▲ 해안도로를 걷다가 ⓒ 차노휘


전날 숙박업소 주인남자가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는 의도였는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들 아시죠? 이곳에서는 여자든 남자든 나보다 나이든 사람을 삼촌이라고 칭한다는 것을요? 제주도는 '이모'라는 호칭이 없어요. 왜 인줄 아세요?" 주인남자는 웃으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일별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옛날부터 이곳에는 남자가 적었어요. 왜구나 육지 세력들이 남자 공출을 했고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요. 하지만 자식을 낳아야 하니까, 한 남자가 몇 여자를 책임져야 하는 일도 있었대요. 그것 때문이라고 알고 있어요.

한 밤중에 누군가가 다녀갔는데 아이가 깨어서 물어요. '엄마 누구예요?' 그러면 남자라고 말하기가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남자든 여자든 한 가지 호칭으로 통일해서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는 구실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삼촌'이 다녀갔다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아하'라고 하면서 웃었다. 실은 나도 공감했다. 그 비슷한 문화가 일본 전국시대에서도 있었다고 들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남자가 줄어들자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대해야 했던 어느 마을의 문화를 소개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웃음 속에 아픈 역사가 가시처럼 들어앉아있다는 것 또한 잘 안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에서는 '삼촌'이라는 호칭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제주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삼촌이라고 부른다고.

소설은 소설 속 화자가 8년 만에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여하러 제주도로 오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순이 삼촌이 죽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순이 삼촌은 불과 두 달 전까지 화자의 서울 집에서 식모처럼 밥을 짓고 집을 봐주다가 갑작스럽게 내려 가버린 장본인이기도 했다. 일찍 죽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살했다. 자살의 원인이기도 했던 환청에 오랫동안 시달려왔는데, 그 시작은 1949년의 제주 4·3 때부터였다고 한다.
 

▲ 김녕서포구 20코스 시작점 ⓒ 차노휘

 

▲ 김녕농로 ⓒ 차노휘


소설 속에서 30여 년 전 그 해 음력 섣달 열 여드렛날, 별안간 밖에서 연설을 들으러 나오라는 고함 소리에 동네사람들은 밖으로 나갔다. 보통 때와 달리 군인들이 다니면서 재촉했다. 그들은 군인, 순경 등 공무원 가족과 나머지 사람들을 분리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때 군중 속에서 별안간 불이 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동요하는 마을 사람들을 군인들은 총으로 위협하며 돼지 몰 듯이 한 무리를 시야 밖으로 끌고 나갔다. 곧이어 총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차례차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갔다.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을 태우는 불빛은 사방으로 더욱 퍼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교실로 몰려 들어가 밤을 새웠다.

밤중에 크게 놀라는 사건이 두 번 더 이어진다. 첫 번째는 대밭이 타면서 터지는 소리를 총소리로 잘못 안 것이고 두 번째는 죽은 줄만 알았던 순이 삼촌이 살아 돌아와 밖에서 유리창을 두드린 거였다. 삼촌은 총살을 당하기 전에 기절을 해서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

하지만 학살 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혼자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순이 삼촌은 그 후 경찰만 보면 두려움에 떨게 되었고 나중에는 환청 증세까지 겹치게 되었다. 평생 그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순이 삼촌은 자식이 둘이나 묻힌 그 옴팡밭에서 사람의 뼈와 탄피 등을 골라내며 30년을 과부로 살아오다가 마침내 그 살육의 현장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한 것이다.

화자는 마을 사람들이 30년이 지나도록 그 일을 고발하지 못한 것은 섣불리 말했다가는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렵기 때문이며, 한 달 전에 자살한 순이 삼촌의 삶은 이미 30여 년 전의 시간 속에서 정지해 버린 유예된 죽음이었다고 말한다.
 

▲ 해동포구 ⓒ 차노휘


소설로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너븐숭이4·3기념관. 나는 밭 한가운데에 있는 <순이 삼촌> 문학비를 어루만지고는 기념관 앞에 있는 애기 무덤들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무고한 희생자들. 시간이 지나 무뎌질 때도 되었건만 마음 한구석은 늘 새 생채기처럼 새롭다. 눈치없는 풍광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검디검은 기름진 밭, 높은 밭담, 그 너머로 매끈한 등을 가진 말이 너무나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수풀 너머로 풍력발전기 날개가 졸리도록 느리게 돌고 있다. 하지만 우거진 '벌러진 동산'으로 들어섰을 때는 몇 년 사이 늘어난 풍력발전기가 회전하면서 내는 소음과 끊임없이 수풀에 그려대는 회전 날개 그림자가 폭력적으로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도망치다시피 걸음을 빨리해야했다.
덧붙이는 글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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