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의무화? 국제뉴스 30%?... 까딱하면 빨간줄
[대선 이슈 칼럼] 2020년 대법 판단을 돌아본다... 방송편성권 외부개입은 방송법 4조2항 위반
▲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공영방송 정상화'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 유튜브 채널 윤석열 갈무리
지난 12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다섯 번째 '59초 공약짤'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 원희룡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이 등장해 '공영방송 정상화'를 주제로 ▲사극 의무 제작 ▲영상 아카이브 오픈소스 공개 ▲메인뉴스 중 국제뉴스 30% 이상 편성 등을 언급했다. 이 영상은 17일 기준 13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런데, 내용이 담긴 영상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것이 현행법상 합당한 언급일까.
먼저 당사자 중에 하나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아래 KBS본부)가 즉각 입장을 냈다. KBS본부는 12일 "윤석열 짤, '편성 침해'가 공영방송 정상화?"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KBS본부는 "이 짧은 동영상에 담긴 내용을 보면 국민의 힘이 도대체 공영방송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심각한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면서 "방송법 제1조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4조는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대하드라마 의무편성'이나 '국제뉴스 30% 편성' 등은 방송법에 따라 편성 침해의 논란이 큰 얘기들이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편성권 침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오만함을 넘어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의 부재이자 공영방송 독립을 염원하는 국민정서에 대한 부정"이라며 "특수통 검사로 형사법이 주전공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방송법을 제대로 공부해보시라"고 윤석열 후보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
대법원도 방송편성권 주체는 방송사업자라는데... 정부가 개입을 한다?
▲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통제 폭로2016년 6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 권우성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20년 1월 16일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KBS의 보도와 편성에 개입해 방송법을 위반했다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해 벌금 1000만 원 형을 확정했다. 이는 1987년 방송법 제정 이후 '방송편성에 간섭함으로써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내려진 첫 유죄 확정 판결이기도 하다. 판결 이후 이 전 수석은 관련 법조항 자체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2021년 8월 31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해당 법률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이 전 수석은 2014년 4월 KBS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해경을 비판하는 보도를 하자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해경 비판 보도를 중단하거나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2016년 5월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이 전 수석을 방송편성에 간섭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재판에 넘겨졌다
이 전 수석이 위반한 방송법 조항은 제4조 2항이다.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대법원은 해당 조항이 방송 자유의 핵심적 요소인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방송사업자 외부에 있는 자가 방송편성에 관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이 전 수석 측은 재판에서 보도국장은 방송편성책임자가 아니므로 그에게 전화한 것은 방송편성에 대한 개입이 아니라고 반론을 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형식적인 편성책임자는 편성본부장이지만 보도국장은 보도물을 선정하고 그 내용을 구체화하는 뉴스편성에 관한 직접적인 결정권이 있으므로 편성권을 행사하는 주체'라고 해석했다. 즉 편성권을 행사하는 주체는 방송편성책임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방송편성에 관계된 방송사업자 및 그 소속원을 모두 포함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대번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의 이같은 판단에 따르면 윤석열 선대본의 '59초공약짤' 역시 역시 방송법 위반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극 의무화든 국제뉴스의 비중 상승이든 편성권은 오롯이 방송사업자 및 그 소속원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제외한 외부인이 개입하는 일체의 행위는 이 전 수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방송법 제4조 2항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방송편성권의 주체가 누구인지 대법원의 해석이 명백한 상황에서 대놓고 '의무화' '30%' 등의 표현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의 '공영방송 정상화' 공약은 논란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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