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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 그녀의 처지가 안타깝다

[TV 리뷰] JTBC 드라마 <공작도시>

등록|2022.01.19 11:21 수정|2022.01.19 11:25

▲ JTBC <공작도시>의 한 장면 ⓒ JTBC


대선을 두 달여 앞둔 시점, 가장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후보를 선거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 전략을 짜는 '킹메이커' 이야기다. 상황은 약간 다르지만 자신의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인생을 올인하는 재희도 그런 면에서 '킹메이커'라 할 수 있겠다. 재희는 JTBC 드라마 <공작도시>의 주인공이다.

누가 신데렐라를 꿈꾸는가
 

▲ JTBC <공작도시>의 한 장면 ⓒ JTBC


재희(수애 분)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대신, 더 빨리 더 쉽고 강하게 권력을 취하기로 결정한다. 바로 결혼을 통해서다. 재희는 자신의 욕망을 대리할 상대로 재벌가 미운 오리새끼인 준혁(김강우 분)을 선택한다. 적당히 가졌고 적당히 열등한 재벌가 혼외자 준혁과의 결혼을 디딤돌 삼아, 성장기 내내 자신의 자존감에 타격을 입힌 세상에 일전을 고한 셈이다. 그러나 욕망이란 본디 무엇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해방이 되기도 하지만 더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갇히게도 한다. 불행히도 재희의 그것은 후자로 향한 듯하다.

재희는 어정쩡한 자신의 계급이 사는 내내 답답했다. 판사라는 아버지의 번듯한 타이틀은 강직하고 청렴한 아버지의 성품 탓에(당연한 직업윤리임에도), 성장기 내내 재희를 화려하고 빛나는 소녀로 자라게 하지 못했다. 차라리 세상을 향해 분노를 분출할 만큼 가난하던지, 남들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아빠 찬스'를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늘 애매하고 갑갑했다. 그런 만큼 아버지의 무능이 싫었고, 자신의 초라한 신세를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시나리오는 오직 잘나가는 남자를 골라 그와 함께 도약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비틀어진 욕망을 좇아 결혼에 성공했고, 바야흐로 남편 대통령 만들기에 돌입한다.

과속방지턱도 아랑곳없이 돌진하는 재희의 욕망을 바라보다 숨이 찬 시청자는 문득, 그의 욕망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드라마는 재희를 통해, 여성은 누구나 기회만 온다면 준혁과 같은 상대와 결혼하기를 갈망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것이 아직도 성공적인 결혼을 바라는 여성의 보편적인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발원하고 있을 이 끈질긴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어도 괜찮은 걸까.

재희는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부모의 든든한 지원 없이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온 것은 기회의 대가로 성 상납을 요구하는 예술계 권력의 끈질긴 추근거림뿐이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결혼이라는 거래였지만, 그 결혼의 상대 역시 외도와 성 상납을 힘 있는 남성의 당연한 과실이라고 믿는 마초 남성성의 담지자다.

그렇다면 재희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온갖 모역과 혐오를 감내하면서 취할 성공이라는 목표가 과연 가치 있는 욕망일까. 쇼윈도 부부를 연출하며 모두를 속이는 입양을 감행하고, 갖은 위법한 권모술수로 남편에 조력하고, 남편의 외도 상대인 여성을 모욕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걸까.

"온 세상이 남편을 우러러 보게" 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내달리는 재희의 욕망은 그러다 숨이 차 헐떡이며 괴로워진다. 비열해진 자신이 혐오스럽던 어느 날, 자신의 눈앞에 돌연 나타난 이설(이이담 분)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재희와 이설 사이의 밀고 당기는 묘한 정동은 분명, 우정 이상의 무엇을 품으며 이들 사이의 감정이 성애적인 욕망일지 모른다고 추측하게 한다.

그러나 이설의 접근이 우연이 아니고 목적을 가진 의도였다는 점에서, 이설이 재희를 향해 "좋은 사람"이므로 "지켜주고 싶다"고 선회한 믿음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재희는 이설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보편의 선과는 꽤 큰 이격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설이 재희를 "좋은 사람"의 자리에 되돌리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 공모가 여성 연대로 나아가려면, 남성 권력에 균열을 낼만한 해방적 목적이 있어야 한다.

왜 아직도 조선시대 여성을 떠올리는 서사가 넘쳐날까
 

▲ JTBC <공작도시>의 한 장면 ⓒ JTBC


이 드라마의 백미이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은 재희와 시어머니 한숙(김미숙 분)의 고부관계이다. 안면 근육을 긴장과 이완으로 조율하며 위선과 위악을 넘나드는 두 배우의 속물스럽고 탐욕스러운 연기는 이 드라마가 스릴러물이라는 본령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성진그룹의 실세지만 미혼모였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한숙은 자신의 주홍글씨를 떼기 위해 아들을 앞세운다. 아들을 성진의 회장 자리에 앉히는 일이야말로, 자신이 겪은 수모를 털어내고 보란 듯이 트로피를 거머쥐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재희의 욕망에서 자신과 같은 지략가의 기질을 간파하고 조련시키기에 이른다. 얼핏 합이 잘 맞는 듯한 이들 고부관계는 그러나 동반자의 길을 걸을 수 없다. 이들의 남편과 아들이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싸우며 타협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섬기는 이의 욕망에 따라야 하는 대리자의 운명은 결코 주체적일 수 없다. 이토록 출중한 지략가인 두 여성이 결국 남성을 대리한 욕망을 실현하느라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이 시대를 반영한 여성의 욕망 서사로 적절한 걸까. 여성들의 치열한 욕망을 다루는 듯하지만 실은, 가부장이 욕망하는 여성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남편을 위해, 아들을 위해, 악녀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성상의 망령 말이다.

한숙과 재희의 설정을 타임슬립으로 돌린다면,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암투를 일삼았다고 믿어지는 왕비나 후궁들의 내전과 다를 바 없다. 조선시대의 여자들은 스스로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없었기에, 생존을 위해 권력투쟁의 대리전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 한국에서, 저 정도 권력과 재력과 지능을 가진 여성들이 대리전을 치르기 위해 자신의 삶을 갈아 넣고 있다는 게 개연성 있는 걸까.

지금이라면 이 둘처럼 탁월한 능력의 여성들이 남성을 대리한 욕망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주체가 되어 권력 투쟁에 임하는 서사를 제시해야 한다. 이로서도 충분히 매력 있고 설득력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 어둠의 암약가로 표상되곤 하는 왕의 여자들을 연상하게 하는 나태한 서사는 그만 재생산해도 되지 않을까. 누구의 여자도 아닌 한숙들과 재희들로서, 이들은 이미 스스로의 욕망을 펼치기에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넘치게 가지고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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